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휩(덴젤 워싱턴)은 비행기 조종사다. 그러나 알콜중독에다가 술에 깨기 위한 특효약으로 대마초를 자주 피우는건 덤일정도. 어느날 기체 고장으로 모두 사망하고 말 위기에서 기가막힌 선택으로 비행기를 불시착 시키는데 성공하는 그 이지만 문제는 여느때 처럼 술과 약에 쩔어있는 상태였다는 것. 변호사의 도움으로 법적인 처벌은 어찌 피해볼 여지도 생겼지만 중요한건 '사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동료를 포함한 4명의 사망을 두고 자신의 양심앞에 어떤 선택을 할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 스스로는 물론 다른 어느 누구도 그 상황에서 단지 네명의 사상자만 낸 기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는데 의심하지 않는다. 휩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던 거다. 그러나 부기장은 묻는다. 그 당시의 컨디션이 최상이었느냐고. 그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느냐고. 결국은 착지 순간의 미세한 실수가 사망자를 낸 이유가 되었는데, 물론 98명을 살린 공을 생각해 본다면 그 정도는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실수였지만 몸 상태가 정상적이었다면 그 네명중에 더 살 수있는 사람이 많았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휩은 그제야 '신이 그 비행기를 착륙시켰다'라고 했다는 부기장의 인터뷰 내용을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기술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최선의 준비를 하지 못한 기장에 대한 원망에 가까웠던 거다.


마치 마이클 샌델의 'Justice'에 소개된 한구절의 사례인것만 같은 이 흥미로운 모순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98명을 살린 영웅이라고 봐야 할까, 자신의 최선을 다하지 못해 4명을 죽음에 이르게한 죄인으로 봐야 할까?  영화에선 종교적인 색채를 지닌 접근을 하는것 처럼 보인다.[각주:1] 말하자면 휩의 엉망진창이었던 삶에 대한 깨우침이라는 식의. 종종 튀어나오는 종교색 짙은 대사들은 어떤 광신에 대한 풍자라고 보기에는 모호하기만 하고, 오히려 그런 종교적인 구도속에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 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어떤 운명에 의해 사고가 났고, 병원에 왔고, 결국 비상 계단에서 담배 피우려다 만나지 않았느냐. 둘은 신이 정해준 운명에 따라 여기에 온것이다' 라는 암환자의 발언에 휩과 니콜(켈리 라일리)은 약물치료의 후유증으로 떠드는 헛소리라고 치부하지만 결국 운명처럼 서로에게 다다간다. 생각해 보면 둘의 우연은 극의 내용과 관련해서는 크게 필요한 장치는 아니었다. 다만 어떤 운명론에 대해 설명하려 했다면 적절한 장치라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취하고 있는 이런 자세는 조금은 불편하다. 만약 휩이 떳떳하게 자기 변호를 하지 못하고 자신의 실수로 죽은 사람들에 대해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파괴하는 지경에 빠졌다면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니가 살려낸 사람들을 봐, 넌 98명을 살려낸 영웅이야. 넌 아무도 할 수 없는 기적을 실현해 보였어'라고 하지 않았을까? 대체로 우린 지난 실수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로 하면서 그런식의 반증을 들어보이지 않던가. 떳떳한 사람에게는 4명의 사망을 들이밀어 괴로움을 안겨주고, 괴로워 하는 사람에게는 98명을 살려낸 공을 들어 실수를 잊어버리게 하는 이 이중적인 태도로는 어떤 개선을 낳을 수 있을까? 단지 그 '죄인'의 손을 이끌어 '교회'로 향하게 할 뿐이다. 주님은 의도가 있으셔서 이런 일을 한것이니 최선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주님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뭐 그런 '기승전주(主)'스러운 전개.


그러나 그 최선이라는 건 얼마나 허망한 구분인가. 조종사가 룰루랄라 열심히 일에 매진하기만 하면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게 되는건가? 누가 알까, 먼 훗날 지구의 멸망을 맞은 후손들이 신나게 환경오염물질을 하늘에 뿌리고 다니면서도 지구 환경에 아무런 관심도 쏟지 않았던 선조들을 모아 저 세상의 재판대에 세워 돌팔매질을 하게 될지. 우리는 역사 속에서 비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못했던 선조들의 사례에 대해서 얼마나 쉽게 조소를 보내곤 하던가 말이다. 그 선조들은 그럼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걸까? 그래서 후손들에게 비웃음을 받는거고? 지금의 우리는 그 들 보다 최선을 다하기에 그들을 비웃어도 좋은거고? 그러나 우리는 이내 그들의 보다 더 비 합리적이고 공정하지 못했던 사례들을 통해 지금의 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체계를 만들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최선을 다하는 것 만으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 지지는 않는다. 반대로 어떤 부족함을 들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꾸짖는것 역시 생각해 보면 부당한 일이다. 최선이라는건...그렇게나 부족한 개념이다. 많이들 쓰는 개념이지만 모호하고, 그렇기에 성취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손해를 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강제라면 이러나 저러나 개인을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의 자리에 던져놓을 뿐이다. 말했듯이 최선이란 정의내리기에 따라 제각각인 개념인데 그것을 성취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니 남은건 내가 한것이 최선이라고 우기고 증명하려는 몸부림 뿐이다. 이런 차원에서라면 개인을 죄인의 자리에 던져놓는것 자체가 죄가 아니라 날 따라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꾀어내고 호도하는 것이 사람들을 기만하는 죄인거다. 그렇게 구원을 원하는 사람들의 약한 부분을 파고 들어 자기가 만든 껍데기를 팔아먹으며 심지어 사람들을 죽고 죽이게 하는게 종교가 가진 가장 어두운 부분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렇다고 4명의 사망자에 대해 과실치사 혐의를 받고 있는 휩을 98명을 살렸다는 이유로 용서해줘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는 휩을 이끌고 나오는데 종교적인 운명론을 이용하는건 너무 손쉽고도 무책임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게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만큼이나 매혹적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운명을 좌우할 청문회 전날, 휩에게 찾아드는 유혹의 노크는 이 영화의 백미. 그 밖에도 위험하고도 부정해 보이지만 사랑으로 휩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니콜의 위태위태함을 연기한 켈리 라일리의 모습도 영화에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었다.


 다만 난 이 매혹적인 '묘기'의 결과가 불시착이었음을 자각 하고 있을 뿐이다.







#1. 극의 정황상 사망자 인원에서 승무원 사망자 수를 빼면서 세는 바람에 기억에 혼선이;; 

     다른 소개글을 봐도 이대목에서 혼선을 겪는 듯 하다. 

     요즘은 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에도 세세한 부분이 헷갈릴 경우가 많으니 이건 뭐;;;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극장 앞줄에 수녀님 네분이 앉아서'시험에 들게 하신거야'같은 말을 하는걸 들어서 그렇게 생각했을 여지도 있음. [본문으로]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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