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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널리 알려진 그리스 신화 중에서도 상당히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밀납으로 붙인 날개로 하늘을 날다 너무 높이 날아 올라 날개의 밀납이 녹아내려 떨어져 죽고 말았다는 이카루스의 이야기. 대개는 욕심을 조절하지 못한 어리석은 인물로 그려지곤 하는 이카루스지만 묘하게 그 무모함을 흠모하는 시선도 공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카루스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할까? 뻔히 결과가 보이는 상황에서 순간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파국에 이르는 아둔함에 대한 경계, 그리고 한계를 두려워 하지 않고 온몸을 내던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도전 정신 중에서. 누가 정답을 내려 줄 수 있을까?



이 영화가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안에서 등장 인물들이 다루게 되는 '백조의 호수'라는 발레극의 이야기 구조가 점차 등장 인물들간의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 구조로 확장된다는데에 있다. 심지어 그 이야기 구조가 이 영화 밖의 현실의 배우들에게서도 구현되는 듯한 힌트까지 찾아 볼 수 있다. 

1. 백조의 호수.
  마법에 걸린 백조들이 있다.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이 되는 저주다.  어느날 사냥을 나갔던 왕자가 백조 여왕을 만나게 되었고, 진실한 사랑만이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백조 여왕과 사랑에 빠진 왕자는 얼마 후에 있을 성인식 때 청혼할 것임을 약속한다. 그런데 저주를 내린 마왕이 자신의 딸과 위장한 채 나타나서 왕자가 백조 여왕으로 알고 마왕의 딸에게 청혼을 하고 만다. 뒤늦게 이를 알아 차린 왕자가 백조들이 있는 호수로 향하지만 상심한 여왕은 사람인채로 호수에 뛰어 들게 되고 왕자도 곧 뒤를 따르게 된다. 그리고 이 희생의 결과로 마법은 풀리게 되고 남은 백조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2. 뉴욕 시립 발레단과 니나.
 새 시즌을 '백조의 호수'와 함께 맞게 된 뉴욕 시립 발레단. 가장 중요한 배역인 '백조 여왕'을 우여 곡절 끝에 니나(나탈리 포트만)가 따내게 된다. 하지만 우아하고, 때로 연약하기도 한 백조의 연기에는 나무랄 곳이 없으나 관능적이며 도발적인 '흑조'의 연기는 끊임없이 지적 대상이 되고 마는 그녀다.  딸을 낳느라고 자신의 발레리나의 경력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아직 12살 소녀 취급을 받으며 사는 니나에게 관능이니 도발이니 하는 것은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다. 단장(벵상 카셀)의 폭력과 열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압박과 호시 탐탐 니나의 자리를 노리는 동료들의 존재가 니나를 괴롭히는 요소들. 더구나 바로 이전까지 발레단의 정상에 있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추락은 니나에게 왠지 자리를 빼앗은것만 같은 죄책감을 안겨줌과 동시에 정상에 선 자신도 언젠가 맞이하게 될 비극을 보는 것 같은 불안으로 다가 온다. 그러나  흑조를 표현해 내지 못하면 그토록 원하는 정상의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인식자체가 무엇보다 니나를 몰아 친다. 흑조로 변신하는 마법과 같은 일을 해내야 하는 백조의 비극. 바로 니나의 운명이었다.

