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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탈리 포트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3.05.02 레옹(Léon,1994) -잊지못할 '핀업 무비'-
  2. 2011.02.28 블랙 스완 (Black Swan, 2010) - 날개, 녹아내리다-

'Pin-up Girl'이라는 단어가 있다. 벽을 장식하는 포스터나 화보, 그 포스터나 화보를 장식하는 여성들을 말하는 당대의 아이콘같은 의미의 단어 말이다. 그런 작명 법이라면 '핀업 무비'라는 단어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런 경향이 많이 없어졌지만 한 때엔 유난히 '잘 팔리는' 영화 포스터가 있었고, 경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액자로 까지 만들어져 연예인 사진이나 유명 그림의 모사작과는 또 다른 나름의 지분을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세가지 색  삼부작 '레드,블루,화이트'는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를 치지 못했음에도 그런 포스터를 생각해 볼 때 빼놓지 못할 작품이고, 아무래도 압권은 '그랑 블루'겠지. 물론 반드시 'Le'가 들어간 프랑스어 버전의 포스터 여야 겠고. 내 기억으로는 이런 핀업 무비의 역사는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지만 그 와중에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영화가 또 한편 있다. 바로 이 영화 '레옹'이다.



사실 몇 년만에 보는건지도 가물가물해질 정도로 오랜만에 (그것도 극장에서) 본 '레옹'은 좀 헐거운 짜임새의 영화였다. 프로페셔널 킬러와 부패 경찰 무리에 의해 가족을 모두 잃은 소녀의 인연으로만 끌고 가기엔 줄거리가 너무 널널한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아무리 어리숙한 면이 있는 레옹이지만 그렇게 철저하게 평상성을 유지하고 살던 킬러가 소녀의 불행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데 별 방해를 받지 못한다는 점도 좀 그렇고, 그렇게 기다리고 기대했던 거에 비하면 중간 중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정도여서 좀 놀랍기도 했다.


 그 빈틈을 메워주고 있는건 아직까지도 생명력이 다 하지 않은 레옹과 마틸다의 캐릭터. 냉정한 킬러의 모습과 '빙구'눈빛이 공존하는 장 르노의 레옹과 이제 갖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위태롭고도 당찬 모습을 보여 준 나탈리 포트만의 마틸다는 일당백의 기세로 영화를 끌고 간다. 나이는 먹을 만치 먹었지만 아직 아이인 레옹과, 이미 다 자랐지만 아직 나이가 충분하지 못한 마틸다는 마찬가지로 힘들고도 서툰 걸음을 한걸음씩 걸어 낸다. 그렇기에 둘의 여러가지로 위태 위태한 사랑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던 거겠지. 더불어 그 때엔 알지 못했던 부분이 음악의 사용인데, 마치 표정과 몸짓으로만 전달되는 의미를 보완하기 위해 배경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던 무성 영화 시절의 작품처럼 이 영화엔 배경음악이 거의 쉬지 않고 계속 사용된다. 조금은 헐거운 이야기를 대신해 감각적인 영상과 함께 화학작용을 일으켜 보다 매력적인 작품이 되게 하는데 적지않게 기여를 했던게 바로 이 배경 음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예전에 봤을 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한 보석과도 같은 장면이 있는데 스탠스 필드(게리 올드만) 일당이 마틸다의 가족을 '처치'하러 몰려드는 대목이 그랬다. 약속했던 정오가 되자 그 차림새도 다양한 무리들이 하나 둘 계단을 타고 올라와 보는 사람이 없는지 경계하며 각자 위치를 잡아가는데 그 별스러울것 없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리듬감이란...ㅎ 한 사람은 쭉 계단을 올라가 위층을 경계하고, 뒤에 등장한 두 사람은 복도 입구 정도에서 주위를 살피며, 그 순간 등장하는 '게.리.올.드.만'. 다시 위층에 올라갔던 사람이 내려와 그와 함께 일을 치루는 그 동선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쾌감까지도 느끼게 만드는 그런 것이었다. 정말 특별할것 없는 그저 경계하고 자리 잡는 대목일 뿐인데도 오히려 어떤 총격전 보다 더 화려하면서도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던 대목이라고 느꼈다.


