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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스무살이 되면서 새삼 놀라웠던 점이 하나 있다. 내가 스무살이 되도록 그 많은 향단이 방자의 존재, 아니 그 후손들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문도 품고 있지 않았었다는 점 말이다. 분명 어느 순간에는 양반이 있고 '쌍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누구나 '어디 어디 ㅇ씨에 무슨 무슨 파 몇 대손이요' 하는 말을 하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누가 쌍것들을 다 잡아 죽인일도 없는데 어떻게 양반들 후손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이며 그렇게 불가사의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왜 의문을 갖고 살지 않는걸까? 하지만 비슷한 불가사의는 비교적 근래의 일에 있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386세대'의 정체 말이다. 지금나이 30대(에서 40대),80년대 학번의, 60년대 출생자들이 뭔가 엄청난 것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묶어서 말하곤 하는데 가만, 80년대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나이 30대에 60년대에 출생했으면서 '80년대 학번은 아니었던' 사람들은 그 당시에 뭘 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마치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양 신경도 안쓰는 그들은 말이다.


 

                                                            두고 두고 봐도 이 포스터는 대박 ㅋ



주인공 강대오는 60년대 출생자이면서 80년대 학번은 아닌 중국집 배달원이다. 그리고 배달 갔다가 본 여학생에게 반해 고백이라도 해 볼 양으로 접근하다가 무려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이라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가 우직한 달음박질로 미국의 현대사를 가로지르 듯, 우리의 강대오도 별 생각없이 뚜벅 뚜벅 한국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한 지점을 향해 걸어 들어 간다. 그러고는 마치 검프가 그저 뛰었을 뿐인데 전쟁 영웅이 되었던 것처럼, 그저 청춘의 한 때를 사랑으로 불살랐을 뿐인데 학생운동의 정점에 선 지도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영화가 주는 일차적인 재미는 운동권 대학생과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두 부류의 세계가 충돌하는 이 지점이다. 어디 출신이냐는 말에 '...'를 얼버무리다 '중앙대' 학생이 되어 버린 강대오는 오해를 벗을 위기(?)마다 미국인 교수와의 인연으로 얻어 들은 몇 마디의 영어 문장으로 영문학과 학생이 되어 상황을 헤쳐 나간다. 대오가 이소룡 영화를 보며 익힌 무공(;;)은 피는 뜨거우나 책상머리에서 공부만한 백면서생들의 전투력을 향상 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신 식민지니 파쇼니 하는 말들과 함께 운동권 대학생의 세계를 접한 대오를 비롯한 배달원 세계의 사람들은 세상의 불건전함에 눈을 뜨게 된다. 


먼 훗날 어느 뚱뚱한 가수가 나와 전경과 학생이 서로 열광하고 싶은 마음 같다며 부르 짖게 되는 것처럼, 이전에 사귀던 누군가가 전경 방패를 들고 서 있고 그 상대가 반대편에 서서 각목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 가능 한 것 처럼, 80년대의 어느날 미국 문화원을 점령한 것은 단지 대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실제 미국 문화원 점거 사태에 중국집 배달원들이 참여했다는 차원의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그들이 거기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그들이 청춘이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다. 대학생 뿐 아니라, 청춘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비록 가상의 설정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중국집 배달원도 그 자리에 함께 서서 혁명을 (사랑에 대한 혁명이던 월차에 대한 혁명이던, 혹은 민.주.주.의. 에 대한 혁명이던...) 외칠 수 있었다. 그 들도 청춘이었기에. 


그러나 지금에 와서 '꼰대'가 된 그 들 386 (내지는 486) 세대는 학번 구분으로 그 시절 젊고도 뜨거웠던 열의를 한정지어 (본의던 아니던) 가로채 독식함으로서 물리적으로 대학생이 아니며 물리적으로 어리지 않았던 수 많은 청춘의 존재를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거기에 자신들의 존재를 증발시킨 후 온갖 부조리에 침묵하는 지금의 20대에게 책임을 물어 개새끼라는 낙인을 찍고 있기도 하다.[각주:1] 그렇기에 80년대의 어느 지점에 미국 문화원에 모였던 젊은이들을 살펴봐야할 필요가 생기는 거다. 젊었고, 사랑에 괴로워 했고, 한 때 가졌던 높은 꿈이 무너지는것만 같아 한 없이 흔들렸던 그 청춘들을 말이다. 단지 과거의 어느 한때를 추억 할 '꼰대'들 뿐만이 아니라,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를 박물관 화석처럼 여기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먹고사니즘에 충실할 뿐이라며 그 시절을 쌩쌩 지나쳐 갔던 '배달의 기수'들 역시나. 


