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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 마디, 

이쁜 것들을 데려다 이쁜짓들을 시키니 이쁘지 않을 도리가;;;




 

이른바 청춘 영화나 성장 영화로 구분이 되는 장르에도 일종의 클리셰가 있다. 애들 같지 않게 일상어 같지 않은 어휘를 부끄러운 줄 모르고 쓴다거나, 뭔가 특출난 재능이 있다거나, 뭐 그런. 이 영화의 인물들도 괴짜같이 별 해괴한 짓들을 다 하고 다니지만 어찌어찌 졸업할 때가 되니 다들 명문대에 가게 되는 그런 노선을 따르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점이 뭐 그런 큰 흠결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그런 점들이 뭔가 더 특별한 영화가 되는데는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엇비슷하게는 겪어 봤음직한 '그 시절'의 파고는 두고 두고 곱씹어도 두고 두고 감정선을 건드리는 그 무엇을 갖고 있질 않나. 물론 충격으로 환영을 보기도 하는 찰리(로건 레먼)와 스스로를 나락으로 떨어트려 온갖 추문을 안고 사는 샘(엠마 왓슨)과 동성애자로서의 고단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패트릭(에즈라 밀러) 만큼의 파고라면 누구나 겪어 봤음직한 상황은 아니겠자만 그 파도가 향해가는 방향성에 대해서라면 또 아니랄 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들은 'Nothing'이다. 이는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말꼬리잡기를 하다 패트릭이 얻게 된 별명인 동시에 아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이들이 'Something'이 되고자 하는 욕망과 대비해 스스로를 바라볼 때 갖게 되기 쉬운 자괴감의 꼬리표다. 혹은 학교에서 종종 열리는 댄스 파티에서 벽만 지키고 서 있는 'wallflower'들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일 수도. 그 스스로도 괴로운 기억에 트라우마를 갖고 살고 있으면서 친한 친구마저 자살로 잃게 된 소심한 책벌레는, 남자들과 지저분한 추문이 끊이지 않았던 'X레'는,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X모 자식은' 타인에게 'Nothing'이다. 


그러나 이들의 내면을 알아주는 이에게 이들은 'Something'이다. 소심한 책벌레 찰리는 남다른 감수성으로 타인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아이였고, 어렸을 적의 트라우마를 떨치지 못해서 괴로워 했던 샘은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였으며, 게이라는 이유로 해서 많은 슬픔을 그저 가슴속에 품을 수 밖에 없었던 패트릭은 그럼에도 남들을 즐겁게 하려 애쓰는 이타적인 아이였다. 이들은 서로의 특별함을 발견해 줌과 동시에 자신의 특별함에도 자신을 얻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그들만의 터널을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낸다.


히얼 컴스 더 터널송



그렇게 유별날것 없어보이는 이 드라마를 반짝 반짝 빛나게 만드는 공로는 오롯이 배우들에게 가야만 할 것 같다. '케빈에 대하여'에서 사이코 패스 아들역할로 많은 사람들을 깜놀하게 만들었던 에즈라 밀러는 바스러질듯 위태로운 외향적인 게이 소년의 역할을 맡았고, 자존감이 부족해 질떨어지는 남자들과 추문에 얽히곤 하는 '소문 나쁜' 여자아이를 헤르미온느(헐미온? 헐마이온?)가 연기했으며, 어릴적의 괴로운 기억을 품은채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하는 소심한 소년을 로건 레먼이 맡았다. 그야말로 화려하지만 내실마저 탄탄한 캐스팅. 엠마 왓슨은 별 무리없이 능숙하게 아역 이미지에서 벗어난 모습이고 나만의 믿고보는 배우 순위권에 위치한 에즈라 밀러는 몇 년뒤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가 기대되는 기대주로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는데, 로건 레먼의 경우엔 제대로 관심있게 지켜본 작품이 처음이라 가장 의외로 받아들인 경우였다. 이번에 알게 된건데 애쉬턴 커쳐의 출연작 '나비효과'에서 (말하자면) 어른 영혼을 가진 아이의 당찬(?) 연기를 선보였던 그 소년이 로건 레먼이었다네? 그 아슬아슬한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표현해낸 그 였기에 이 영화에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둘 수 있었다고 뭐 그렇게 평하고 싶다. 이 셋을 보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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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순수한 아이의 외양을 가진 절대악의 화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오멘'시리즈와 닮은 부분이 있다. 그러고 보니 한 때 여름만 되면 납량특집 영화로 빠지지 않았던 오멘인데 요즘은 이미 옛날 영화가 되어버려서 인지 방영되는 일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오멘과 같은 이른바 '악령'을 다루는 영화도 거의 제작되지 않는 느낌이;;; 대신에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악행에 대해서 미지의 악령에게 그 죄를 뒤집어 씌우던 단계에서 좀 더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지칭을 하기에 이르른다. 바로 '싸이코패스'가 그것. 싸이코패스는 21세기에 이르러 지난 세기의 '악령'의 지위를 획득하게 되었고 상당수의 공포영화를 비롯해 절대 악인을 다루는 영화들은 이제 철지난 악령에 매달리는 대신 싸이코패스를 등장시키고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케빈이 그렇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악행의 연속. 그러나 그의 행위가 잔인한 이유는 행동의 잔악함 보다도 자신의 악함을 숨기고 전혀 딴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점 때문이다. 심지어 유아기를 갓 지난 시절 부터 아버지 앞에서는 마치 가면을 쓴 듯 착한 아이의 모습이지만 어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심지어 무언의 협박을 감행하는 수준까지 보여주는 케빈이다. 때문에 고작 유소년기의 아이가 저지르는 고작 말썽 정도의 행위에 불과함에도 케빈의 행동에는 섬짓함이 느껴진다.


