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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필모그래피를 갖춘 유명 감독에, 명실 상부한 정상급 배우 둘의 주연. 그러나 정작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잔인한 폭력성으로 모아 지고 있다. 거기에 그 폭력성을 가지고 얽어낸 이야기 조차 놀라울 정도로 단순 명료하여 그 잔인함이 더 배가 되어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는 홍보의 과정에서 소개하고 있는 싸이코 패스 연쇄살인마에 대한 잔인한 복수의 구도에서 벗어남이 없이 러닝 타임 내내 일관되게 '복수'가 나온다. 살인마 경철(최민식)이 피해자들에게 하는 행동에 맞먹는 수준의 잔인한 복수가 국정원 요원 수현(이병헌)에게서 행해진다, 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는 그래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든거지?'하는 선듯 풀리지 않는 의문이 들었다.



1. 수퍼맨, 싸이코 패스를 무릎 꿇리다.
 
 우리 모친께서는 연쇄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잡혔다는 뉴스를 보면 '대로 한가운데서 찢어 죽여버려야지 저런 놈들은...'하는 대사를 잊지 않으신다. 그런 정서는 생각보다 일반적이어서 큰 사고가 나면 뭔가 불편한 마음이 해소 될때까지 해당 범죄 용의자에게 마음껏 저주를 퍼붓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이 여기 저기나 넘쳐 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피의자의 얼굴을 가리느니 마느니, 사형을 집행 하느니 안하느니와 같은 문제에서 인권이라는 단어가 오르 내린다는 것 자체도 용납 할 수 없다는 식으로 강경하다. 그러나 이 놈의 세상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을 데려다 고이고이 잘 모셔두지 않던가. 혹 여기나 저기나 인권을 들이대는 '한량들' 때문인지 어쩐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세상은 찢어죽일 짓을 한 사람을 찢어죽이도록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때로 그것은 엄청난 불만이 된다. 

그래서 영화의 의도에 대해 첫번째 든 생각은 요즘 들어 더 자주 출몰하고 있는 이들 범죄자들에 대해서 복수의 쾌감을 주려는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막상 군중 속에서 한두 마디 거들기는 쉬우나 인권따지는 한량들 앞에서든 누구 앞에서든 앞에 나서서 말한마디 하기도 어려운 것이 '소시민' 아니던가 . 물론 사람들은 '소시민'이라는 타이틀로 면죄부를 받고 책임을 안지려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때때로 들기도 한다, 한명의 '소시민'으로서. 어찌 되었던 말한마디 나서서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에 내키는 대로 복수를 하고자 한다면 그게 어디 가능할 소리인가 말이다. 잔인한 복수를 하는 수현 역시나 아니나 다를까 '소시민'과는 거리가 먼 '국정원 요원'이라는 일정정도의 계급과 육체적 능력을 나타내 주는 타이틀을 가진 사람이다. 계급적으로도 성공한, 엄청난 육체적 능력까지 갖춘 우리 시대의 '수퍼맨'이 평범한 소시민이 못하는 행동을 대신 해주니 거기서 오는 쾌감이 적지는 않을 테다. 물론 비교적 높은 계급에 소속되었다고, 월등한 육체적 능력을 지녔다고 눈에는 눈의 실현에 방해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폭력행사에 대한 양심적 가책, 허무함등의 요소는 온전히 영화 속에서 직접 그 일을 하는 '수현'의 몫. 관객은 그 밖에서 지극히 직접적인 복수의 장면을 그저 지켜 보면 그 뿐이다. 

2.무릎 꿇리고 보니 '니가 이긴거 같아?'
 

