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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 인터뷰에선가 아이들이 이런 소재를 좋아했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걸 봤다. 누가? 브레드 피트가. 그런데 영화를 보고난 입장에서는 마치 아이들 장난감으로 왠만한 차 한대 값이 넘어가는 돈을 지출하곤 하는 헐리웃 스타들의 씀씀이를 보는것과 비슷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 돈으로 자기 자식들한테 선물해준다는데야 뭐라 할 말이 없는거지만 그러기에 블록버스터 영화 한편은 좀 과하지 않나? 물론 아이들을 위해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을 문맥그대로 이해하는건 아니지만, 이 영화가 한계를 지니게 된것이 극의 고조를 번번히 잘라먹는 일종의 유리천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다. 15세 관람가 수준을 사수해야만 한다는 유리천장.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와중에 관련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주인공은 가족들의 안위를 담보로 조사에 나서게 된다는 대강의 줄거리. 그러나 별로 복잡할 것없는 뼈대위에서 펼쳐지는 주인공의 모험 역시나 비교적 평탄하다. 아니, 곳곳에서 죽을 고비를 맞이하게 되니 모험의 평탄함의 정도를 따지기 보다 그 모험의 지향점이 흐릿하다고 보는 편이 좋겠다. 좀비들을 무찌르는 액션의 쾌감을 위해서라면 이렇게 밋밋하면 안되는 거였다. 원경으로 묘사한 좀비떼들의 '진격'은 나름 독창적이라 할 만 했지만 그 좀비들을 향한 반격은 어떤 쾌감도 주지 못하기에 그 멋진 소재가 그저 배경에 그치고 마는 아쉬움이 남는다. 압도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좀비들의 습격에 주인공은 끊임없이 도망칠 뿐이다. 그러나 압도적인 수와 능력의 좀비들이 주는 압박감 역시나 무언가 아쉬움을 준다. 딱 피할 수 있을 만큼만, 모험을 완수 할 수 있을 만큼만 따라오다 마는 모양새. 관객이 집중할 사람은 팀이 아닌 그저 브레드 피트 한 사람이기에 순간 순간 좀비의 파도 속으로 딸려 들어가 버리는 인물들에 대해서 큰 감정이입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도 한 몫하고 있다. 그저 '군인 3'의 희생과 주인공의 동료의 희생은 관객에게 주는 임팩트의 차이가 같을 수가 없지 않는가. 그러나 혼자서 전 세계적인 위기에 대처하고 있는데 그 의지를 꺾을 수도, 그렇다고 고난을 강조하기 위해 희생시킬 주인공의 동료도 없으니 남은것은 적절히 톤 다운된 퀘스트를 마련하는 것 뿐. 내가 싫어하는 장치이기는 하지만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등장도 극히 제한되어 있고, 좀비가 사람을 해치는 장면에도 사람이 좀비에 대항하는 장면에도 독창적인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니 오락물로서 관객과의 밀당에서는 일단 별 강점을 찾을 수가 없다;;;  


