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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다. 아, 이건 산사람들을 위한 의식이구나 하는.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서 언제나 낯설고 버겁기만한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사람들은 죽은 자를 편한곳에 잘 모셨다는 위안과 남은 삶을 서로 잘 살아내자는 다짐 같은걸 가지길 원한다. 제주의 4.3이 비극인 이유는 그 시절의 안타까운 죽음 뿐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맞고 나서도 남은 사람들이 제대로 된 의식을 치르지 못했다는데 있지 않나 생각해 봤다. 마치 지금은 그 지역의 젊은이들에게도 낯설어 졌다는 제주어(語)처럼, 그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만의 아픔이 되고 있을 뿐 누구하나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 보고 그들과 함께 '다짐'을 확인하는 의식을 치르지 못했다. '육지'의 사람들에겐 외국어 마냥 낯선 제주어처럼 4.3 역시나 먼 옛날에 외국 어디메 쯤에서 벌어졌던 사건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제주어를 그대로 다 살린 이 영화의 선택은 적절했다. 물론 제주어 자체에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그것을 지켜내려는 시도 속에서 나온 결과물일 수도 있겠으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고통을 이겨내려 발버둥을 쳤던 그 당시의 제주 사람들의 누가 더 잘나고 못날 것도 없이 순수한 삶의 의지를 그들이 쓰는 말을 통해 전달받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지슬'역시나 제주도 말로 '감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딱히 예쁠것은 없지만 땅의 양기를 고스란히 다 품어내 고된 겨울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었던 구황식물과 살아남기 위해 땅속에 들어갔고 여지껏 땅에 묻혀 빛을 보지 못했던 당시의 제주사람 사이에서 연관을 갖는데는 '감자'라는 표현 보단 '지슬'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들은 폭도로 여긴다'는 공표에 해안선을 향해 가야하는지 아니면 군인들을 피해 더 안쪽으로 숨어 들어가야 하는지 우왕 좌왕하는 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굶을 돼지 걱정, 학교에 두고 온 책걱정이 한창이다. 그들의 모질고도 질긴 생명력은 어두운 동굴에 드러앉아있다 바람을 잠시 쏘이러 나온 참에도 밭에서 일하다 맞는 바람과 여기 올라와 맞는 바람이 다르다는 농아닌 농을 던지게 할 정도이나, 어미의 목숨이 끊어진 상징과도 같은 구운 감자를 아무말 없이 동굴의 주민들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비정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감자들이 검은 흙에 묻혀 그 씨알을 키우는 동안 더 할데 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흙 바깥의 제주도의 사정 처럼 그런 처절한 삶에의 투쟁의 이면엔 아름다운 화면들이 오롯이 드러나고 있다. 그 사단이 난 와중에도 누구 달음박질이 더 빠른지 재는 '말다리' 상표와 만철이의 달리기 시합이 비로소 이루어 지는 장면은 마치 그림자 극을 보는 것 처럼 아련하고 아름답게 느껴지는데, 그 달음박질을 하는 민철의 가슴속엔 무력하게 연인을 떠나보낸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그 장면을 더욱 시리고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라고 느꼈다.   


이 영화는 오해 할 여지도 없이 씻김굿내지는 위령제의 역할을 위해 만들어 졌는데, '신위,신묘,음복,소지'의 각 챕터가 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쓰이는 그 단어와 의미 말이다. 그런데 이 씻김굿의 대상은 단지 그 당시에 죽임을 당했던 제주 사람들만을 위한것은 아닌 듯 하다. 영화는 그 들을 죽이러 내려온 '육지의' 군인들 역시나 시대의 피해자들이며 제주의 너른 품안에 거두어야 할 이 땅의 자식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히 군인들 중에서도 이 사람들이 정말 폭도인지 이렇게 살육을 해도 괜찮은 존재들인지 고민했던 병사 둘이 아니라 아무 죄책감없이 그들을 살육하고 유린했던 간부가 솥에서 그 최후를 달리하는 장면은 제주도의 설화와 연관이 있다고 한다. 이른바 '설문대할망' 설화가 그것인데 오백이 넘는 자식을 위해서 죽을 끓이다 그 솥에 빠져 죽은 설문대할망의 설화를 이 군인에게 투영함으로써 이 외지의 침입자 역시 제주의 일원으로 품어내려는 의지가 드러났다고 하는 편이 맞는것 같다. 물론 제주의 설화를 차용한 '처벌'의 의미도 있겠으나, 설문대할망이 빠져죽은 죽을 먹은 오백의 아들들이 제주도를 일구었다는 설화의 내용을 더듬어 본다면 그 악인의 '희생'을 발아래 딛고 사는 우리가 그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죽은 제주인들을 추모하는 이 자리에서 말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영화가 해외 영화상, 그 중에도 미국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함으로서 일종의 '권력'을 등에 업게 되었고 그 결과로 많은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거다. 과연 그런 부수적인 상황들이 없었어도 이 영화가 당시 제주에서 죽어갔던 사람들의 씻김굿의 역할을 담당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좀 암울해 진다. 물론 이 영화를 계기로 당시의 죽음을 품고 사는 제주인들이 비로소 한발을 뗄 수 있게 되었다는 게 의미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말이다. 


어울리진 않지만 비로소 같이 한발을 더 뗄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는 점에서 미안하다는 말 대신 '축하한다'는 말을 그들에게, 우리에게 하고 싶다. 이제는 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될 그들과, 우리에게 말이다.













#1. 다음 영화 섹션에서 소개하고 있는 이 영화에 대한 정보.


#2.이 영화의 제목이 '끝나지 않은 세월2'가 된것은 제주 4.3을 다룬 영화를 만들고 나서 

    과로와 스트레스 등으로 생을 달리한 선배영화인을 추모하는 이유에서 그렇게 된것이라고 함. 

    그 영화의 제목이 '끝나지 않은 세월'.


#3. 감독 인터뷰.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