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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은 무척이나 복잡하고 어려운 일도 되도록 최소한의 노력으로 처리 할 수 있도록 해준다. 반대로 인간의 힘으로 시도 할 수 있을 만큼만의 노력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한정적인 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스스로를 매뉴얼 따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도 때로 결코 객관적이지 않은 이유로 '꼭 그래야만 하는' 고집이 있기도 하고, 지킬건 지키고 산다고 자부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라도 왜 그걸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지극히 자의적인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말해, 그저 자기 잘났다는 말을 그런 식으로 다르게 하면서들 산다는 거다.




 여기에 매뉴얼화 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해고 전문가 라이언 빙햄(조지 클루니). 그의 업무는 넓디 넓은 미국 대륙을 누비면서 기업의 고용주 대신 해고 통지를 하는 것이다. 겉으로는 해고 당하는 직원들의 정신적인 충격을 완화시켜 주고, 새로운 직장을 얻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실상 고소의 천국 미국에서 짤린 직원이 회사에 소송을 걸 꼬투리를 안남기기 위해서가 각 기업의 고용주들이 빙햄의 회사를 이용하는 이유가 되겠다. 빙햄과 같은 업무를 위해서 해고 직원을 접할 때에는 미안하다거나 잘못했다는 식의 표현을 하면 안되고, 직접적으로 '해고'라는 단어를 쓰면 안되는 등의 매뉴얼이 존재한다. 일생 일대의 좌절을 겪은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그 들이 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반응의 변수들을 최소화 하기 위한 지침 말이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에게 '성공한 사람들은 다 이런 경험이 있어요'라고 말을 시작하는 해고 전문가들은 해고 당한 직원들의 감정에 동화되어서도, 그들의 감정을 무시해도 안되는 줄타기를 해야만 하기에 그 줄타기를 안전하게 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다만 빙햄의 매뉴얼은 그의 업무에 한정되어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인생 전반에 걸쳐 짜여져 있다. 각각의 변수들이 최소화된 그의 매뉴얼에는 여행 가방 싸기, 비행기 탑승 수속 밟기, 가장 좋은 렌트카 회사의 리스트 등이 정리 되어있고 그런 매뉴얼에 의해 변수가 최소화된 환경이 그에게 가장 편안한 환경이 되어있다. 그래서 답답한 공기의 비행기 안이 집보다도 편하고, 천만마일 마일리지를 모으는 것이 그의 작다면 작은 인생의 목표다(하지만 역대 6명밖에 성취하지 못한 대단한..). 대신 절대로 매뉴얼화 할 수 없는 변수가 너무나 많이 존재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극도로 거부감을 드러내는 그는 가족과도 거의 소식을 끊고 지내고, 결혼이며 아이 양육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굳이 집을 사야 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그저 바람 처럼 '쿨'하게 살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은 천만마일 마일리지가 도대체 무슨 목표 따위가 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빙햄이야 말로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 함에도 당연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아할 뿐이다.

 

 그런데 그런 매뉴얼을 더욱 간소화해 삶을 재단하려는 '풋내기'가 나타난다. 코넬대학 수석 졸업의 당당한 신입사원 나탈리 키너 (안나 켄드릭). 그녀는 '해고 작업'을 위해 길위에 버리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는데, '화상 해고'가 바로 그것이다. 일련의 해고 상황을 지원하기 위한 매뉴얼이 당사자에게 배달되고 나서, 화상 카메라를 접하고 앉아서 상담을 하는 것이다. 일이 이루어지는 목적에는 더더욱 적합해 졌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하고 앉은 거리는 그만큼 더 멀어진 업무 방향에 대해 빙햄은 강력하게 반대한다. 이렇게 효율의 압박은, 일생을 효율적으로 조각해 온 그에게 조차 거세게 다가 온다. 물론 그가 겉으로 보이는 반대의 이유는 바로 그 '효율'때문이기는 하다. 하지만 해고 직원이 돌발행동을 보일때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이유 보다도 더이상 '쿨'한 여행을 할 수가 없어 지는, 그래서 천만마일 마일리지 적립에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 더더욱 믿을만한 이유로 짐작 되는 빙햄의 반대 였다. 

이러한 빙햄의 인생관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바로 아래와 같은 그의 강연 내용, '배낭론'이다.


이렇게 말하는 빙햄도 때때로 흔들린다. 그런 자신에게 꼭 맞는 인생의 여자를 발견했다고 느끼고,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는 '무거운 배낭족'같은 무모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물론 낭패를 보는 무거운 배낭족들 또한 여기 저기나 넘쳐난다. '화상 해고'라는 무시 무시한 시스템을 고안한 키너는 단순하게 남자친구를 따라 직장까지 옮겼건만 문자 메세지 한통으로 이별을 통보 받았고, 빙햄과 그녀가 날마다 마주쳐야 하는 해고 직원들은 수 십년의 인생을 그 회사와 함께 해오던 사람들이었다. 








자... 이 알수 없는 인생, 어찌해야 할까. 영화는 어느 쪽으로도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평생 외톨이로 살것만 같았던 빙햄이 마치 얼치기 마냥 사랑에 뛰어 들었다면 응당 해피 엔딩은 아니더라도 사랑의 시작을 짐작 할 정도로는 힌트가 주어질 만도 한데, 세상은 또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은 것임을...그저 인터넷 화상 연결로 사람들에게 해고통지를 하던 사람이 문자로 이별을 통보 받기도 하고, 문자로 이별 통보를 받던 사람이 문자로 사직 통보를 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인 것임을 영화는 말해 준다. 이에 대해서 블로거 '어린쥐'씨는 2010년 초입에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는 없지만, 세상의 무엇을 견디고 살지는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뭐 그런거 아니겠나. 산의 정상이 목표가 아니라면, 산 정상의 모습이 기대하던 것과 달라도 산에 오르던 과정만으로 행복하게 느낄 수도 있는 그런... 대신 닥칠 결과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징징대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실패한 인생은 되지 않을 테지. 









#영화는 빙햄 만큼이나 '쿨'하다. '해고 전문가의 최고 호황기'를 맞은 미국의 풍경을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담담하게 그려냈고, 자신의 '배낭'에  나탈리 키너 라는 조약돌을 담는 빙햄의 행보도 너무 과장되지 않아서 더 설득력 있고 좋았다.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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