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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한국적인 정서에 집중했던 감독답게 이번 영화의 소재는 '한지'다. 하지만 무언가 묘하게 부유하는 듯한  이 작품은 착 감겨 사람을 끌어당기는 맛이 없다. 사실 도무지 어떤 영화인건지 다 보고 나서도 언뜻 정리가 되지 않았다. 이렇다할 갈등 상황도, 극적인 해결도 없는 이 영화;; 이 글은 그래서 영화에 대한 리뷰라기 보다 영화를 보고난 리뷰들을 보고 나서 느낀 감상을 적는 글이 될 듯 싶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7급 공무원인 필용(박중훈)은 '한지과'로 전과를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복본에 큰 사업비가
배정되면서 시의 중점사업으로 부상한 이일에 말단으로 참여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이후의 전개는 필용이 사업을 진행시키는 과정에서의 복잡 다난하고도 자질 구레한 일들이 중심이 되어 보여진다. 그 과정에서 아직은 이른 나이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필용의 아내 효경(예지원)과의 일들이, 한지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필용과 엮이게 되는 영화 감독 지원(강수연)과의 관계가 곁들여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집중해야할 포인트는 이 영화가 '장인'에 대한 영화라는 점이다. 오랜 시간의 고집과 생명력으로 생애를 버텨온. 그러나 그런 장인들의 생활은 밖에서 보는것처럼 처연하다던지, 심오하다던지 하지만은 않다. 생활인으로서의 그들 역시나 손익 계산에 휘둘리고, 자기 몫을 차지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한다. 전통 방식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울에 불과 할 뿐 여러 자질구레한 이유들로 화학 약품을 쓰고, 외국의 방식으로 종이를 뜬다. 그러나 그런 생활인의 무리 속에서도 고집과 생명력의 단서가 모두 사라진것은 아니었다. 제 한목숨을 건사하려는 비겁함 속에, 세상에서 겉도는 아둔한 아집 속에 자신을 최고로 만들어줄 '고집' 하나를 부여 잡고 산 한 장인을 통해 이 영화의 타이틀이 된 '달빛 길어올리기'는 가능했다.  
  
 그리고 그 화면 너머에 또 한사람의 장인, 임권택이 있다. 사실  달빛 길어올리기- 영화 짓는 늙은이 라는 포스팅에서 힌트를 얻었는데, 나는 이부분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니 영화를 한결 더 '까끌까끌하게' 받아들였던거다. 한국 영화계에서, 혹 세계 영화계를 통틀어서도 임권택 감독만한 장인을 찾아보기란 힘든일 아니던가. 물론 그 생산물들에 대한 개별 평가에는 많은 의견들이 있을 수 있고, 그 스스로도 초창기의 영화들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여러차례 표시한 일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100편이나 되는 작품을 만들어 왔고, 수십년간을 현역 감독으로 활동해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작품 편수와 현역 감독으로 활동한 기간을 가지고 '평가'하는게 부족하다면 무슨 무슨 영화제의 수상 기록이나 어떤 어떤 영화의 흥행 기록을 들먹일 수도 있겠으나 감히 말하건데 지금의 영화 감독 임권택을 말할 때 그의 세월을 빼고서 거론하는건 알맹이가 빠진 말장난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적어도 영화 감독 임권택을 말할 때 '장인'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건 오랜시간을 버텨낸 그의 고집과 생명력이 그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인것이다. 

이처럼 짐짓 '의뭉스러운'  老 감독께서는  이 영화에 자신에게 이르는 통로를 하나 연결시켜 놓은 듯 하다. 특히나 한지 장인 덕순(안병경)의 한마디는 창작자로서 이 사회의 모질고도 호된 평가를 버텨왔을 감독 스스로가 예의 그 특유의 말투로 이 사회에 한마디 일갈하는 듯 하다.

자신만이 천년 가는 종이를 떠낼 수 있다고 큰 소리 치는 덕순.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다른 어중이 떠중이 들은 꼼짝도 못하게 될거라는 덕순에게 어느날 필용이 묻는다.

"그런데, 그 천년간다는 종이를 떠본적은 있는거에요?"
"없지." 
"예?"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사람이 없었는데 어떻게 만들 수 있었겠어?" 


마음만 먹는다고 종이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품이며 정성이 아니고서는 전통 방식의 한지를 만들어 낼 수 없는데 세상은 지금의 장인들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만 늘어 놓는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사람들이 약아졌다고 늘어놓는 한탄속에도 얕은 꾀를 써 화학약품을 쓰고, 생산력이 더 좋은 외국의 방법을 쓰는 장인들만이 있을 뿐 정작 그 종이에 들어간 품만큼 보상해주지 않는 자신들은 없다. 들어간 공이며 품을 어림해서 보상해 주겠노라고, 그러니 그런 종이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천년가는 종이가 만들어 질 수 있단 말인가.ㅎ

때로 다수의 화풀이 대상이 되어야 하는 유명인이자 창작자로써, 넓은의미에 있어서의 동료들에게 보내는 위로이자 항변이라고도 느껴진다. 항상 말 뿐인, 예술이니 문화니 그 자체보다 무언가 문제가 생긴 부분에 있어서 자신의 책임은 없다는 확증이 더 우선인 수 많은 '입'들. 입만으론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할 수 없다. 단지 상대를 깎아 내림으로서 내가 최악은 아니라는 안도 내지는 자위가 가능할 뿐. 이 은근하고도 표나지 않는 대화 한 토막은 그런 입들을 적어도 당분간은 다물게 만든다. 


