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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나마 미욱한 판단력으로 이 영화를 트와일라잇의 아류쯤으로 치부했던 지난 잘못에 용서를 바랍니다. 

감독님을 비롯한 영화 스텦, 배우들에게.





그렇다고 '내말에만 고분고분한 캐 짐승남'의 설정이 주요 요소인것이 눈에 띄지 않는것은 아니나, 이 영화의 핵심은 '추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쟁'의 상흔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철수(송중기)와 순이(박보영)의 주변엔 구김살이라곤 살펴 볼 수가 없기에 그렇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시대에 아버지가 없이 삶을 꾸려가야하는 순이네 세 모녀에게는 아버지의 동업자 아들이 떡하니 구해 준 집이 있고, 무려 원고를 쓸 정도의 어머니의 능력이 있다. 시골 오지라서 몇 안되는 이웃들도 삶의 궁핍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단지 '마음이 부자'라는 식으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옴직한 순이네 가족보다 좀 지저분 하고 덜 세련되었을 뿐이고 먹고 사는데는 아무런 무리가 없어 보이더라 그 말이다. 그 당시를 살았던 어른들의 레파토리 대로라면 꼬맹이 두 녀석 역시나 밥값을 위해 놀러다닐 여유 따위는 없었어야 하건만. 그래서 고증(?)에 있어서 이 영화의 약점이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의 이야기라기 보다 기억 속, 혹은 가슴속에 남은 추억을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여자만 셋이 사는 집에 시커먼 사내아이를 들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도, 그에 발 맞춰 (짝에 대한 욕망만큼은 소년 수준으로 수위 조절을 한) 철수 덕분에 성적 긴장과도 연결 되지 않은- 세속의 티끌과는 전혀 닿아 있지 않은 철수와 순이의 세상은 마음껏 순수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데 자양분이 되어 준다. 거기다 모든것을 다 갖추고도 초지일관 악당인 지태(유연석)는 최대한 관심을 덜 뺏기고서 순이와 철수의 '지향'에 대한 방해물로 자신을 생각하도록 하는 역할에 충실하다. 등장 인물의 전형성 만으로 극을 평가한다면 낮은 점수를 받겠지만 이 극에서 지태의 전형성은 제법 효과적이라는 말이다. 지태의 비뚤어진 심성이 어디서 왔는지, 왜 순이에게 집착하는지 등의 생각에 관심을 뺏길 필요 없이 관객들은 마음껏 철수와 순이의 편에 서서 그 들의 적인 지태를 바라보면 된다.


이렇게 추억이라는 괴물은 힘이 세다. 그 어떤 지리멸렬한 삶의 한 순간이라도 지나버리면 아름답게만 남으니. 그 '아름다움'을 방해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던 남아나지 못한다. 모든 악함을 다 끌어 모은 듯이 지독하게도 더러운 존재로 끈임없이 소환되어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신세'가 되고 만다. 마치 지태처럼. 






그리고 그 추억이라는 어마 어마한 괴물 속에 순수가 살고 있다. 기다리라는 말에 그저 하염없이 기다릴 수 있는, 나의 마음을 상대가 알게 되었다는것 만으로도 세상을 가진듯이 설레고, 내가 아프고 힘든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상대가 웃는것을 보며 위안을 얻는 뭐 그런거 있잖은가. 나는 그 동안에 '입고 싶은것 입고, 다른 남자 만나서 잊고 살지만' 어느 순간 문득 뒤돌아 보면 오롯이 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그 순수라는 놈. 그러나 그 추억이라는 어마 어마한 괴물 속이라야 순수가 살 수 있다. 기분이 내킬때마다 한번씩 찾아와 머리나 한번 쓰다듬어주고 나면 그 뿐, 이내 나는 그 간절한 눈빛을 뒤로 하고 나의 길로 총총 되돌아 갈 것 이다. 생활은 추억에 비하면 허약하기 그지 없기에. 


누군가는 장갑도 없이 눈사람을 만드는 철수의 맨손이 안타까웠을 수 도 있겠지만, 나는 그 보다도 내치고 지워내지도 못할 거면서, 품안에 안고 가지도 못하는 이 덜되먹은 사람의 본성의 확인이 더 안타까웠다. 이렇게 내쳐 가버리면서 순수는 또 그 추억이란 놈에게나 던져주고 말아버리겠지. 그 순수는 또 추억에나 기생하면서 다시금 눈길을 받게 될 날만을 기다릴테고. 





(혹여 오글거림에 이 영화를 소화시키지 못할 사람들을 위한 팁. 엇비슷한 내용을 본문에 썼지만,이렇게나 아름답기만 한 철수와 순이의 세상은 사실 순이의 기억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거. 아름답게 포장된 기억 너머에 어떤 '현실'이 있었을지 짐작해 본다면 좀 더 오묘한 풍미가 살아날거라고 확신함. 아, 사람들은 이렇게 동인지의 세계로 빠져드는건가;;)


















#1. 박보영이 '기다려'라고 한다면... 