3. 블랙 스완과 나탈리 포트만.
 영화 속에서 단장은 니나에게 흑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 스스로를 버릴것을 요구한다. 백조 그 자체인 니나가 흑조를 표현해 내려면 관능이며 도발을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평들이 이미 밝힌바 있듯이 영화 속의 니나에 대한 이런 지적은 어느정도 배우 나탈리 포트만에게도 유용한 것이었다. 사실 이전까진 '레옹의 그 소녀'로 밖에는 더이상 다르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던 본인은 그녀가 대단한 학벌의 소유자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필모그래피를 갖추고 있는 배우이기도 했지만, 냉정하게 말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무언가를 남겼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의 기대 할 만한 이미지에서 별반 달라지는 점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그녀의 작품을 대부분 보지 않았던 입장에서 이런 평을 내린다는게 미안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배우 활동을 하는 동안에 다른 많은 작품들이며 배우들이 강렬하게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걸 생각해 보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대단한 무언가를 보여준 배우는 아니였다고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나탈리 포트만은 자비없이 달라 붙은 옷을 입고 발레리나의 몸동작을 보여 주며, 예술가 특유의 날카로운 불안을 고스란히 전달해 주며, 중요한 순간에 강렬한 에너지를 내 뿜는다. 마치 무대에서 니나의 흑조에 기립박수를 보내던 관객이 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거기에 최고 발레리나 '였던' 베스의 역을 맡은 배우가 위노나 라이더라니. 비틀 쥬스의 다크 서클 소녀 였을 때부터 나의 여신이었던 위노나 라이더. 가위손의 그녀 였던, '리얼리티 바이트'의 그녀 였던, 코폴라의 '드라큘라', '처음만나는 자유'의 그녀 였던, '그랬던'. 심지어 난데 없는 '도벽력'이 드러나며 홍역을 앓았던 위노나 라이더. 영화를 보면서는 본격적으로 극에 등장하기 전에 한물간 노땅 정도로 인물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베스로 그녀가 등장하자 놀랐고, 나의 여신이었던 위노나 라이더를 고작 저 몇 컷 정도만 출연시켰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그런데 실상은 팬이었던 내가 민망할 정도로 역할과 배우 자체가 닮아 보였다. 이제 더이상 중심에만 위치하려는 욕심을 부릴 수 없는, 슬며시 옆으로 비켜나며 존재를 빛내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혹은 그래야 하는 처지가 그래 보이는 거다. 중심에서 밀려나 좌절하며 괴로워 하는 베스에게서 위노나 라이더가 보이는것 같은, 정체모를 쾌감을 영화는 안겨 준다.




 이렇게 되면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를 보는 관객에서, 무대 뒤의 배우를 본 경험 또한 직간접적으로 해 왔던 관객의 입장에서, 비로소 배우 안에 들어가 그 내면의 흐름을 따라가는 존재가 된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의 나탈리 포트만을 통해 니나에게로, 다시 니나에게서 백조로 이어지는 감정의 동화랄까? 그리고 비로소 자신의 파멸에 가깝도록 예술적 성취를 탐닉하는 니나와의 동화를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에 다다르게 된것 같다. 
'예술의 끝은 어디까지 일까? 그리고 그 목적은?'

 백조의 몸을 버리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픈 백조 여왕처럼, 예술가들은 최대한 자기 자신을 버리고 어떤 역할에 충실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최대한 일상의 그 무엇에서 벗어난 것일 수록 지지를 받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어떤 지점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가 위협을 받는 파국의 상황과 예술로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성취의 언저리가 묘하게 겹쳐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런데 대관절 죽음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다그쳐 이루어야할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돈? 명예? 성취감? 
 
 심지어는 그저 옆에서 관망하며 박수나 쳐줄 뿐인 사람들 조차도 그런 성취는 스스로를 버려야 하며 때로 지극히 소모적인 고통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란걸 잘 안다. 그런데도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갉아 먹어가면서 까지 이루어내는 성과를 찬양하며 지지를 보낸다. 그렇다면 옆에서 그러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떤 지점에서 그런 '감동'을 느끼게 되는걸까? 혹 내가 무서워서 감히 도전하기를 꺼리는 경계 너머를 침범해 보는 대리 만족을 원하는 걸까? 그 댓가를 '지불'하고서 말이다. 그렇다면 원형 극장의 검투사에게 소리치는 모습과 별반 다를것도 없게 되는건가;;;

 아주 오래전 부터 가져왔던 생각이지만, 동네마다 다른 버전의 아리랑이 불리며 누구나 다 아리랑의 가수였던 시절을 넘어선 이후로 예술이라는 것이 통용되는 과정은 어찌보면 참 잔인하면서 위선적인것 같다. 

 





#1. 영화라는 매체가 아니었다면 전달하지 못했을 강렬함. 굳. 
#2. 오랜만에 대뇌피질이 호강 했다.ㅎ
#3. 위태 위태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다루는데는 발레라는 요소가 참 적절했다는 생각이 든다. 
#4. 감독인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전작인 '레슬러'에서도 퇴물 레슬러로 '미키 루크'를 선택했다. 아마도 배우 캐스팅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인 듯. '레슬러'도 꼭 한번 봐야겠다.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20세기폭스 코리아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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