따지고 보면 사춘기 아이의 성장기로도 읽힐 만한 이야기다. 앞서 거론 했듯이 나이만 먹었지 세상과 지내는 것에는 열두살 소녀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레옹은 그저 안전한 껍데기 속에서 최대한 노출을 꺼리며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항상 행복해 하고, 궁금한 것이 없는 그런 삶. 그는 화분 속에서 안전하고 편안하다. 반대로 억지로 광야로 내팽개쳐진 마틸다는 가족을 잃은 슬픔마저도 솔직하게 남에게 털어놓지 못할 정도로 위악적이다. 아버지는 누가 죽이지 않았다면 내가 죽였을 거고, 어머니는 어차피 친엄마도 아니었고, 언니는 어차피 다이어트도 성공 못할거 죽어서 아쉬울거 없고, 그저 죄없는 네살짜리 남동생을 죽인것만이 원한의 이유라 말하는 마틸다는 지극히도 열두살 소녀 답지 않은가. 몇 분 전까지 원수같이 으르렁 댔던 가족을 그리워하고 죽음에 대해 슬퍼하기엔 동생이라는 핑계가 꼭 필요한것이. 그렇게도 미숙한 둘은 서로를 배워가며 세상에 닿는 법을 알아간다. 그렇게 둘은 나란히 서서 세상에 뿌리를 내렸다. 




                                                              '감기 예방은 비니 모자로 부터'








#1. 생각해 보면 학교도 잘 안나가는 마틸다가 어떻게 먼로의 'Happy birthday, Mr.President'를 알았던 걸까? 

     저쪽 문화권에선 먼로와 그 노래를 연결시키는게 그렇게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건가?

     하기야, 그런걸 학교에서 가르칠 일은 없으니 학교 안나가는거랑은 별 상관이 없긴 하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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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밀납으로 붙인 날개로 하늘을 날다 너무 높이 날아 올라 날개의 밀납이 녹아내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카루스의 이야기. 대개는 욕심을 조절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물로 그려지곤 하는 이카루스지만 묘하게 그 무모함을 흠모하는 시선도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뻔히 결과가 보이는 상황에서 순간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파국에 이르는 아둔함에 대한 경계, 그리고 한계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온몸을 내던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 중에서. 누가 정답을 내려 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안에서 등장 인물들이 다루게 되는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극의 이야기 구조가 점차 등장 인물들간의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로 확장된다는데에 있다. 심지어 그 이야기 구조가 이 영화 밖의 현실의 배우들에게서도 구현되는 듯한 힌트까지 찾아 볼 수 있다. 

1. 백조의 호수.
  마법에 걸린 백조들이 있다.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이 되는 저주다.  어느날 사냥을 나갔던 왕자가 백조 여왕을 만나게 되었고, 진실한 사랑만이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백조 여왕과 사랑에 빠진 왕자는 얼마 후에 있을 성인식 때 청혼할 것임을 약속한다. 그런데 저주를 내린 마왕이 자신의 딸과 위장한 채 나타나서 왕자가 백조 여왕으로 알고 마왕의 딸에게 청혼을 하고 만다. 뒤늦게 이를 알아 차린 왕자가 백조들이 있는 호수로 향하지만 상심한 여왕은 사람인채로 호수에 뛰어 들게 되고 왕자도 곧 뒤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 희생의 결과로 마법은 풀리게 되고 남은 백조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2. 뉴욕 시립 발레단과 니나.
 새 시즌을 '백조의 호수'와 함께 맞게 된 뉴욕 시립 발레단. 가장 중요한 배역인 '백조 여왕'을 우여 곡절 끝에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따내게 된다. 하지만 우아하고, 때로 연약하기도 한 백조의 연기에는 나무랄 곳이 없으나 관능적이며 도발적인 '흑조'의 연기는 끊임없이 지적 대상이 되고 마는 그녀다.  딸을 낳느라고 자신의 발레리나의 경력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아직 12살 소녀 취급을 받으며 사는 니나에게 관능이니 도발이니 하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단장(벵상 카셀)의 폭력과 열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압박과 호시 탐탐 니나의 자리를 노리는 동료들의 존재가 니나를 괴롭히는 요소들. 더구나 바로 이전까지 발레단의 정상에 있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추락은 니나에게 왠지 자리를 빼앗은것만 같은 죄책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정상에 선 자신도 언젠가 맞이하게 될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불안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흑조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그토록 원하는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인식자체가 무엇보다 니나를 몰아 친다. 흑조로 변신하는 마법과 같은 일을 해내야 하는 백조의 비극. 바로 니나의 운명이었다.