      한 3년까지는 기꺼이 콜!


#2.아마도 한국에서 최초의, 혹은 최초로 성공한 판타지 영화로 남지 않을까?


#3. 나쁜 놈을 원하십니까? 

     유연석을 써보세요~ 

     절대~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다음 뷰 베스트에;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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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곧 재개발이 이루어 질듯한,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유령같은 마을을 헤매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의 목표는 그 텅빈 마을에 남은 유기견들. 유기견들을 데려다 씻기고 치료해주고 새로운 입양처를 알선해주는, 무던히도 부지런하고 착한 그녀의 이름은 '혜화(유다인)'다. 동물 병원의 미용사로 일하는, 그닥 여유롭지도 못한 처지에 병들고 다쳐 새로이 선택받지 못하는 개들은 다 자신이 데려다가 키우는 그녀. 산동네의 허름한 그녀의 집은 마음씨 좋은 동물 애호가의 그것과, 병적인 집착으로 키울 여력도 안되는데 개들을 '수집'하는 이상 증세를 가진 사람의 생활 환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편, 혜화가 일하는 동물 병원의 원장 및 그의 아들과는 흡사 가족과도 같아 보이는 묘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 때로 혜화가 원장의 어린 아들의 밥을 챙겨 먹이기도하고, 원장은 별 거리낌 없이 차키를 맡기고 차를 쓰도록 하기도 한다. 때이른 성에 대한 관심인지 일찍 어머니를 잃고 혜화를 제 어머니인양 따랐던 아이의 모성 결핍인지모를 원장 아들의 젖가슴 집착에 짐짓 어르기도 하지만, 잠든 아이의 손을 슬며시 가슴팍 안으로 품곤 하는 혜화. 
 
 스물셋의 혜화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은 모두 조금은 넘쳐 보인다. 길잃은 개들을 돌보는 마음가짐이며 행동도, 원장의 아들에게 품는 모성의 감정도 사실은, 과잉이다. 자신의 물리적인 환경과는 일정정도 괴리된채로 마음이나 혹 감정이라 해도 좋을 어떤것이 그녀를 다그쳐 이끌어 간다. 이런 지금의 혜화를 다그쳐 끌고 나가는 그 무엇은 그러나 사실은 지극히 물리적인 '상실'로 인한 결과다. 5년전, 그녀나이 열여덟의 상실. 





 열여덟살의 '아이'가 아이를 가진 상황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낙태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 질 테다. 그나마 아이이자 어머니가 뱃속의 생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입양을 보내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사람들이 '합리적인' 기준으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경우는 비단 미성년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 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 그렇게 포기 되는 것들이 '생명'이라는 것.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아주 '합리적'으로 포기되는 10대 시절의 삶, 성취인지 생존인지 모를 돈벌이를 잘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절제 되는 스스로의 건강 혹은 가족이나 친구 따위의 관계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주 '합리적'으로 재구성 되는 가축들의 사육 환경등등. 

 사람들이 선택의 과정에서 유달리 '생명'에게 박한 이유는 아마 가장 만만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테다. 더 그럴듯한 비유를 해보자면 만기가 한참이나 많이 남아서 갚지 않아도 될 정도로 느껴지는 빚 정도 랄까? 쉽게 실감되지 않는거다. 당장에 그럴 듯 한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어날 일들은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지만, 청소년 시절의 감정과 감성을 방치하다 시피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는 체계화 시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쉽게 무시하고 지나갔던 작은 균열은 시간과 함께 성장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삶을 송두리채 동강내 버리곤 한다. 그리고'생명'을 저당잡힌 채로 누렸던 찰나의 단물을 다 빨아먹은 뒤로 이와같은 파열을 접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제 서야 후회를 한다. 원했던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국 선택했던것은 자신인 것을...

그래서 인가.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도저히 선택하지 못 할 것을 선택하라고 하는 충고라니. 
내 맨 가슴팍에 품기에는, 너무 따뜻한 영화다. 나는 아직 나중에 후회를 몰아서 하려는 사람인가 보다.






#1. 주워 듣기로, 운동 선수가 어떤 부위에 부상을 당하게 되면 다른 부위에도 부상이 생길 위험이 높아 진단다. 예를 들어 투수가 팔꿈치에 부상이 생겼다고 치면, 투구의 과정에서 팔꿈치가 담당해야 하는 부담을 팔꿈치가 온전히 담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부담이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어깨에, 허리에, 허벅지에, 무릎등에 더해지는 한계치 이상의 부담은 쉽게 그 부위를 다치게 만든다. 참 오묘하면서도, 당연한 신비.

#2. 쳇, 그런 후진 기어 따위 실제 인생에 있을리 없잖아. ㅠㅠ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비밀의 화원, (주) 인디스토리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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