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12019  이전 다음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사람들이 서로들 사이에서 오욕칠정을 느끼며 때로 괴로워 하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서로가 서로의 욕구를 온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일 테다. 각자가 나름대로의 생각과 욕구를 가지고 살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쉽게 일치가 될리 있나. 그러나 그런 괴로움일지언정 떨칠 수 없는 것이 운명이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인간(人間)'이라고 부르는 걸 테지. 자기 스스로 조차도 온전히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게 사람들이니 결국은 타인과의 '사이(間)'에서 그것을 미루어 짐작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나 그렇게 멀기만 한 '사이'가 괴로움을 주는 동시에 그 '사이'가 결국은 사람들을 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하는 것이니 생각하면 오묘하기만 한 세상 이치.  






과거를 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 영화를 추억으로 품고 살게 될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에서 로맨스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는 점. 이제와 영화를 다시 보니, 뇌리에 강렬하게 박혔던 중학생 시절의 이츠키 커플은 그 분량도 적을 뿐 아니라 단편적인 기억의 나열로 밖에는 연결되어 있지 않아서 주요한 얼개가 되지는 못했다. 이제껏 난 히로코의 설원 장면은 고작 첫사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자신을 사랑했던 옛 연인에 대한 원망이라고, 이츠키의 병세는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심해졌던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물론 이들이 얽히게 되는 계기는 중학생 이츠키 커플의 첫 사랑이지만 이들은 모두 그 시절을 보내줘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오히려 영화에서 로맨스보다 더 중요한 축은 죽은 자를 보내주는 산자들의 모습. 아버지의 죽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거의 허물어지기 직전의 집에서 살고 있는 이츠키의 가족이나, 옛 연인의 죽음에 사로 잡혀 지금을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히로코나 아직까지 보내주는 과정에 있다. 결론적으로는 결코 그 마음을 다 떨치지 못한 할아버지의 고집으로 이츠키는 그 낡은 집에 계속 살게 되었고, 히로코는 이제 어느 정도는 옛 연인을 보내 줄 준비가 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이 괴로워 하고 또 이겨 낼 수 있게 되는 건 모두 그 '사이'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억하는 만큼의 '나'를 품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갔을 그들이기에 그들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며, 관계 속에서 기억하는 만큼의 그들 역시 내 안에서 살고 있기에 그들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도 있는 아이러니.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내가 어렸던 시절이 벌써 복고라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나오는 걸 보면서, 아날로그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복고 상품에는 아날로그 감성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꼭 따라 붙기에. 그저 과거의 익숙한 도구와 장치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쭉 해왔지만 그건 또 아닌것 같다. 물론 그런면이 없지야 않겠지만 전부를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말이다. 대신 욕구를 온전히 다 충족시켜 주지 않는 '새침함'이 그 실체가 아닐까 싶다. 주고 받는데 며칠이 걸리는 편지는 그 기간 동안 보냈던 메세지와 받게 될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 보게 되는거고, 이메일이나 트위터는 당연히 주고 받는 내용에 대해서 끊임없이 떠올릴 시간 같은건 존재하지 않는것이다. 이 정도면 익숙하고 낯설고의 차이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


마치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려는 마음이 때로는 전혀 도달하지 못하거나, 비뚤어지게 닿거나 하는 등의 오해가 생기 듯, 도구와 장치들을 사용함에도 오해의 여지가 다분했던 시절엔 의도하지 않았던 감동을 받게 되기도 했었다. 구식의 도서카드에는 그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사랑이 담겨 십여년이 훨씬 지난 후에 지나간 사랑을 안겨 줄 수도 있었고, 편지 수신인의 정보에 대한 오해가 옛 사랑을 불러내는 우연으로 발전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그 때의 도구며 장치들에 애정을 담아 기억 할 수 있었을 테지. 



그 때엔 불법 복제 비디오를 구해보는 정성이 이 영화에 대한 열광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은 정성을 쏟은 만큼 애정을 갖게 마련이니.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나만 오롯이 공유하고 있다는 인식은 적지않은 쾌감이었을것이다. 발렌타인 데이를 겨냥한 뻔한 기획에 무려 혼자서 뚜벅뚜벅 이 영화를 보러간 지금에 와선, 지금에 와선 할 수 없고 감동받지도 못했을 이야기라 더 소중한 추억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금은 별 쓸모없는 부분까지 너무 오해의 여지가 없단 말이지;; 그에 아울러 게중에는 아직도 미워하는 감정을 갖고 있는 대상도 있지만 내 기억을 채워주고 있는 사람들, 모두 고맙다. 나를 기억에 담고 있을 사람들, 되도록 괴롭지 않은 기억이기를 바란다.








#1. 여자는 역시 숏커트. (물론 이츠키와 히로코의 머리는 단발머리라고 불러야 겠지만)

#2. 남자는 역시 힘. (할아버지 화이팅!)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