거기다 참고 봐줘야 할 정도로 영화가 교조적이거나 전개가 툭툭 끊어지는것도 아니다. 특히 오프닝 크레딧에 대한 정성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완성도를 보여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코미디가 그렇게 대박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곳곳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장치들은 멜로적 감성의 대 폭발을 위해 착실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특히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문화원 외벽에 붙여놓은 글자들이 두어 차례의 소동 후에 어떤 메세지로 남는지 꼭 확인해 보길 추천.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물론 '열의'의 독식이 부적절 한 것 만큼이나, 낙인을 찍는것에 대한 책임을 전체의 386에게만 묻는것도 부적절 하다고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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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바라기의비명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2.10.26 23:47

    동감합니다~


 아마도 곧 재개발이 이루어 질듯한,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간 유령같은 마을을 헤매는 여자가 있다. 이 여자의 목표는 그 텅빈 마을에 남은 유기견들. 유기견들을 데려다 씻기고 치료해주고 새로운 입양처를 알선해주는, 무던히도 부지런하고 착한 그녀의 이름은 '혜화(유다인)'다. 동물 병원의 미용사로 일하는, 그닥 여유롭지도 못한 처지에 병들고 다쳐 새로이 선택받지 못하는 개들은 다 자신이 데려다가 키우는 그녀. 산동네의 허름한 그녀의 집은 마음씨 좋은 동물 애호가의 그것과, 병적인 집착으로 키울 여력도 안되는데 개들을 '수집'하는 이상 증세를 가진 사람의 생활 환경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편, 혜화가 일하는 동물 병원의 원장 및 그의 아들과는 흡사 가족과도 같아 보이는 묘한 관계로 맺어져 있다. 때로 혜화가 원장의 어린 아들의 밥을 챙겨 먹이기도하고, 원장은 별 거리낌 없이 차키를 맡기고 차를 쓰도록 하기도 한다. 때이른 성에 대한 관심인지 일찍 어머니를 잃고 혜화를 제 어머니인양 따랐던 아이의 모성 결핍인지모를 원장 아들의 젖가슴 집착에 짐짓 어르기도 하지만, 잠든 아이의 손을 슬며시 가슴팍 안으로 품곤 하는 혜화. 
 
 스물셋의 혜화에게서 드러나는 감정은 모두 조금은 넘쳐 보인다. 길잃은 개들을 돌보는 마음가짐이며 행동도, 원장의 아들에게 품는 모성의 감정도 사실은, 과잉이다. 자신의 물리적인 환경과는 일정정도 괴리된채로 마음이나 혹 감정이라 해도 좋을 어떤것이 그녀를 다그쳐 이끌어 간다. 이런 지금의 혜화를 다그쳐 끌고 나가는 그 무엇은 그러나 사실은 지극히 물리적인 '상실'로 인한 결과다. 5년전, 그녀나이 열여덟의 상실. 





 열여덟살의 '아이'가 아이를 가진 상황이라면 적어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낙태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여 질 테다. 그나마 아이이자 어머니가 뱃속의 생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곧바로 입양을 보내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사람들이 '합리적인' 기준으로 인해 무언가를 포기하는 경우는 비단 미성년 여성이 임신을 했을 때 뿐만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는 일정한 공통점이 있는데 대부분 그렇게 포기 되는 것들이 '생명'이라는 것.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아주 '합리적'으로 포기되는 10대 시절의 삶, 성취인지 생존인지 모를 돈벌이를 잘하기 위해서 '합리적'으로 절제 되는 스스로의 건강 혹은 가족이나 친구 따위의 관계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주 '합리적'으로 재구성 되는 가축들의 사육 환경등등. 

 사람들이 선택의 과정에서 유달리 '생명'에게 박한 이유는 아마 가장 만만하게 느끼고 있기 때문일테다. 더 그럴듯한 비유를 해보자면 만기가 한참이나 많이 남아서 갚지 않아도 될 정도로 느껴지는 빚 정도 랄까? 쉽게 실감되지 않는거다. 당장에 그럴 듯 한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어날 일들은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지만, 청소년 시절의 감정과 감성을 방치하다 시피 무시한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 지는 체계화 시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그러나 쉽게 무시하고 지나갔던 작은 균열은 시간과 함께 성장해 거대한 파열음을 내며 삶을 송두리채 동강내 버리곤 한다. 그리고'생명'을 저당잡힌 채로 누렸던 찰나의 단물을 다 빨아먹은 뒤로 이와같은 파열을 접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그제 서야 후회를 한다. 원했던것은 이게 아니었다고. 하지만 결국 선택했던것은 자신인 것을...

그래서 인가. 조금 답답하기도 하다. 도저히 선택하지 못 할 것을 선택하라고 하는 충고라니. 
내 맨 가슴팍에 품기에는, 너무 따뜻한 영화다. 나는 아직 나중에 후회를 몰아서 하려는 사람인가 보다.






#1. 주워 듣기로, 운동 선수가 어떤 부위에 부상을 당하게 되면 다른 부위에도 부상이 생길 위험이 높아 진단다. 예를 들어 투수가 팔꿈치에 부상이 생겼다고 치면, 투구의 과정에서 팔꿈치가 담당해야 하는 부담을 팔꿈치가 온전히 담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부위의 부담이 더 늘어나게 된다. 그렇게 어깨에, 허리에, 허벅지에, 무릎등에 더해지는 한계치 이상의 부담은 쉽게 그 부위를 다치게 만든다. 참 오묘하면서도, 당연한 신비.

#2. 쳇, 그런 후진 기어 따위 실제 인생에 있을리 없잖아. ㅠㅠ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비밀의 화원, (주) 인디스토리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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