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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미츠 오브 컨트롤'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12.13 리미츠 오브 컨트롤(The Limits of Control,2009) -'본질'은 비싼 것-
이름만 얼핏 들어 본 듯한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그의 영화를 극장에서 볼 기회가 있기에 선택을 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인터넷 검색 결과에 무시무시한 영화평들이 난무하기에 조금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기분은 생각보다 유쾌. 뭐 미리 마음의 준비가 되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기는 하다.




1.
검색을 해 보니 '론 맨(고독한 남자?)'로 소개가 되고 있는 주인공 (이삭 드 번콜). 아마도 엄청난 임무를 가지고 스페인에 도착한 듯한 사내다.  그리고 마치 점조직 처럼 흩어져 있다가 서로를 찾아갈 단서를 그에게 전해주는 사람들. 그리고 주인공은 그 일련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최종 미션에 도달, 결국 목표를 제거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 그런데 문제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 단서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알아챌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 심지어는 그 알쏭 달쏭한 정보들이 단서이기는 한 것인지 조차 확실하지가 않다.

기타,블론드,누드,물러큘러스,멕시칸,운전사 등의 인물이 주인공과 만나 정보를 교환하는 에피소드들은 일련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1.혼자서 두개의 컵에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기다리고 있는 주인공.
2. 위의 인물들이 주인공을 찾아와 앉은 후, 각자 관심있는 화제거리(악기,영화,슈베르트,다이아몬드,분자 등)에 대한 질문을 한다.
3. 주인공이 별 말없이 복서 그림이 그려진 성냥갑을 내밀면 같은 디자인의 색깔이 다른 성냥갑을 내놓는 인물들.
4. 그리고 새로 받은 성냥갑 안에는 암호와 같은 글자들이 작은 쪽지에 적혀있고, 그 쪽지 내용을 확인한 주인공은 한 모금의 커피와 함께 그 쪽지를 삼켜 버린다.
5.선문답과도 같은 인물들과의 대화 이후에 주인공은 미술관으로 향하고, 아마도 대화중의 힌트(혹은 쪽지에 적힌 정보)로 찾아 갔음직한 그림에서 또 다른 힌트를 얻어 다음 정보에 접근하게 되는 주인공.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첨가 하자면,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처음에는 스페인어로 주인공에게 접근 하지만, '스페인어 할 줄 모르죠?'라는 처음의 질문 이후에는 알아서 영어로 대화를 계속해 간다. 



2.
이런 에피소드들로 영화가 중반부에 까지 다다르자 나는 마치 영화 상영 중간에서야 극장에 들어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영화 초반부에 저런 알쏭 달쏭한 정보들에 대한 힌트가 모두 설명이 되는데 그 중요한 장면을 보지 못한 관계로 영화의 내용을 전혀 알아먹지 못하게 된 처지가 된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일정한 공통점을 지닌 저 행동들이 어떤 정보에 접근하기 위한 힌트가 되는것 같다고 내가 느끼는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주인공은 이삭 드 번콜의 연기와 효과적으로 사용된 배경 음악.


 때때로 기 체조(?)를 통해 수도자와도 같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에, 적당히 예절바른 듯 하지만 까칠함을 굳이 숨기지는 않는 모습에, 단호한 듯한 무념 무상의 눈빛과 오다리의 팔자로 걷는 걸음 하나 하나 마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이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어찌보면 논픽션 다큐멘터리의 장면같기도 한 주인공의 모습. 
 
그리고 어떤 인물이 등장한다거나 어떤 사물앞에 섰을 때 쓰이는 배경 음악들은 주인공의 눈앞에 놓인 정보들이 중요한 것임을 은연중에 드러내 보인다. 물론 이는 장르 영화에서 쓰이는 관습에 익숙해진 결과로 나타나는 반응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지루하게까지 보이는 주인공의 묵묵한 일상의 한가운데 그 진행이 적지않게 극적인 음악이 쓰인다면 그걸 보는 (어떤;;) 관객의 입장에서는 '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지루한 일상과는 다른 무언가 의미를 지닌 사건이구나'하는 짐작을 하게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음악은 충분히 그걸 가능하게 할만 했다고 생각한다.


