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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3.03 밀크(Milk,2008) -피로 칠한 밑그림- (2)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말이다. 다만 그 '사람'에 누구를 끼워 줄것인가가 문제가 되는거지. 걸핏하면 타국의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채색되어 왔는가를 담담하지만 힘있게 보여주는 영화가, '밀크(Milk)'다.




 (특히나) 정치인의 전기 영화는 재미가 없다. 아니, 재미가 없다는 표현보다는 태생적으로 허점을 많이 갖고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몇 백 몇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 아우라가 쉽게 침범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위인'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은 다음에야 의견대립이 그 주가 되는 정치인의 인생사는 그 반대 측의 입장에 서서 봤을 때는 '미화'로 느껴 질 테고,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 느낄 수도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당대의, 그리고 그 후의 지지자들이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 서의 캐릭터를 묘사하느냐, 최대한 그 인물 자체로서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 흐름이 딱딱해지거나 생략이 많아지는 경우,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게 봐줄 거리가 없어지는 경우로 새버릴 여지가 많다.


‘밀크’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줄타기를 나쁘지 않게 해 냈다고 본다. 물론 ‘하비 밀크’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이야기 거리로서의 매력이 크기는 했지만. 거기에 사실 하비 밀크라는 인물보다는 감독인 구스 반 산트와 하비 밀크 역을 맡은 배우 숀 펜의 유명세가 (적어도 나에게는)먼저 다가오는 지라 ‘실화’라는 점은 이야기의 몰입에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 말 그대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그 시작은 우리도, 나도 살고 싶다는 그것부터였다. 어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당시의 미국은 게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갖지 못하고, 폭력을 당하며, 게이를 죽인 범인은 경찰도 두 팔 걷고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40년을 살아온 하비 밀크는 어느날 문득 찾아온 '자괴감+ 허탈함+α'로 인해 지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적응을 뒤로 하고 동부와 서부의 거리만큼이나 다른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정처인의 전기 영화에서 다룰 법한 ‘정치인의 이야기’들. 수많은 낙선과, 지쳐 나가떨어지는 동료와, 그러나 계속되는 도전과, 드디어 무대로 올라섰을 때의 감동과, 본격 정치무대에서의 관철을 위한 노력과, 그리고 드라마틱한 최후.




역시나 전기영화에서는 그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수의 객관적인 호평을 이끌어 냈던 숀 펜의 하비 밀크는 역시나 대단 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전에 실제의 하비 밀크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니 그가 얼마나 하비 밀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는지를 평가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제의 ‘하비 밀크’가 그랬을 것이라 짐작 되듯이 영화 속의 하비 밀크도 ‘게이’ 같았다는 것. 하비 밀크는 게이처럼 말하고, 웃고, 걷고, 행동했다. 수많은 낙선의 과정에서도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신뢰감을 주는 정치인’ 이미지를 위해 거짓으로 연기를 하지 않았으며, 정치무대에 등장하고서도 엘리베이터로 쥐죽은 듯 이 조용하게 다니지 말고, 쫄바지를 입고 당당하게 게이처럼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라며 ‘동료’를 격려했다. 그 시작이 ‘나도 여기 있소’였기에 끝까지 ‘나’임을 포기하지 말자는 당당한 표현이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내디뎠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 영화 속의 ‘게이 같은’ 몸짓은 코믹적인 요소로서 활용될 뿐, 실제의 등장인물이 게이이지만 코믹한 캐릭터가 아니라면 그 인물의 ‘게이 같은’몸짓은 이내 생략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게이 같은 몸짓 속에 단순한 웃음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메시지 전달에 있을 수 있는 혼선의 위험성을 기꺼이 감수하고 조금은 더 게이가 익숙해지도록 도왔다. 하비 밀크가 목숨을 걸어가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게이 대변자 이미지를 위해 시위대를 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 시 의회에서의 자신의 기득권을 향상에 도움을 줄 동료 의원과의 연대를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포기할 수 도 있었던 정치인이 모두 하비 밀크의 모습이었다.




뜬금없이 한참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배철수 아저씨의 한마디로 글을 맺을까 한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안 되는 거 에요. 왜냐하면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기가 이 세상이 이렇게 되는데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거든요.’

예고편







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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