하지만 어떠한 기술이나 예술적 성취를 일종의 권력으로 만들려는 꼰x 스러움도 이 영화는 떨쳐내려 한다. 그 역할은 대부분 다큐 영화 감독인 지원이 수행하게 되는데, 한지에 대한 권위자 내지는 한지 문화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 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상당히 공격적인 질문을 서슴치 않는다. 담당 공무원인 필용에게는 왜 다른 지역의 한지 산업권은 제쳐두고 전주만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느냐며 허울 좋은 치적 쌓기일 뿐인 것 아니냐 라는 질문을 하고, '한지가 조강지처라면 화선지는 첩이다' 라는 말을 했던 정통한 서예가에게는 왜 화선지 나름의 장점과 특징을 하등한 것으로 여기며 한지만이 최고다라는 말을 하는가 라는 의문을 표시한다. 탑에 들어갈 불경을 위해 한지 장인 덕순에게 '천년가는 종이'를 의뢰한 도암스님(장항선)에게는 일정한 목적을 위해 사람의 통제 자체가 엄격하게 금지된 산골 계곡을 무단으로 어지럽히는것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따끔한 물음을 묻는다. 이러한 지원의 질문을 통해 이 영화는 한지로 대표되는 장인의 기술이며 예술적 성취 또한 이 우스운 세속과 맡닿아서 존재한다는 은근한 자기 고백을 수행하는 동시에, 껍질이 깨져 더 확연히 드러난 '알맹이'를 눈앞에 내보이는데 이는 특히 한지와 화선지에 대한 비교에서 드러난다.  펄프등을 섞어서 만드는 화선지는 먹물을 쉽게 빨아들여 '필력'이 쉬이 드러나지 않게 부드럽게 감싸주는 반면, 더 많은 품이 드는 한지는 먹물을 쉽게 빨아들이지 않아 붓을 놀리는 사람의 필력이 그대로 드러나게 만드는 '거칠은' 종이이다. 하지만 일견 '필력'이라는 일종의 권력을 무력화 시키는 것에 대한 반감으로 첩이라며 비아냥 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훨씬 적은 시간안에 보기 안좋을 정도로 변색되고 갈라져 제 구실을 못하는 화선지의 그림을 통해 이내 해소된다. 

그리고  관객을 먹물에 비유하자면 이 영화는 영판 먹물을 빨아들이는듯 마는듯 하는 한지와 닮은 듯 하다. 감독이 직접 쓴 시나리오의 대사는 어딘가 모르게 딱딱하고, 요소 요소마다의 배역에는 배우가 아닌 출연자들이 스스로의 아마추어성을 역력하게 드러 낸다. 영화의 전개도 어떤 목적을 향해 자연스럽게 내 달리는 형국이 아니라 고집불통 노인의 걸음걸이처럼 사람들의 이목을 확 잡아끌지 않는다. 때로 극영화가 아니라 한지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영화안에서 지원이 찍는 다큐멘터리의 화면이 별안간 스크린 전체로 보여지기도 한다.  혹 오해를 없애기 위해 굳이 덧붙이자면, 그래서 미천한 나같은 사람들은 잘 알아먹지 못하겠는 이런 영화를 알기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하며 이런 걸작을 못알아 보고 불친절 하다느니 하는건 안될 말이라는 소리가 아니다. 난 단지 이 영화가 '한지와 닮았다'고 하고 있을 뿐이다.  누군가 화선지의 효용을 원하는 사람, 물티슈의 효용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영화는 화선지나 물티슈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말이고. 단지 확실한건 임권택이라는 노 감독은 이 한지같은 영화를 들고 세상에 나왔고, 나는 무슨 배짱인지 먹물을 빨아들일 생각이 없는 듯한 이 영화가 낯설었지만 적잖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한지에 대한 영화를 한지와 같은 호흡과 질감으로, 자세로 그려 냈다는 것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한지 같은 영화가 '천년 가는 종이'인지는  확답하지는 못하겠다. 내가 천년동안 살면서 확인할 길이 없기에.ㅎ 











#1. 홍보 문구에 감독이 지나치게 두드러진 듯한 느낌이;;
     물론 임권택 감독이 갖는 의미도, 홍보 효과도 있겠지만 감독의 몇번째 작품인가 보다
     영화 자체로서의 특성 내지는 의미가 관객에게는 더 중요한 것을...

#2. 필용과 지원이 달빛 아래서 차를타고가며 얘기를 나누는 장면,
     어줍잖게 수식하기 보다 그저 아름다웠다고 해 두겠음.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전주국제영화제'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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