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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윤영화(하정우)에게 테러란 일상과도 같았을 것이다. 먼 곳에서 부터 전해지는 텍스트와 화면으로 접하는. 그런식으로 윤영화의 입을 통해 전해진 테러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러나 어느새 사고를 치고 아침 라디오 방송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그에게 다가온 테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동아줄에 다름 아니었다. 심지어 별다른 노력도 없이 맞이 하게된 테러범의 전화라니, 이건 일생 일대의 행운이질 않은가. 그러다 그 테러의 위협이 바로 자신의 귀에도 꼽혀서 삑삑거리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테러의 위협에 몸서리를 치게 되는 그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게 된다면, 윤영화에게 테러란 어떤 의미로 다가가게 될지...





아주 '쫄깃쫄깃한' 영화다. 근래에 보기 드물정도로 밸런스가 잘 맞아 돌아가는 한국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전화로 테러범과의 심리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게 쇼킹할 정도로 새로운 것은 아니나, 좁은 방송 중계석에서 윤영화가 접하게 되는 테러에 대한 압박이 다양한 차원에서 숨막힐 듯이 전해진다. 방송 모니터를 통해 사건 현장을 바라보게 했다가, 카메라를 밖으로 돌려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을 멀리서 잡았다가, 핸드폰으로는 정부에서 나온 대 테러 관계자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방송으로는 테러범과 밀당을 했다가... 이런 전환들이 미처 하정우가 헛개수 먹방을 하고 있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할정도로 숨막히게 이루어 진다. 거기다 긴박한 상황에 휘말리지 않겠다는듯이 한번도 평정심을 흐트리지 않는 정부의 대 테러 요원역의 전혜진은 관객과의 밀당에 있어서 중요한 무게추가 되어 준다. 


그러나 이런 장르적 성취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부분은 있다. 테러가 이루어지는 메카니즘이 더 자세하게 묘사 되었다면 장르적 쾌감이 훨씬 배가 되었을 텐데 애초에 그런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보다 '어찌 어찌해서' 각종 사회 시스템을 뚫어내고 엄청난 화약까지 손에 넣은 절대적인 능력의 테러범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뿐이다. 겉으로는 테러범과의 밀당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테러범은 실제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정보'를 넘어선 오감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도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영화는 테러범과 테러에 집중하기 보다 그 테러를 접하는 인물들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는 듯 하다. 이를테면 애초에 신고조차 미루고 같이 대박한번 내보자는 부추김에 그를 따르려 했던 윤영화의 라디오 프로그램 피디는 티비 생중계라는 큰물을 선택한 윤영화에게 물을 먹게 되고, 테러범과의 전화연결을 카드로 한 윤영화와 자리복귀를 거래했던 보도국장 역시나 어디까지나 윤영화를 거래의 도구로 볼 뿐이다. 애초에 테러가 동아줄에 불과했었던 윤영화와 같이,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3자의 사정은 그저 부차적일 뿐 자기앞에 놓인 이권에만 매달린다. 사람들이 다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저지른 일이니 잘못한게 아니라는 테러범에 대해서 누구 하나 나서서 당당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장르적 완성도를 살짝 비껴가면서도 이른바 '사회 고발 영화'의 전형에서도 비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찰, 행정, 언론등의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 속의 난맥상이 이 테러 속에 녹아 있지만 그 난맥상이란건 장벽 바깥의 뿔달린 도깨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시민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포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 난맥상이 모이고 모여 뿔달린 도깨비가 만들어 지는거고. 앞서 말했던 '사회 고발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그래서 저런 영화를 만들어서 뭘 어쩌자는거지? 저 영화 보고 사람들이 나서서 대신 시위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건가?' 였다. 그런 영화에는 다른 이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는 도깨비들이 나오지만, 정작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기는 그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 및 제작자와 8000원에 부당함에 대한 부채감을 갚으려는 관객들 역시나 마찬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남의 상갓집에서 한판 잔치라도 벌이는 듯한 모양새로 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난맥상을 전달하기에 소흘하지 않기로 한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최고 블루칩 하정우와 쫄깃쫄깃한 영화적 쾌감이 아니면 이 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았을 것임을 잊은것 같지도 않다. '나 이렇게 고생해서 이런 말도 했어요, 뿌잉뿌잉'하기 보다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있는 사람들의 이정도 프로페셔널한 결과물이라면 드러 내놓고 뿌잉뿌잉하는 결과물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지지와 응원을, 그에 앞서서 훌륭한 생산물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이제는 식상해진 배우 하정우에 대한 찬사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과연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누가 윤영화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을까? 연배를 좀 올려서 선배격인 배우들까지 포함 시킨다고 해도 꼽을 만한 후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좁은 라디오 부스에 갇혀서 한시간여 이상을 테러범과 보도국장과 대 테러 요원한테 시달려야 하는 이 엄청난 미션 앞에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냉정한 계산은 어김없이 효과적이었다. 단언컨데, 배우 하정우는 지금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다.[각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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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eat. 병헌 리. [본문으로]
Posted by 어린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