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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드라마'에서 임신을 다루던 방법은 이랬다.


가족이 모여 밥을 먹거나, 시어머니와 같이 음식을 준비하는 며느리

-> 그러다 며느리가 헛구역질을 '욱'

->며느리를 쳐다보는 가족 내지는 시어머니

->다시한번 며느리가 헛구역질을 '욱'

->뒤따르는 시어머니의 대사. "아가~"

->그제서야 뭔가 깨달은 듯한 며느리의 표정.


뭐 이정도.





  어떤 지점을 지나게 되면 한국 드라마에서는 더이상 헛구역질로 임신을 알아채지 않는다. 달력을 보고 날짜를 헤아리기 시작한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그 동안의 드라마에서는 다루기를 거부해 왔던거고, 거창하게 본다면 딱 그만큼 세상이 변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 사춘기를 지난 '건강한' 여성이 생리를 한다는 정보가 부끄럽고 숨겨야만 되는 일이라고 취급받던 세상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 주는 '항변'이자 세상이 이미 그렇지 않다는 '증거'라는 의미에서 난 드라마의 '임신 확인' 대목의 변화를 곱씹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동안에 여타의 극들이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고문'이다. 


그동안 고문을 다루던 방법은 또 이랬다.


나쁜 사람들에게 묶여 고문을 받는 주인공

->신체적 고통을 가하며 '실토'를 요구하는 나쁜 사람들

-> 두 눈을 부라리며 기세를 꺾지 않는 주인공

->정신을 잃으면 찬물을 끼얹어 깨우기를 여러번

->극적인 도움을 통해 '배신자'가 될 위험에서 구조되는 주인공


대략 이정도.


 물론 '직접 당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이러쿵 저러쿵 한다는게 멋쩍은 일이기는 하다. 다만 일반론적인 수준에서 그 정합성을 생각해 본다고 해도 사실 그동안 고문을 다룬 정형화된 접근은 뭔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단지 주인공이 위대함을 갖기위한 과정에서 하나의 소품처럼 쓰였다고 하면 맞는 표현일 것 이다. 적에도 나의 경험에선 고문이라는 소재를 이처럼 '성의있게' 다루었던 영화가 없었다.   


단지 고문의 과정이 사실적으로 느껴지고 말고의 문제를 넘어서 고문 피해자가 고통을 겪는 지점을 이 영화 '남영동 1985'는 제대로 짚어내고 있다. 마치 장인의 손길과도 같은 '장의사' 이두한(이경영)의 손길은 버텨낼 수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며 한없이 냉정한 그는 여간해서는 위압적으로 겁을 주는 일도 없다. 그런 그에게 갖은 고통을 받는 주인공 김종태(박원상)가 가장 큰 상처를 안게 되는 지점은 결국 굴복당했다는 자괴감이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나게 상처를 내지도 않으며, 정신을 잃으면 수액까지 맞춰가며 김종태를 '극진히' 보살피니 그 악독한 고문 행위들이 눈앞에 보여도 그의 육체적인 고통은 오히려 눈에 띄지 않을 지경. 사실 고문이라는 행위는 그 피해자에게 육체적 고통을 가하겠다는 의도가 주가 아니라, 육체적 고통을 통해 이성을 해체시켜 버리겠다는 의도가 주된 의도였던 거다. 


사람을 동물이지 않게 만드는 그것, 오랜 시간동안의 의지와 판단으로 이루어온 개인의 이성이자 자아. 고문은 이런것들을 지워버리고, 시키는 말을 고분고분 따라하게 만드는 앵무새로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 이성이며 자아를 위해 목숨마저도 바칠 수 있는것이 사람이거늘 고문 가해자들은 오히려 죽음이라는 샛길로 빠져들지 않게 먹잇감을 요리하는 프로들이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앵무새의 길로 접어들게 되면 자신의 목숨과도 같았던 이성과 자아가 볼품없이 허물어진 후유증을 견뎌내야만 하는 것이 고문 피해자 였던거다.






그럼 그동안 고문을 다루어온 극 들의 '성의없음'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걸까? 글쎄...무엇보다 '그 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이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조금 멀리는 일제 강점기에 독립 운동을 했던 사람들이고, 그나마 최근에는 독재 권력에 맞서던 민주화 운동의 인물들이니. 한국 역사에 있어서 감히 생채기를 내기 어려운 '권위'를 갖게 된 그들이 '나약하게 굴복하고 말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생생하게 재생하기란 어려웠던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각주:1] 많은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가족에게서 잔정을 느낄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처럼, 희생의 고결함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그 희생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이었는지 들여다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직접적인 사회 고발 영화의 노선을 유지하고 있는 정지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각주:2] 물론 이같은 고문 및 폭력의 가해 당사자라 할만한 세력들이 아직까지도 별 탈없이 잘 지내고 있고 이른바 보수 세력의 주요한 한 축이라고 나 역시 생각하고 있다. 다만 폭력이라는 보다 일반론적인 공론장에 있어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극이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실존 인물들의 실명을 쓰지 않으면서 단지 '김근태'와 '이근안'의 문제로 한정지어지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 처럼 말이다. 


설익은 내 짐작에 의하면 이 영화 역시나 '부러진 화살'과 비슷한 취급을 받으며 특정 부류에 대한 비난을 가하는데 끊임없이 소환 될거라고 본다. 물론 필요한 부분이다. 그들은 아직도 단죄되지 못했으므로. 다만 비난에만 매몰되는 자세는 고문을 '성의없이' 다루었던 사람들의 실패를 답습하는 꼴이 아닐까? 예컨데, 이 영화를 보고 故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의 일대기를 읊으며 그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과연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안타까움을 느끼며 반대에 나서는 부류일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물론 독재 권력 아래서의 고문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체벌을 같이 놓고 본다는 것 역시나 타당 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단지 나는 한사코 애국을 입에 달고 살았던 고문 가해자들이 자신의 허물을 감추려 수사를 동원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들에게는 정말로 그것이 애국일 수도 있다. 마치 우리가 '교육적'인 목적으로 체벌을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난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정말로 진지했다고 생각한다. 시종일관 발가벗겨진 김종태 처럼 이 영화는 꾸미거나 덧붙이는 것이 없다. 주제를 놓고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며 여러 측면에서 진일보한 결과물을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 이렇게 진지한 영화는 보는 사람들도 진지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지 누군가를 씹어 돌리는 건덕지로만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미안한 결과물이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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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른 나라의 영화들에서도 대부분 고문은 '권위'를 가질 만한 '영웅'들의 일이라 비슷한 약점을 지닌다고 본다. [본문으로]
  2. 이건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듯. "대선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다는 소리는 어느 특정 후보가 유리하도록 하고자 하는 게 아니었다. 후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진심으로 뭔가를 깨달아 이런 과거가 되풀이 되선 안 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깨닫고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대선에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한다" [본문으로]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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