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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

일단 이 상황의 배경은 지금으로 부터 약 30여년 후의 가까운 미래. 그 보다 약 30여년 더 뒤의 미래로 부터 현재(그러니까 극중의 현재)로 보내지는 사람들이 있고, 그 들을 죽여 은을 챙기는 '루퍼'들이 있다. 미래에는 사람을 죽여 조용히 뒤처리를 한다는게 불가능해져 타임머신을 이용해 과거로 보내 버리는 것.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기술이지만 30여년 후엔 타임머신이 개발되고, 그러나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어둠의 세계에서 사람을 '처리'할때나 쓰이는 기술이 되고 만다. 그런데 문제는 간혹 미래의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보내져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에게 총을 겨누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는 순간. 조용한 뒤처리를 위해 고용된 루퍼들이니 만큼 사람들이 과거로 보내지는 당시까지 살아있게 된다면 정보가 새어 나가는 등의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미래의 살아남은 루퍼들은 과거로 보내져 그러기로 계약한 과거의 자신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거다. 만약 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못한다면 엄청난 댓가가 뒤따르게 되고.


(아, 복잡해;;)



 


사실 복잡한 설정에 비해 그걸 갖고 만들어내는 얘기들이 그렇게 빼어나지는 않다. '탱크로 호두를 깨는 것처럼 어이없는 낭비'라고한 듀나의 타임머신 살인에 대한 혹평처럼, 기껏 지루한 설명 부분을 참고 다 들어줬더니 정작 그걸 갖고 만들어 내는 이야기는 익숙하고 평범해 보인다. 


그나마 조금 흥미로웠던 부분은 마주칠 일이 없으니 사람들이 흔히 마음껏 무시하고 사는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 앞에 나타나 맞딱뜨리게 되는 순간. 어떤 사람들은 미래의 자신이 두둑하게 등에 달고 들어온 금괴들을 보고 얼씨구나 먹고 죽자며 화려한 은퇴를 즐기지만, 어떤 사람은 그제서야 자기가 무슨 계약을 맺고 먹고 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미래의 자신의 삶이 끝장나는 순간을 보고도 그저 약에 취해 현재에 취해 미래 따위 알바 없다는 식으로 구는 루퍼들이 한심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거의 그런식으로 살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와 반면에, '사라'는 미래로 부터 온 위협에 의해 자신과 조카의 목숨에 위협을 받게 되지만 결단코 현재를 통해 미래를 가꾸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마치 대부분의 루퍼들이 그렇듯이 미래를 포기한다면 현재의 나는 편안하게 살 수 있지만 사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전혀 쓸모가 없고 침입자를 감시하는 것에도 불리하기만 한 갈대(?)를 불태워 버리자는 제안에도 갈대가 가진 미래의 가능성을 위해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는 사라의 선택은 결국 어떤 희망의 단초가 된다.


그런 루퍼들의 세계가 음침한 도시 뒷골목이고, 사라와 조카의 세계가 자연속에 위치한 농장이라는 대목은 묘한 뉘앙스를 전해주기도 하지만 이것만 갖고 어떤 생태주의나 뭐 그것과 비슷한 무엇을 유추해 내기위해서는 무리가 있어보이기도 하고... 뭐 그렇다. 좀더 정성을 들였다면 그렇게 읽어 줄 만도 했겠지만;










#1. 본문에선 다루지 않은 이 영화의 중요한 파트는 초능력 파트. 이 부분에 대한 묘사만은 박수를...



 

 

 

 

 

 

                                                                     다음 뷰 베스트 ㄳ.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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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영화 질색이다. 펼쳐 놓은것이 너무나 방대해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 두뇌 용량을 다 할애하는 바람에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영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도 1편까지만 있었어야 딱 좋았다고 생각하며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케이블에서 해주는 2편,3편의 내용을 볼 때마다 새롭게 곱씹는다 (케이블의 영화를 볼때마다 새롭게 느낀다는건 생각보다 경제적인 습성이다;;). 그런데 이놈의 것, 그 질색인 영화를 꼭 두번이상은 보게 만들어 놨으니 참 고약한 일이다.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풀어먹을 떡밥을 제공하고 있는 이 영화. 라깡에 프로이트가 난무하는 판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과감히 다이,,,ㅎ 아래는 옆에서 슬쩍 슬쩍 훈수 질을 하려는 시도 되겠다.