 그러나 관객이 자신들을 대신한 간접 복수를 위한 정서로 읽어 내기에는 어딘가 영화의 내용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심축인 사이코 패스, 경철의 캐릭터가 너무나 단순하다. '추격자'에서 하정우가 맡았던 '지영민'의 역할이 섬짓하게 사실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이유는 그 캐릭터가 상당히 복합적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고 그런 생김새의 청년 한둘 쯤은 봤을 법한 평범하고 선해 보이는 인상에 본색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짐짓 친절하게 까지 보이는 그는 친절의 미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악마적인 행위를 서스럼없이 한다. 그래서 더 무서웠던 거다. 되도록 그런 괴물을 자신들의 일상과 격리 시킴으로서 안도감을 느끼려 하는 사람들에게 그 괴물이 눈치 챌 여지도 주지 않은 채로 바로 옆에서 숨쉬고 있을 수 있다는 환기를 시켜주니 섬짓 했던 거다. 그러나 이 영화의 경철은 사람들이 일상으로 부터 격리 시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살인마, 사이코 패스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친절함이나 평범함이 느껴지지 않고 말한마디 한마디에 기분나쁜 습기가 느껴진다. 내가 저 영화 속의 인물이었더라면 절대로 신뢰따위 보내지 않을 것만 같은 외모,말투. 이쯤 되니 이 영화가 다루는 것은 '사이코 패스'가 아니라 '사이코 패스에 대한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살인마, 사이코 패스를 다룬거라면 보통의 사람들이 사건에 대한 분노로 일그러 뜨려놓은 그들의 이미지를 벗겨내고 최대한 생명력을 가진 캐릭터로 만들어 놓았어야 그 캐릭터를 허물어 트렸을때 오는 쾌감도 더 큰것일 테지. 그러나 이 영화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건 실제적인 살인마나 사이코 패스가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살인마나 사이코 패스 였던거다. 

 그리고 흔히 우리가 그들에게 퍼붓는 저주를 똑같이 실현해 본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일종의 사고 실험인 것. 그리고 그 결과는? 온전한 쾌감? 글쎄... 물론 모든 조건이 통제되는 머리속의 사고 실험과는 다르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실험의 조건이 변하게 된 변명은 가능 하겠지만 결국 그 실험의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다. 애초에 '장난질'을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목숨을 잃지 않았을 사람들이 복수라는 이유로 이루어진 폭력의 결과로 목숨을 잃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애초에 약혼자를 처참하게 살해한 이유로 찢어 죽여 마땅한 사람이 되었던 경철에게 똑같은 고통을 안겨 주겠다고 나선 수현이 그 이상의 피해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다면, 살인마들에게 피해자들이 당한 만큼의 고통을 주지 못하는 것이 무엇때문일까? 어이없는 법 규정? 인권 따지는 한량들? 아니, 나 때문이다. 그 만큼의 폭력을 감내할 자신이 없기에 살인마들이 고이 고이 감옥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거다. 폭력은 물과 같아서 증발되고, 흘러가버리는 것 같지만 이 세상을 떠나지 않고 흙속에, 나무줄기 속에, 공기속에 수증기로 떠다니다가 기회가 되면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에게서 나온 폭력이 언제고 나를 다시 해칠 것을 알기에 그것이 두려워 함부로 폭력을 휘두르지 못하는 거다. 이를 옳고 그름의 문제로 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지만, 책임의 소재를 따져 보자면 분노를 느끼는 내가 직접 때리지 않으니 살인마가 맞지 않는것이다. 물론 살인마가 행한 만큼 당하지 않는것도 역시 옳고 그름의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단지 지금의 합의가 여기까지 이루어 지고 있을 뿐. 



물론 영화가 그런 내용을 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말 그대로 실험을 해본것 같다, 여러가지로. 그리고 그 실험의 결과로 나는 이런 결과를 얻었을 뿐이고.





#1. 이거 진짜~ 잔인한 장면 많이 나온다. 홍보를 그렇게 많이 했으면 제발 극장 와서 호들갑 좀 안떨어 줬음 좋겠다. 
     집중 안되게 참...

#2. 왜 수현이는 처제한테는 전화를 안했던 것인가...ㅎ



                                                                       베스트 ㄳ.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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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dynamick.tistory.com BlogIcon dynamicK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8.31 19:10 신고

    감독이 새로운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 그 결과는 극과 극인 평가로 이어졌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았는데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너무 잔혹한 내용들이 많아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는 않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