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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테이크 쉘터는 마치 '에반 올마이티'의 히치콕 버전같다. 갑자기 현대의 노아가 되어 신으로부터 대 홍수에 대한 계시를 받은 후 지금의 삶이 피폐해 지는것을 감수하고 방주를 만들 수 밖에 없었던 그 이야기 말이다. 커티스(마이클 섀넌)도 비슷하게 악몽을 꾼다. 어느날, 누런색 비가 내리더니 개며 사람이며 모두 비에 맞은 존재들이 괴물이 되어 자신과 딸을 공격하는 꿈을 말이다. 악몽에서 시작 된 그 불안은 점차 환청에다 환영에까지 이른다. 그렇게 되자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커티스는 집 뒷마당에 방공호를 만드는데 집착하게 될 수 밖에. 가뜩이나 잔뜩 받아놓은 대출에 더 빚을 내고, 회사 기계를 마음대로 갖다가 쓰는 위험을 감수하며, 그로 인해 딸 수술을 위한 직장 의료보험마저 위태 위태 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방공호에만 집착 할 뿐이다. 도무지 자신의 행동을 그들에게 이해 시킬 수 없기에 가족과도 오랜 친구와도 그 관계에 금이 가는건 당연지사.


그 와중에 커티스의 불안을 좀 더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요소들이 있다. 관리가 어려울 정도로 불어난 주택 담보 대출이며, 유명무실한 의료 보험으로 인해 접하는 수많은 난관하며,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요동치는 기후등등. 오히려 커티스의 꿈속에서 그를 괴롭히는 '기상이변' 보다도 더 생생하게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요소들 말이다. 그건 커티스를 포함한 극중의 사람들이 '지금'겪고 있는 불안 요소일 뿐 아니라, 스크린 밖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는 요소들이다. 그러나 영화는 부러 이 요소들을 드러내지 않으며 마치 나는듯 안나는듯한 냄새처럼 이야기 속에 스며 들게 한다. 이렇게나 이 영화의 불안은 다층적이며 빈틈이 없어 보인다. 


이렇게 차곡 차곡 쌓인 불안은 점차로 절정의 순간을 향해 간다. 미래를 위해 담보잡힌 지금은 더이상 감당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균열이 심해져 가고, 미래에 대한 불안 증세는 점점 더 극심해져만 간다. 어느쪽에 의해서건 커티스는 부서져 버리고 말것이다. 단지 한 방향으로의 예외, 그의 불안 증세처럼 정말 세계를 끝장내 버릴 비가 내리고 그의 방공호가 제 기능을 하게 되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결국엔 비가 내린다. 싸이렌 소리를 듣고 뛰어내려간 방공호 바깥의 비는 그저 지나가는 태풍일까, 아니면 커티스의 꿈에 나왔던 그 비일까? 뭐든 속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답답한 불안의 끝에 어느 쪽의 판단이 틀리게 되는가가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일 테지만, '과연 이 불안이란 놈은 쓸모가 있는 놈이야 아닌거야?'라는 의문을 넘어서 생각해 볼만한 지점이 있다.





불안은 미래에 대한, 혹은 미래를 위한 감정이다. 번지점프를 위해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올라가고 있는 '지금'은 사실 별 문제가 없이 안전하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줄은 안전한 걸까?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 걸리는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마음 편하게 할 정도로 '지금'의 나를 위협하는 요소들은 없질 않나. 이같은 불안은 몇 분에서 몇십분 뒤의 일에 대한 대비로 현재의 평안함을 희생시켜가며 가지게 되는 감정이다. 그렇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떨고 있는 현재는 결단코 평안하지 못하다. 자고로 불안이란 사람을 피말리게 만드는 것이기에. 그 반면에 감정이라 하기에는 좀 다른 성격의 '긍정'이라는 것이 있다. 이 긍정적인 자세는 '지금'을 위한 일종의 처세다. 미래의 불안이 가지고 오는 지금의 괴로움과 미래를 맞이하는데 발생하는 부정적인 효과들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차원의 암시와 다짐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해 대처하게 되는거다. 이 긍정의 주요한 레파토리중의 하나는 과거의 성공 사례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니 그 성공 사례를 따르면 미래에도 성공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니 애초에 커티스와 그 주변 인물들이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커티스는 미래를 얘기하지만 아내를 비롯한 지인들은 지금을 말하고 있었던 차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과거에도 이랬으니 미래에도 이럴 것이라는 나름의 논리를 갖춘 긍정족(族)들 사이에서 커티스는 자신의 망상 밖에는 증거로 내새울 것이 없고 그래서 모두가, 심지어 스크린 바깥의 사람들까지 그가 틀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본질 적으로 누구 하나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는것은 커티스의 불안이나 주변인들의 (비교적) 긍정적인 자세 모두 미래를 담보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불안에 떤다고 미래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긍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한다고 미래의 불안 요소를 모두 이겨 낼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본다면 사실 비슷한 답을 얻게 되는 것에 놀라리라 생각한다. 물론 확률적인 차원으로의 접근이나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할 미래이니 지금에나 충실하자는 걱정 무용론적인 자세가 이유가 되어 각각의 선택을 할 수는 있는것이나, 이 경우에도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지금의 불안에 대한 대처일 뿐 엄밀한 의미로 미래에 대한 대처가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비록 각각의 선택을 할 우리가 미래를 위한 대비로 이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지라도. 이 영화가 안겨주는 진짜 불안이라는건 이 부분이 아닐까? 결국은 당연한것으로 여겨지는 우리의 신념이 그저 신념일 뿐이라는...  