 이 과정에서 엄마인 에바(틸다 스윈튼)는 혼란 스럽다. 남편이 둘도 없이 귀여운 아들로 여기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느껴지는 케빈의 실체가 무엇보다도 힘들지만 저 생명을 낳은 것이 자신이라는 '원죄'가 무엇보다도 그녀를 힘들게 한다. 그리고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이 영화에서는 두개의 상징적인 장면이 에바의 이 내면을 설명하고 있다.


1) 토마토를 뒤집어 쓴 에바.

 영화의 시작은 어느 지역의 토마토 축제에서 토마토를 잔뜩 뒤집어 쓴 채로 황홀경을 느끼고 있는 에바의 모습이다. 분명 축제의 모습이지만 이 영화에 대한 약간의 사전 지식만으로도 온 몸에 붉은 빛을 뒤집어 쓴 사람들의 슬로우 모션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는 여행 작가로 자유로운 삶을 살던 에바의 '습성'이 (계획되지 않은 임신으로 엄마가 된 후에) 육아에 필요한 행동들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과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다. 나름 최선을 다해 보지만 이성이 통하지 않는 갖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는 에바. 심지어 어떻게 해도 계속 울기만 하는 아이의 울음 소리 때문에 시끄러운 공사장 소음으로 그 울음소리를 지우려 하는 그녀다. '육아를 위해 필요한 헌신을 다 쏟지 못해서 아이가 이렇게 된걸까?' '자유롭고 싶었던 나의 욕구가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낸걸까?' 토마토 씬 말고도 이 영화에서는 붉은 조명을 직관적으로 사용하는 대목이 종종 등장하는데 자유로운 축제의 장에 온통 붉은 빛이 넘실대는 토마토 씬은 바로 에바의 자유롭고 싶은 욕구와 '핏빛 비극'을 연결지어 생각하는 에바의 심리상태가 드러난 장면이 아닐까 짐작 해 본다.


2) 물어 뜯은 손톱, 깨진 계란 껍질

 케빈의 핏빛 비극이 일어난 후, 사람들에게 에바는 케빈과 동급의 인물이 되어있었다. 마음껏 욕하고 때려도 좋을 존재. 길을 걸어가다가도 난데없이 주먹질에 발길질에 시달리고, 집에 온통 붉은 페인트를 던져놓고 도망가는건 이제 예삿일이 되어 버렸다. 그 와중에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피해자의 가족인 듯한 여성을 보고 잠시 자리를 피했던 에바. 별일없이 다시 돌아와 계산을 하고 나가려는데 골라놓았던 계란이 모두 깨진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 뒤로 이어지는 피해자 가족의 싸늘한 시선. 누구에게 따지고 항변할 것인가. 그저 얼른 들고나와 자리를 피할 밖에. 그 깨진 계란으로 한 요리를 먹으며 에바는 껍질 조각을 하나 하나 뱉어 놓는다. 

 어쩔수 없는 이유와 상황 때문에 깨진 계란 껍질을 꾸역 꾸역 뱉어낼 수 밖에 없었던 에바. 그런데 만약에 면회장에서 자기의 손톱을 물어 뜯어 가지런히 줄세웠던 케빈에게도 어쩔수 없는 이유와 상황이 있었다면 어찌 되는것인가. 그 이유와 상황을 어머니인 에바가 만든 것이었다면, 그래서 에바에게만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었다면...



사실 다른 영화 평들이나 제작진의 인터뷰를 보더라도 이 영화의 핵심은 '모성'인듯 한데, 여성도 아니고 아이를 키우지도 않는 내 입장에서는 오히려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대한 접근이 더 흥미로웠고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다. 하지만 어디 모성만을 위한 장과 사이코패스 살인마에 대한 장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세상이던가. 큰 사고가 난 이후에 자신들의 시스템 바깥의 존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악령과 사이코패스와 심지어 지역이나 인종, 혈연을 구분하는 배척과 인간대 인간의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순간은 증발된 채로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는 무조건 적인 사랑이 존재 해야'만' 하는 모성 신화는 비슷한 맥락의 '폭력'이 아닐까.

 

 그래서 이 영화가 모성 신화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있다거나 하는 말은 아니다. 단지 모성에 상존하고 있는 순간순간의 위태로움을 외면하지 않고 그 위태로움 마저도 감추지 않고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세지가 아닐까 싶다. 모성을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는 신화적인 단계로 설정하며 숭배하는것은 너무도 쉽게 모성 개개인에 대해서, 또 아이에 대해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need to talk about'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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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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