최근들어 만들어진 좀비물의 오락물로서의 특성을 잠시 접어 둔다면 가족 드라마로서의 특성에 대해 살펴 볼 수도 있겠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엇비슷한 대작 영화 하나가 생각이 나는데 '우주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죽고 죽이고 침략당하고 무찌르는 상황에서 살짝 벗어나 엄청난 사건을 서로의 힘으로 견뎌내는 가족의 이야기. 마찬가지로 배경과 소재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밋밋한 퀘스트들이 주어진 가족 영화에 가까웠지만, 결정적으로 이 영화와 차이가 있다면 우주 전쟁의 경우에 그 모험을 견뎌내는 주체가 가족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외계인의 위협에 대한 아빠의 헌신적인 대처와 눈앞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안타까움이 복잡할 것없이 곧바로 눈앞에서 펼쳐졌기에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이 되는데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주인공이 모험을 치뤄내고 있는 와중에 가족은 안전하디 안전한 요새에 잘 모셔져 있다. 심지어 그 요새는 공격 비슷한 것도 받지 않는 위치에 있고 간혹 위성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주인공의 모험과 완벽하게 동떨어진 상황에 놓여있다. 물론 그 가족들 나름대로의 위협도 있다. 모든 면에서 효율을 따질 수 밖에 없는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주인공의 가족이 구출을 받은 것은 주인공이 이 상황에 쓸모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인데, 구출해준 주체가 더이상 주인공에게 쓸모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라면 '효율적으로' 그 가족을 포기 할 수 밖에 없는거다. 주인공의 가족이 요새를 떠나기 전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유로 요새를 떠나게 되지만 그 대목 역시나 엄청난 사건을 갈고 닦아 아이들이 들을만한 이야기로 만들어 버린 동화를 보는것 처럼 별 위협으로 느껴지질 않는다. 급박한 상황에 자신들의 자리를 내어줘야했던 군인들의 볼멘소리가 한번 등장했을 뿐이다. 그렇게 밀려난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그 곳에는 어떤 위협이 있는지 정보가 주어지지 않으니 딱 위협받지 않을 만큼만 위협하는 좀비들의 위협처럼 가족 드라마의 특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의 위협을 받을 걸로 짐작하게 될 뿐. 그러니 가족을 지켜내야 한다는 주인공의 아빠로서의 절박함 역시나 큰 울림을 전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물론 이 영화가 가진 일종의 미덕도 있다. 그동안 좀비물이 함의하고 있었던 의미들에서 벗어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부분에서 말이다. 차별의 정서가 주요 기반이었던 좀비물에 인류가 당면한 대자연의 역습, 환경 이변이나 신종 질병의 위협을 대입하는 시도는 참신하게 볼 만하다. 그러나 이 참신한 시도가 펼쳐질만한 기반은 지극히 좁아 보인다. 아빠의 슈퍼맨 놀이와 눈을 어지럽히는 좀비떼들의 질주로 인해 관객들이 이 시도를 알아내기 위해서는 꽤나 진지한 자세로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하는 지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더니 끝날때 쯤이 되어야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분위기를 잡으니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랄까;;; 듣기로는 원작 소설의 형식이 각각의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이 구조를 주인공 한사람의 무용담으로 바꾸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게 아닐까 싶다. 이도저도 아닌 어중띈 영화가 되고 말았다. 












#1. 어떤 이유로 이 영화가 평택을 바이러스의 근거지로 묘사했다고 하는지를 모르겠다. 

     극중에서 채 몇시간이 안되는 체류기간 동안 무슨 무정부 상태로 묘사를 했느니 어쩌느니;;;

     물론 최근에도 현실과 동떨어진 묘사들이 나오고 있는 헐리웃 영화들이지만 

     이 정도의 묘사를 가지고 징징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 홍보 영화도 아닌데.


#2. 그와는 별도로 엄연히 영어식의 캠프 이름으로 거론되는데 왜 자막엔 평택 기지라고 나오는걸까;;;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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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aoloth.tistory.com BlogIcon 에바흐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6.21 16:25 신고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여러 이유로 블루레이 구매 당첨. -ㅁ-






좀비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긴장감을 느끼는 지점이란건 결국 나의 무리가 위협받아 사라질지도 모르니 지켜내야한다는 일종의 본능이 발현하는 부분일테다. 좀비 영화를 만들었던 사람들은 뭐 그런 생각 없이 그게 통하니까 만들어서 돈벌어먹고 살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 영화가 사람들에게 통했던건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란거지. 여기까진 영화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두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두번쯤은 주워 들어 봤을 이야기 인데, 그저 차별점을 두기 위해서인지 사람들에게 통하는 지점이 조금은 달라져서 인지 이 장르 역시나 진화를 하기에 이른다. 좀비들을 구원하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멘붕을 겪었던 로버트 네빌 박사를 지나 결국은 여기까지 왔다. 드디어 좀비가 주인공인 좀비 영화가 나온거다.


