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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晚秋). late autumn. 늦가을. 

 단어는 일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임의로 구성되는 하나의 표상이라고 본다면 '만추'라는 단어만큼 그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단어를 찾기란 참 힘들것 같다. 물론 늦봄, 늦여름, 늦겨울이라는 단어들도 비슷한 체계로 구성되는 단어들이지만 늦가을 이라는 단어가 가진 밀도(?)와는 어딘가 차이가 있어 보인다. 더구나 사람들은 그 계절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순간을 대체로 그 계절의 한가운데로 지목하곤 하지 않던가? 그러나 유독 가을 만큼은 계절이 다 끝나가는 순간이 가장 가을 다운 순간으로 여겨지곤 한다. 혹 물리적으로 그 기간이 짧아 가을임을 느꼈을 때는 이미 가을이 끝나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이 영화를 보고난 감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고 잠깐 고민을 해봤다. 그랬더니 그 결론으로 '취했다'라는 답이 나왔다. 만약 음식에 대해서 평가를 하게 된다면 그 식감이 어떤지, 그 음식을 즐기기에 적당한 온도인지, 간은 잘 맞는지 등을 따지게 될테다. 술에 대한 품평을 할 때도 마찬가지. 첫맛이 어떻고, 무슨 목넘김이 어떻고, 주종에 따라서는 달콤하니 더 쌉쌀하니 '드라이'하니 하는 특징들로 술이 평가 된다. 하지만 단언컨데 그런 '소믈리에'류의 사람들이라도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아침을 맞이한 경우에는 어제 마신 술과 관련한 정보중에서 '아 속쓰려' '아 해장국' 따위의 정보들이 달콤 내지는 쌉쌀 내지는 드라이 따위의 정보들을 압도하는 수준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될 것이다.

'필름이 끊기기 전의 상황'을 대충 더듬어 보자면, 중요한 정보를 주저리 주저리 '드라이 한'독백으로 다 처리해 버리는 부분에서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던것도 같고, '포크'를 매개체로 한 감정의 폭발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졌던것도 같다. 그러나 영화를 다 보고난 이후에는 그런 '정보'들은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 압도적인 '감상'이 머릿속을 떠돌아 다니고 있다. 그런데 이 압도적인 감상은 어떻게 생겨난 거지? 숙취로 방바닥을 뒹굴게 되면 전날 마신 술이 달콤했는지, 쌉쌀했는지, 드라이 했는지에 대한 정보보다는 속 쓰리다는 정보가 압도적으로 머릿속을 채우게 되는 거지만, 그 속쓰리다는 현상이 알코올로 인한 것이라는 분석은 가능하다. 이 영화의 압도적인 '감상'에 대해서도 한번 그 이유를 찾아보고 싶다. (이제 술이 좀 깨가는 모양이다.) 

안개.

항상 희뿌연 안개가 뒤덮혀 있는 도시 시애틀. 훈(현빈)과 애나(탕웨이)에 대해서 주어지는 정보 역시나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렇다고 3일간의 한정된 시간안에 사랑에 빠지게 되는 둘 사이에 관객과 공유되지는 않는 모종의 정보가 공유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심지어 애나가 중국어로 말을 하는 대목에서는 관객만이 친절한 자막을 통해 그 의미를 온전히 알아듣는 정도다. 알 수 없는 과거를 가진,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교감. 그러나 (씨네 21의 강병진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통의 기적'이란 바로 이런 지점에서 작용하는 것일 테다. 누구도 상대의 정보를 손바닥안에 놓고 파악하지 못한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관계 사이에서는 일부 가능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어떤 영화들은 그런 소통의 불확실성에 대해 괴로워 하는 사람들에게 간단 명료한 소통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판타지를 제공하곤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happily ever after' 류의 영화랄까? 모진 고난과 역경 속에서 결국은 서로를 사랑한다는 단순한 메세지가 서로에게 전해져 영원히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로 마무리를 짓게 되는. 




 그러나 이 영화가 현실과 다른 판타지 대신에 안겨주는 것은 현실에서의 소통의 불확실성에 대한 위안 혹은 공감이다. 특히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던 애나의 중국어 장면에서 애나는 지난 7년동안 감추고 살아야만 했던 자신의 과거, 감정에 대해 쏟아내듯이 읖조린다. 그러나 할 줄아는 중국어가 두마디 뿐인 훈이 애나와 둘이서 마주앉아 할 수 있는 일이란 알 수 없는 중국어로 말하는 애나의 얼굴에 대고 대강 눈치를 보며 장난 스럽게 '하오','화이'를 연발하는 일 뿐. 어쩌면 애나는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훈이었기에 자신의 속내를 모두 쏟아 낼 수 있었는지도. 이처럼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 줄 수 있는 사람도 나의 속내를 모두 읽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나의 마음을 이해해 주는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말을 들어준다는 것 자체로 위안을 삼아야 하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이 쓸쓸함. 

 아마도 나는 이 '위안'에 취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혹 나보다 '술이 쎈'사람이라면 이 영화를 보고도 달콤함과 쌉쌀함과 드라이함을 논할 여지가 없다고는 말 못하겠다. 다만 시애틀의 안개와 현빈의 코트 주머니에 손 꽂은 매무새와 탕웨이의 눈빛, 목소리에 취해서 달콤함이니 쌉쌀함이니를 파악하지 못했더라도 영화를 썩 잘 마신 것이라고는 말하고 싶다.





#1. 개인 식기 사용을 생활화 합시다.
#2.  Tang Wei, 我 愛 你!!!!!!!!
#3. (2011.3.27) 현빈과 탕웨이가 시애틀에서 만난 까닭 오, 흥미로워라.






<위의 사진들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주)보람엔터테인먼트(제작), 필름 워크샵(제작), 노스 바이 노스웨스트 엔터테인먼트(제작) 에 있습니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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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daum.net/parismadame BlogIcon 파리아줌마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2.19 19:46

    무척 보고 싶은 영화랍니다.
    글 잘보았어요^^

  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2.19 22:44

    비밀댓글입니다

  3. Favicon of http://blog.daum.net/tourparis BlogIcon 샘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1.02.19 22:58

    아주 관심이 가는 영화랍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