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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적요(박해일)'가 있다. 그 옆에는 무슨 문하생도 아니면서 항상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서지우(김무열)'가 있다. 그리고 그 서지우는 이제 막 베스트셀러 작가로 발돋움한 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적요의 온갖 시중을 들며 그 곁을 지키는 생활을 버리지는 않고 있다. 이런 두 사람에게 나타난 소녀, 은교(김고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이적요의 집에 작게난 계단참으로 총총히 들어온것 처럼, 은교가 이적요의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는 것에는 '국민 시인'이라는 낯부끄러운 칭송도 교과서에 작품이 실릴 정도의 명성도 칠순 나이도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후의 전개는 '로리타 컴플렉스'가 주 맥락이 될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은교가 그렇게까지 어리지는 않기도 하고 이적요에게 있어서는 뮤즈인 은교가 지우에게는 일종의 애증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 완벽한 이적요의 월드. 그 옆에서 얻을 수 있는 서지우의 성취란 결국 이적요에게서 나온 것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작품 하나 하나를 '자식'이라 부르며 그에 걸맞게 대하는 이적요인만큼 그의 '제자'역시나 그에게는 자식이나 다름이 없을 것이나 서지우가 이뤄내고 싶은 것은 결국 서지우의 월드이지 절대자 이적요가 내려주는 서품일 수는 없는거다. 자신이 발을 딛고 서있는 토양은 결국 이적요의 월드 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익숙함과 일종의 안락함을 모두 버리고 광야로 나서지도 못하면서, 그 세계에 갖혀사는 것에 대한 원망과 자괴감 역시 떨쳐 버리지 못하는 '껍데기' 서지우. 이런 이유로 해서 오히려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쪽이 더 가깝지 않나 하는 감상을 가지게 되는데, 그건 내가 서지우에게 감정 이입이 더 많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뮤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건 남자라면 한번쯤 품어 봤을 법한 로망이다. 그리고 시인 이적요는 칠순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게 되지만, 내가 이적요에게 감정 이입을 온전히 다 하지 못한 이유는 그와 나의 남성이라는 동질성보다 세대간의 차이라는 비동질성이 더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겠지. 만약 상대에게 뮤즈를 빼앗긴 '수컷'이 도드라지게 존재하지 않았다면 물론 이적요에게 마음놓고 이입될 수 있었을 테다. 하지만 사실은 빼앗긴것 조차도 아니다. 애초에 자기의 세상이 없는데 자기만의 뮤즈 따위가 존재할 수가 없지. '우두머리'가 되지 못한 수컷은 그게 슬픈거다. 자신만의 세상이란것도 그 세상의 뮤즈도 가져본 일이 없고, 그저 우두머리의 세상에서 우두머리의 뮤즈를 부러워하고 질투할 뿐인것이. 그렇게 사실 뮤즈를 빼앗은 것은 껍대기에 배은망덕한 제자이기 까지 한 서지우가 되는거다. 심지어는 그렇게 빼앗고도 가지지 조차 못하는.


그래서 나에게는 늙은 이적요의 쪼그라든 성기보다, 어찌 해도 자신의 세계를 쌓아 올릴 수 없는 서지우의 좌절이 더 슬프게 다가 왔다. 과연 자신이 그렇게 아름답고 소중하고 예쁜지 몰랐다는 은교를 깨우쳐 준것이 이적요이지 서지우가 아닌 이유는, 서지우가 은교의 젊음을 알아 볼 만큼 늙지 않아서 였을지 아니면 공장에서 찍어져 나오는 수 많은 거울들 중 특별한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공대생' 출신이기 때문이었을지... 이름을 불러줘야 '꽃'이 된다는데, 어떤 이유에서건 서지우에게는 은교를 품을 만한 세상이 없었다. 꽃을 호명할 수 있는 존재는 절대자 이적요 뿐이었다.





< 은교 > 결코 시들지 않는 절대 권력자의 욕망   <- 흥미로운 평.