1. 아키텍처의 힘.
 사실 이 영화의 힘은 설정 자체에 있다. 그래서 상당한 시간을 설정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어떻게 꿈을 공유하는지, 그 꿈속의 물리적인 성격은 어떤지, 어떻게 꿈속에서 생각을 훔치고 혹은 주입하는지 등등. 그리고 나같은 사람은 이 대목에서 부터 과부하가 걸리니 그걸 (대충) 이해하는데만 두번의 관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만큼 그 설정 자체가 가진 독특함, 신선함이 있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는 실제 보다 시간이  빨리 간다던지, 꿈꾸고 있는 사람이 현실에서 느끼는 감각에 따라 꿈속의 물리적 환경이 변화한다던지 하는 디테일은 단순히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디테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맞물려 돌아간다. 특히 (라깡에 프로이트가 난무하는 영화평들이 집중하는 부분인)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은 적당히 입맛이 당길만한 지적 호기심을 선사한다. 
 
 이렇게 잘 짜여진 설정안에서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위력적이지는 않다. 방대한 사고를 바탕으로 세워졌을 영화적 설정과 적절한 편집을 제외하면 결국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구원이 주된 뼈대가 될 터인데 뭐 그리 새로울건 없잖은가. 이야기 자체가 묵직한 위력을 가졌던 '다크 나이트'와 비교하자면 뭔가 아쉬움이 남을 만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감독이 진짜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그 뼈대 (곧, 이야기)를 둘러싼 설정에 있는 것도 같다. '범죄자를 싹 쓸이 한 배트맨의 존재가 조커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구도와 '의식에 대한 임의의 조작을 공격하는 무의식'의 구도가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너무나 유효 적절하게 잘 이용하여 영화가 아니었다면 전달될 수 없었을 내용의 장을 설계한 놀란에게 경의를.

2. 바로 이장면, 회전하는 호텔 복도.

Canon | Canon EOS 50D | Manual | Partial | 1/200sec | F/3.2 | 0.00 EV | 70.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9:07:23 15:09:44


매트릭스에서 총알 피하기 신공이 나온 이후로 많은 작품들이 이 방법을 차용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슬로우모션이 걸리며 등장인물의 살아 꿈틀대는 근육이나, 찢겨져 나가는 피와 살을 강조하는 방법.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연출 또한 홍콩 무술영화의 과도한 액션이 지겨워 지듯이 식상해 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새로운 시각적 자극이 점차로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이 이내 자극을 주기 위한 자극일 뿐임을 알아채게 된것이다. 물보라가 멋지게 튀는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면, 헐벗은 근육남의 몸매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갑자기 슬로우가 걸려야 하는 이유를 관객들은( 혹 '관객들'이 아니라면 '나'는) 찾지 못하고 있다 .

 이 영화에서는 개인적으로 매트릭스의 총알 피하기 신공 만큼이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만 하다고 느낀 액션 장면이 나온다. 우주 공간이나 떨어지는 비행기 안이 아닌 '호텔 복도'가 빙글 빙글 도는 장면. 그 호텔 복도는 이내 무중력 상태가 되어 인물들이 허공에서 팔 다리를 휘저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복도가 빙글 빙글 돌고, 또 무중력 상태가 된 상황을 가정한 액션은 군더더기 없이 실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더구나 '총알 피하기'와는 다르게 화면상에서 갑자기 비 상식적인 물리적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다. 일부러 멋진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한 상황이 아니라 꿈 바깥의 물리적인 상황이 꿈 속 세계의 물리적인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설정안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라 비현실적인 물리적 환경(빙글 빙글 도는 복도, 무중력 상태)이 구현되는 너무나 현실적인 배경(호텔 복도)이 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 일합 일합을 구성해낸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

 회전하는 복도를 마치 원숭이 처럼, 그러나 길쭉한 팔다리로 수트간지를 뽐내며 '우아하게' 활보한 조셉 고든-래빗에게 갈채를.






4.난 누구? 또 여긴 어디? 아 c발 진짜 꿈?
 
 우리가 조각으로 떼어진 꿈속의 상황을 너무나 리얼하게 느끼는것은 그 꿈속의 공식에 공조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영화에 대해서 느끼는 현실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라면 카페안에 있는 나는  카페까지 오기 이전의 상황들이 역순으로 머리속에 맴돌고 있을 것이나  영화를 볼 때는 카페에 있는 주인공이 집에서 카페까지 오는 세세한 정보들이 생략되어 있더라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메세지인 영화의 줄거리를 전달 받기 위해 따로 떨어진 상황과 상황 사이가 생략되는 것 쯤은 크게 신경쓰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유추하여 이해하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채로 영화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건물 옥상에서 1분안에 미로 그리기를 하고 있던 장면 이후에 엇비슷한 유럽풍의 카페에 두 인물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어떻게 옥상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 카페를 발견한 후 주문을 하고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는 않는다. 다만 미로 그리기를 하던 옥상의 배경과 과히 튀지 않는 유럽풍의 건물이라는 증거를 통해 멀리 이동한 것은 아니라는 유추를, 여전히 밝은 배경을 통해 시간도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너무나 자연 스럽게. 그러나 그런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한마디. 

'너 카페까지 어떻게 왔지?'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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