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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스 쉘터'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3.05.09 테이크 쉘터(Take Shelter,2011) -이 불안을 누일곳 어디에- (1)




이 영화 테이크 쉘터는 마치 '에반 올마이티'의 히치콕 버전같다. 갑자기 현대의 노아가 되어 신으로부터 대 홍수에 대한 계시를 받은 후 지금의 삶이 피폐해 지는것을 감수하고 방주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 말이다. 커티스(마이클 섀넌)도 비슷하게 악몽을 꾼다. 어느날, 누런색 비가 내리더니 개며 사람이며 모두 비에 맞은 존재들이 괴물이 되어 자신과 딸을 공격하는 꿈을 말이다. 악몽에서 시작 된 그 불안은 점차 환청에다 환영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되자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커티스는 집 뒷마당에 방공호를 만드는데 집착하게 될 수 밖에. 가뜩이나 잔뜩 받아놓은 대출에 더 빚을 내고, 회사 기계를 마음대로 갖다가 쓰는 위험을 감수하며, 그로 인해 딸 수술을 위한 직장 의료보험마저 위태 위태 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방공호에만 집착 할 뿐이다. 도무지 자신의 행동을 그들에게 이해 시킬 수 없기에 가족과도 오랜 친구와도 그 관계에 금이 가는건 당연지사.


그 와중에 커티스의 불안을 좀 더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 있다.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불어난 주택 담보 대출이며, 유명무실한 의료 보험으로 인해 접하는 수많은 난관하며,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는 기후등등. 오히려 커티스의 꿈속에서 그를 괴롭히는 '기상이변' 보다도 더 생생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요소들 말이다. 그건 커티스를 포함한 극중의 사람들이 '지금'겪고 있는 불안 요소일 뿐 아니라, 스크린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부러 이 요소들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치 나는듯 안나는듯한 냄새처럼 이야기 속에 스며 들게 한다. 이렇게나 이 영화의 불안은 다층적이며 빈틈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차곡 차곡 쌓인 불안은 점차로 절정의 순간을 향해 간다. 미래를 위해 담보잡힌 지금은 더이상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균열이 심해져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 증세는 점점 더 극심해져만 간다. 어느쪽에 의해서건 커티스는 부서져 버리고 말것이다. 단지 한 방향으로의 예외, 그의 불안 증세처럼 정말 세계를 끝장내 버릴 비가 내리고 그의 방공호가 제 기능을 하게 되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결국엔 비가 내린다. 싸이렌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간 방공호 바깥의 비는 그저 지나가는 태풍일까, 아니면 커티스의 꿈에 나왔던 그 비일까? 뭐든 속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답답한 불안의 끝에 어느 쪽의 판단이 틀리게 되는가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일 테지만, '과연 이 불안이란 놈은 쓸모가 있는 놈이야 아닌거야?'라는 의문을 넘어서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 있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혹은 미래를 위한 감정이다. 번지점프를 위해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올라가고 있는 '지금'은 사실 별 문제가 없이 안전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줄은 안전한 걸까?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 걸리는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마음 편하게 할 정도로 '지금'의 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없질 않나. 이같은 불안은 몇 분에서 몇십분 뒤의 일에 대한 대비로 현재의 평안함을 희생시켜가며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그렇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는 현재는 결단코 평안하지 못하다. 자고로 불안이란 사람을 피말리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 반면에 감정이라 하기에는 좀 다른 성격의 '긍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긍정적인 자세는 '지금'을 위한 일종의 처세다. 미래의 불안이 가지고 오는 지금의 괴로움과 미래를 맞이하는데 발생하는 부정적인 효과들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차원의 암시와 다짐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대처하게 되는거다. 이 긍정의 주요한 레파토리중의 하나는 과거의 성공 사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그 성공 사례를 따르면 미래에도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니 애초에 커티스와 그 주변 인물들이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커티스는 미래를 얘기하지만 아내를 비롯한 지인들은 지금을 말하고 있었던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랬으니 미래에도 이럴 것이라는 나름의 논리를 갖춘 긍정족(族)들 사이에서 커티스는 자신의 망상 밖에는 증거로 내새울 것이 없고 그래서 모두가, 심지어 스크린 바깥의 사람들까지 그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질 적으로 누구 하나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것은 커티스의 불안이나 주변인들의 (비교적) 긍정적인 자세 모두 미래를 담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안에 떤다고 미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한다고 미래의 불안 요소를 모두 이겨 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면 사실 비슷한 답을 얻게 되는 것에 놀라리라 생각한다. 물론 확률적인 차원으로의 접근이나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할 미래이니 지금에나 충실하자는 걱정 무용론적인 자세가 이유가 되어 각각의 선택을 할 수는 있는것이나, 이 경우에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지금의 불안에 대한 대처일 뿐 엄밀한 의미로 미래에 대한 대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각각의 선택을 할 우리가 미래를 위한 대비로 이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지라도. 이 영화가 안겨주는 진짜 불안이라는건 이 부분이 아닐까? 결국은 당연한것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신념이 그저 신념일 뿐이라는...  



간혹 이런식의 영화를 만나게 되면 더러 짜증이 났었다. '사람들 하찮은거 저만 아는거 처럼 폼들을 잡고 그래..' 식의 생각이 드는것과 동시에 굳이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던 거다. 반면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최근에 야구 중계에서 접한 해설 한토막이 떠올랐다. '타격에 들어 섰을 때는 치겠다는 마음 50%, 참겠다는 마음 50%를 갖고 들어서야 한다'는 말. 애초에 미래에 벌어질 일을 100% 알아 맞춘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니 남은 것은 칠만한 공이다 아니다라는 판단을 미리 내리고 불안을 잠재우기 이전에 그 불안을 최대한 안고 가야 한다는 뭐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그래야 예측이 빗나갔을 때의 당황을 줄여 좋은 타구를 날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그런... 믿음이 갖고있는 안락함에 취해 실체를 보려는 불안한 발버둥을 멈추지 말라는 그런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 보게 된다. 저런 악취미를 가진 감독들의 의도가.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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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arthurjung.tistory.com BlogIcon Arthur Jung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5.28 19:56 신고

    저도 무척 보고싶은 영화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