#1. 사실 극 후반의 인물들의 감정 변화를 쉽게 따라갈 수 없었음.

     말하자면 은교가 서지우에게 매혹당하는 순간이 너무 갑작스럽게 느껴졌달까;;

     원작 소설의 내용에서 생략된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음.


#2. 감독의 인터뷰도 그렇고 나이 든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많이 중점을 둔 모양인데;;;

     아마 나는 나이 든다는것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사람인가 봐;;


#3. 최근에는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의 결말이 거의 비슷한 노선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뭔가 불만이 많긴 많은 모양이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정지우 필름, 렛츠필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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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 앉아있다가 '개새끼'라는 욕을 듣게 되었을 때 처음 가지게 된 감정은 부당한 모욕에 대한 분노나 그러는 지들은 얼마나 잘났기에 하는 비웃음의 감정 보다는 당황스러움 이었다. 대포집 안주거리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공식적인 장이라고 할만한 판에 이르기 까지 과연 이나라의 20대가 진짜 '개새끼'인가 아닌가를 놓고 갑론 을박을 펼치는 것을 보고 가지는 '개새끼'의 감정이란게 당황 스러울 수 밖에. 일단 얼마간의 당황스러움이 지나간 후에는 어느정도 맞받아칠 궁리를 하게 되기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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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와중에서 어설프게 팔뚝질이나마 몇 번 따라해 봤던 개인의 경험까지 더해져서, 그 대단했던 8,90년대의 '용사들'을 선배로 둔 90년대의 끝물을 탄 학번들의 모습이 영 미덥지 못했던 기억까지 새록새록 돋아 났다. 입으로는 평등, 정의를 말하지만 몸으로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를 행했던, 그 '형'들. 한때의 '스포츠'는 몇 년이면 족하고 결국에는 '삼성'의 가족이 되고자, 독서실에 쳐박혔던 그 선배들. '개새끼'의 입장에서 봤을 때 다른 '개새끼'들도 비슷한 '좌절'의 경험을 알게 모르게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물며 그 대단했던 8,90년대의 용사들도 세상에 나와서 어쩌고 있나. 결국은 '먹고 살려고 보니'같은 대사를 읇조리는건 그들의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선행학습으로 단련된 우리 '개새끼'들은 이미 내다보고 있었던 거다. 어차피 갈 길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왜 굳이 '20대니까' 멀리 돌아 돌아 가야한다는 건지. 결국 할아버지들은 빨갱이 찾고, 아버지들은 경상도 놈들, 전라도 새끼들 찾을때 지들도 하나 만들어 낸것에 불과 하잖아. 그 대~단한 용사들이 말이야.