<영화에 쓰인 음악을 가져오기 위해 퍼온 예고편. 예고편만 보고 극장 간사람들은 화좀 나겠네.ㅎ>



3.
이렇게 따지고 본다면 주인공의 행동에 개연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관객이 그 개연성을 알아채지 못할 뿐이다. 주인공의 연기가, 어떤 특정한 대목에서의 음악의 사용이 그 개연성을 설명해 주고 있질 않나. 그리고 결국은 그 여정의 결과로 목표에 도달 했으니 그 과정의 정합성은 쓸만했다는 소리다. 그러나 사람들은 은연중에 관객이 개연성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와 개연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른 사실을 똑같이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가상의 현실, 간접의 경험일 뿐인 영화의 본질 보다도 그 영화를 통해 경험할 한 두시간여의 판타지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고려의 결과로 영화가 가진 상품, 혹은 인공물로서의 특징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것 처럼 취급되기 일쑤다. 마치 포장만 뜯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빵을 대하듯, 두 시간여의 시간과 영화 티켓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어떤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책임을 모두 영화에 맡겨버리고 영화가 설명하는 정보에만 의존한다. 그러나 수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영화는 그 메세지가 불특정 다수에게 비교적 온전하게 전달 되도록 비약,함축,생략,과장등을 사용하므로 영화가 담고 있는 내용들만으로는 결코 그 본질에 가깝게 갈 수 없음에도 두어 시간의 투자와 영화 티켓 값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영화에게 본질에 가깝게 내려다 놓을 것을 요구한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영화가 부실했기 때문이며 거기에는 관객 그 자신의 책임은 전혀 없고 단지 영화를 잘못고른 안목의 자책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는 그 본질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경계도 허술하기 이를데 없이 그저 영화에서 말해주는 정도의 정합성을 증거로 해서 영화가 말해주는 것이 본질의 전부인양 받아들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게 내가 본질에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는 온전히 본질에 도달하려는 영화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서슴없이 나올 수 있는 거다. 사회가 잘못돌아가고 있는건 다 정치인이나 부자들 때문이라는 대포집의 책임전가 토크와 비슷한 맥락이랄까. 나는 죄안짓고 착하게 살고있다는 것으로 할 몫을 했고, 더 힘이있는 사람들은 특별한 할 몫이 있으며 그 특별한 몫을 안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이 사회가 이모양 이꼴이 되고 있다는 의미. 거기에 '나'는 이미 내 몫을 했다는 구실로 빠져나갔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힘을 쏟지 않느냐가 빠져있으니 왜 나의 환경이 이런 지경인지 파악하는 데는 항상 어려움이 따를 수 밖에. 분풀이만 있을 뿐 진짜 이유는 도저히 알아 낼 수가 없다. 그리고 현상에 대해서 이렇게 파악하는 것이 그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limit'가 되는 것이고,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본질에는 다가갈 수 없다. 마치 극 영화를 접하는 관객은 영화의 메세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영화에서 제공하는 정보 이상의 어떠한 생각을 더 쓰지 않아도 된다는, 스스로가 설정한 한계 때문에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이런 메세지들은 영화의 엔딩과 함께 올라가는, 영화의 제목을 변형시킨 다음과 같은 문장에 드러나 있다.  

'no limit no control'








#1.내가 어떻게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결론에 도달 했느냐고? 그저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했을 뿐이다.
#2.성냥갑이며 쪽지며 미술관은 다 잊어버려라. 내 생각일 뿐이지만 저것들은 그저 장치를 위한 장치일 뿐, 파고 들면 짜증만 난다.ㅎ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스폰지이엔티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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