좀비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들은, 그저 인간의 무리를 위협하는 두렵고도 강력한 존재일 뿐 아니라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해 이를데 없이 외로운 존재다. 말을 전하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건지 다 잊어버렸고 상대도 마찬가지니 그르렁 대는 소리에선 배를 채우려는 욕구만이 남아 전해질 뿐이다. 외롭고 쓸쓸하지만 이런 생각은 나눌 수도 없고, 사람을 잡아 먹는것에 대한 죄책감은 있지만 삶의 연장을 위해서는 죄책감을 무시해야만 하는 상황. 냉전이란게 사라지고 없는 상황에서, 사실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무기가 없었음이 밝혀진 상황에서 이제는 어느 한쪽을 좀비로 보고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위협을 재생산 하는 일은 '후진' 일이 되고 말았다. 이제 사람들은 좀비와 인간의 싸움을 보면서 어느 한쪽에 감정을 이입하기가 더 어려워 진거고, 좀비의 외로움에 시선을 둘 정도로 거리를 둘 수 있게 된거다. 


 이처럼 공동체의 위협과 수호라는 큰 함의가 있었던 과거의 좀비 영화들과 다르게 군중속에서 외로움을 겪는 개개인의 차원으로 시선을 옮긴 이 영화의 시도가 새롭다. 좀비 영화로서 개인의 고독을 다룬다는 것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개인의 고독을 다루려는 시도의 과정에서 좀비라는 소재를 가져 온 것으로 봐도 역시나 그렇다. 더욱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좌'와 '빨'과 '좀비'가 연관 검색어로 묶이는 문화권에서 살고있는 입장에서는 좀비와 인간사이의 증오와 불신의 벽과 그 벽을 넘는 과정에서 지독한 시의성이 느껴졌다. 물론 이 영화의 시의성이란 것이 한국에서의 얼치기 이념 논쟁의 문제만은 아닐테다. 기술이 발전해 감과 더불어 사람들은 좀 더 편하게 의사 소통을 할 여건을 갖추게 되었지만, 너무나 지독해진 경쟁이 문제인지 점점 더 타인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 기술은 소통의 도구라기 보다 소통의 대체재가 되어가는 듯 하다. 거기다 거시적이며 지극히 원론적인 갈등은 언제라도 폭발을 일으킬 듯 잠재되어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슬람과 서구 문화권, 동아시아의 민족주의 적인 갈등의 에너지 등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사랑만이 그 답이라는 걸 우리는 안다. 다만 그게 어렵다는 것과 그렇게 '러브 앤 피스'를 외치며 한 목숨 마리화나처럼 불태웠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다는 것 역시나 너무나 잘 알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말 그대로 죽지못해 살고 있다가 총 맞은 것처럼 사랑에 빠져버린 'R'(니콜라스 홀트)의 대책없는 직진은 너무나 가슴 시리게 아름답지만 그만큼이나 덧없게 느껴진다. 사랑이 그 답이란건 다 안다고. 다만 그게 너무 어렵고 아프니까 참거나 혹은 잊어버리려 하거나 그러는거지. 그런데 거기다 대고 '님들아, 사랑이 답임'이고 말하는게 어떤 의미있는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까? 기꺼이 부딪치고 상처받는 일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사랑하는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들 그걸 못견디는 사람들은 그러지 못 할 텐데. 하지만 그런 책임까지 영화에 뒤집어 씌워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협업의 결과로 이렇게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까지가 그들의 몫인거고 그 괴로움을 어떻게 할지는 내 몫인거니까 뭐.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단지 한 2,3일 정도 심장이 말랑 말랑해 졌다가 다시 돌아 올 뿐이라도 충분히 값어치가 있는 활동을 한거라고 생각한다. 로맨스에 좀 더 무게 중심이 실린 터라 내가 흥미롭게 느낀 지점이 크게 폭발을 일으키지 못해서 인지 이야기가 좀 늘어진다는 생각은 좀 했지만서도.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남자가 여자를 꼬시려는 열망이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를 돌아 볼 수 있음.


#2. 그러거나 말거나, 여자 꼬시는데는 역시 '차' 따라갈 만한게 없는 듯 ...


#3.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문득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든 노래.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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