3. 블랙 스완과 나탈리 포트만.
 영화 속에서 단장은 니나에게 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스스로를 버릴것을 요구한다. 백조 그 자체인 니나가 흑조를 표현해 내려면 관능이며 도발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평들이 이미 밝힌바 있듯이 영화 속의 니나에 대한 이런 지적은 어느정도 배우 나탈리 포트만에게도 유용한 것이었다. 사실 이전까진 '레옹의 그 소녀'로 밖에는 더이상 다르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본인은 그녀가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필모그래피를 갖추고 있는 배우이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남겼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기대 할 만한 이미지에서 별반 달라지는 점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녀의 작품을 대부분 보지 않았던 입장에서 이런 평을 내린다는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배우 활동을 하는 동안에 다른 많은 작품들이며 배우들이 강렬하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걸 생각해 보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준 배우는 아니였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자비없이 달라 붙은 옷을 입고 발레리나의 몸동작을 보여 주며, 예술가 특유의 날카로운 불안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며, 중요한 순간에 강렬한 에너지를 내 뿜는다. 마치 무대에서 니나의 흑조에 기립박수를 보내던 관객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최고 발레리나 '였던' 베스의 역을 맡은 배우가 위노나 라이더라니. 비틀 쥬스의 다크 서클 소녀 였을 때부터 나의 여신이었던 위노나 라이더. 가위손의 그녀 였던, '리얼리티 바이트'의 그녀 였던, 코폴라의 '드라큘라', '처음만나는 자유'의 그녀 였던, '그랬던'. 심지어 난데 없는 '도벽력'이 드러나며 홍역을 앓았던 위노나 라이더. 영화를 보면서는 본격적으로 극에 등장하기 전에 한물간 노땅 정도로 인물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베스로 그녀가 등장하자 놀랐고, 나의 여신이었던 위노나 라이더를 고작 저 몇 컷 정도만 출연시켰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런데 실상은 팬이었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역할과 배우 자체가 닮아 보였다. 이제 더이상 중심에만 위치하려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슬며시 옆으로 비켜나며 존재를 빛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혹은 그래야 하는 처지가 그래 보이는 거다. 중심에서 밀려나 좌절하며 괴로워 하는 베스에게서 위노나 라이더가 보이는것 같은, 정체모를 쾌감을 영화는 안겨 준다.




 이렇게 되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를 보는 관객에서, 무대 뒤의 배우를 본 경험 또한 직간접적으로 해 왔던 관객의 입장에서, 비로소 배우 안에 들어가 그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존재가 된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의 나탈리 포트만을 통해 니나에게로, 다시 니나에게서 백조로 이어지는 감정의 동화랄까?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파멸에 가깝도록 예술적 성취를 탐닉하는 니나와의 동화를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에 다다르게 된것 같다. 
'예술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그 목적은?'

 백조의 몸을 버리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픈 백조 여왕처럼, 예술가들은 최대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어떤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최대한 일상의 그 무엇에서 벗어난 것일 수록 지지를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파국의 상황과 예술로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성취의 언저리가 묘하게 겹쳐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대관절 죽음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다그쳐 이루어야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돈? 명예? 성취감? 
 
 심지어는 그저 옆에서 관망하며 박수나 쳐줄 뿐인 사람들 조차도 그런 성취는 스스로를 버려야 하며 때로 지극히 소모적인 고통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란걸 잘 안다. 그런데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갉아 먹어가면서 까지 이루어내는 성과를 찬양하며 지지를 보낸다. 그렇다면 옆에서 그러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지점에서 그런 '감동'을 느끼게 되는걸까? 혹 내가 무서워서 감히 도전하기를 꺼리는 경계 너머를 침범해 보는 대리 만족을 원하는 걸까? 그 댓가를 '지불'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원형 극장의 검투사에게 소리치는 모습과 별반 다를것도 없게 되는건가;;;

 아주 오래전 부터 가져왔던 생각이지만, 동네마다 다른 버전의 아리랑이 불리며 누구나 다 아리랑의 가수였던 시절을 넘어선 이후로 예술이라는 것이 통용되는 과정은 어찌보면 참 잔인하면서 위선적인것 같다. 

 





#1. 영화라는 매체가 아니었다면 전달하지 못했을 강렬함. 굳. 
#2. 오랜만에 대뇌피질이 호강 했다.ㅎ
#3. 위태 위태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루는데는 발레라는 요소가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4. 감독인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전작인 '레슬러'에서도 퇴물 레슬러로 '미키 루크'를 선택했다. 아마도 배우 캐스팅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인 듯. '레슬러'도 꼭 한번 봐야겠다.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20세기폭스 코리아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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