간혹 이런식의 영화를 만나게 되면 더러 짜증이 났었다. '사람들 하찮은거 저만 아는거 처럼 폼들을 잡고 그래..' 식의 생각이 드는것과 동시에 굳이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의도가 이해되지 않았던 거다. 반면에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최근에 야구 중계에서 접한 해설 한토막이 떠올랐다. '타격에 들어 섰을 때는 치겠다는 마음 50%, 참겠다는 마음 50%를 갖고 들어서야 한다'는 말. 애초에 미래에 벌어질 일을 100% 알아 맞춘다는건 불가능한 일이니 남은 것은 칠만한 공이다 아니다라는 판단을 미리 내리고 불안을 잠재우기 이전에 그 불안을 최대한 안고 가야 한다는 뭐 그런 의미의 말이었다. 그래야 예측이 빗나갔을 때의 당황을 줄여 좋은 타구를 날릴 확률이 높아진다는 그런... 믿음이 갖고있는 안락함에 취해 실체를 보려는 불안한 발버둥을 멈추지 말라는 그런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제서야 해 보게 된다. 저런 악취미를 가진 감독들의 의도가.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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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이 영화의 자잘한 플롯을 다 설명하기는 어려운 일일것 같다. 복잡하고도 치열한 이야기들이 있지만 실화에 바탕을 두고서 지극히도 무미건조하게 진행이 되는 터라, 그리고 그렇게 풀려면 정리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해 지는 터라 사실 별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숨길것도 없이 이 복잡하고도 치열한 이야기는 빈 라덴을 사살하기 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데 영화 제목인 '제로 다크 서티'란 자정에서 30분이 지난 시간을 말하는 군대식 표현이라고 한다. 바로 빈 라덴 사살 작전이 벌어진 시간 말이다.


 당연히 이 영화의 가장 클라이맥스는 빈 라덴의 비밀 가옥에 군인들이 침투하는 대목이 될 텐데 이 긴박감 넘치고도 중요한 장면이 영화 전체의 성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관객을 깜짝놀라게 하는 장치나 비장한 배경음악 따위는 없고, 어느 한 순간이 다른 한 순간보다 더 돋보이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순간'이 되어서도 건조하기만한 시선은 흔들림이 없이 그저 조금은 감격에 젖어 하며, 조금은 황망해 하는 군인들의 표정을 좇을 뿐이다. 목표를 성취하고 나서도 작전 지역을 벗어나는 과정은 감정에 취해 여유를 부릴 만큼 가볍거나 쉽지 않다. 2시간 반이 넘는 런닝타임이 이렇게 폭발적인 감정의 고조없이 끈덕지게 이어진다. 마치 마라톤 경기의 배경처럼 테러 조직 가담자에 대한 고문과 요원의 피격과 일이 진행 되는 과정의 각종 난맥상들이 이어지지만 좀처럼 영화는 이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 시선을 주지 않는다. 옳거나 그르다거나 어느 한 쪽이 악마라거나 이쪽이 이러는게 당연하다거나 하는 평가를 내리지 않는다. 단지 묵묵히 뛰어가는 마라토너를 따라갈 뿐이다. 영화는 대신에 거대한 사건의 한가운데 서있는 인물들이 어떻게 그 파고를 겪어 내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는데 온힘을 쏟는다. 그래서 개인차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느 한 부분에 강조를 주지 않은채 이어지는 이야기에 두시간 반동안 매혹되어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런 영화의 자세를 두고 '테러와의 전쟁'에 지지를 보내는 쪽이나 비판적인 위치에 있는 쪽이나, 모두 찬사를 보내거나 혹은 한 입장 내에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것 같다. 말하자면 고문장면을 보고도 사람에게 몹쓸짓을 하면서 괴로워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 그럴 수 밖에 없는 요원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포장하지 않고 냉정하게 고문장면까지 고스란히 보여주었다는 입장의 차이 같은 것 말이다. 혹은 사안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는 듯 보이는 자세 자체에 비판을 가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과연 그게 영화의 몫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지자나 비판자 중 어느 한쪽에 유리한가 아닌가를 따지는 대신에 테러와의 전쟁을 어떤 식으로던 겪어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닌가를 따진다면 이 영화는 두말 할것 없이 소중한 작품이다. 이처럼 사안 자체를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담아낸 사례가 내 시야내에서는 없었으며 그렇기에 아마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이 사례를 들고와 자신들의 입장을 다툴것이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여기 까지인거다. 어느 한 쪽의 시선을 담았다고 평가를 받는다면 사람들은 보기도 전에 찬사를 보내거나 비판의 자세도 갖추지 않은 조소를 보내게 될 꺼다. 서로의 입장만 확인하는 촉매가 될 뿐이다. 


그렇기에 애초에 감독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와는 무관하게 그 결과물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고문은 고문인거지. 쿠데타는 쿠데타인것 처럼. 일단 이 뚝심있는 누님의 세계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일이지 않은가. 그것 만으로도 일단은 내게 대단하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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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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