그렇게 볼려고 해서 그렇게 된것인지 감독이 영화 이면에 그런 메세지를 담고자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남이(박해일)'에게서는 21세기의 '개새끼'가 보인다. 출신은 양반혈통을 타고 난지라 나름 한량으로 살아도 굶어죽을 걱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큰 뜻을 품는다고 하더라도 성취할 수 있는 한계 또한 딱 굶어죽지 않을 정도에 불과하다. 인조반정의 와중에 아버지는 역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었고, 간신히 여동생 '자인(문채원)'만 데리고 도망을 나와 아버지의 벗(이경영. 극중 이름이 기억이 잘;;;;)에게 의지하여 살고 있을 뿐이다. 역적의 자손으로 몰래 숨어 목숨을 부지하고 살고 있는것만 하더라도 감지덕지인 상황에서 글공부를 한다 한들 벼슬을 할 수가 있는것도, 무예를 익힌다 한들 나라를 구할 수 있는것도 아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가보로 내려오는 활 한자루를 들고 사냥을 다니거나, 홀로 활쏘기 연습을 하며 화를 다스릴 뿐이다. 그런 자신을 나무라는 아버지의 벗에게 '오늘 이렇게 살고 내일 죽으면 그 뿐'이라는 식으로 대꾸하는 남이에게는 그러나 어찌 노력한다해서 쉽게 열릴것 같지 않은 세상 보다도 그 세상에 거스르다 가족도, 자신의 목숨도 지키지 못한 아버지가 더 큰 상처로 남아있다. 임금이 바뀌지 않는 이상 지금의 세상에 거스르려 한다고 한들, 자신의 끝 또한 아버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그 허망한 길을 뉘라서 쉽게 재촉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남이에게 더 크고 직접적인 불가항력이 다가온다. 청나라의 침입 '병자 호란', 그 와중에 아버지 벗의 아들인 '서군(김무열)'과 혼례를 치르던 남이의 여동생 자인은 서군과 떨어져 각자 청나라에 끌려가는 신세가 되고 만다. 그렇게 끌려간 사람의 수가  50만에 다다랐다는 큰 물결과도 같은 상황에서 여동생을 구해내겠다는 생각하나로 활 한자루를 쥐고 뒤 쫒는 남이. 이미 임금마저 굴욕적인 항복 선언을 하고, 도리어 국경을 넘어 끌려간 사람들이 돌아왔을 때는 죄를 묻겠다는 50만에 대한 어이없는 대 백성 포기선언을 한 마당에 말이다. 게다가 여동생 자인을 끌고 가고 있는 무리는 청의 왕자인 '도르곤(박기웅)'을 호위하는 무리들. 뒤를 쫒는 남이가 이를 알리는 없지만 이는 곧 그 어느 부대보다도 경계가 삼엄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난생 처음 세상의 흐름에 역행하는 남이의 옆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눈앞에서 목이 잘렸던 아버지가 죽기직전 맡긴 유품이자 가보인 활과, 역시나 아버지가 유언처럼 남긴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겨내면 그 뿐'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몸을 굳게 만들정도의 두려움을 맞이한 순간에 남이 역시 적장, 청의 '쥬신타(류승룡)'에게 비슷한 말을 내 뱉는다.

'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이쯤 되니 나는 헷갈리기 시작한다. 남이는 과거의 '용사'들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렀던 모습을 재현해낸, '개새끼들'에게 고언을 해주기 위한 인물일까? 아니면 쉽사리 시대를 거스르겠다는 생각조차 품지 못하는 '개새끼'들에게 잠시 잠깐의 판타지를 안겨주기 위한 인물인 걸까? 알게뭐야, 감독은 그저 그럴듯한 설정이 필요했을 뿐이고 나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지고 있는지도. (덕분에 영화를 보고난 감상이 깔끔하게 떨어져 정리되지는 않는다;ㅎ)





내가 영화 초장부터 이렇게 옆길로 빠져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은 흔히 '개새끼'들을 욕하는 사람들이 하곤하는 '각 세대마다 소명이 있었고, 지금껏 모두 그 소명에 응해 왔는데 지금 세대들은 그런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라는 말과 '두려움은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이겨내면 그뿐'이라는 말이 겹쳐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묘하게 민족 주의적 떨림을 불러 일으키는 무기인 '활'이 영화의 주요한 매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놀이이자 운동이자 무예인 활. 역사는 이땅의 조상들이 엄청난 궁술의 소유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고, 지금에 와서도 활쏘기 시합을 한다면 외국의 대표팀이 한국 대표팀을 당해내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 등이 더해지고 더해져셔 인지는 몰라도, 활이란 무기는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자존심이랄까 긍지랄까 하는 이미지를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영화를 계기로 한국 사람인 내가 활에 대해 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다른 한국 사람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지는 뭐;;;).
 
더구나 흥미로운 부분은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조선을 쥐고 흔들었던 청국 군사들의 화살은 무거운 활 촉을 써서 그 위력 또한 대단한 '육량시'이고 , 청국 군사들의 압도적인 우위를 뚫고 그 들의 목에 화살을 박아넣는 남이의 주 무기는  화살의 궤적이 휘어지게 쏘는 '곡사술'이라는 것. 직선에 대항하는 곡선, 우악스러움에 대항하는 부드러움이라는 대결 구도는 끊임없이 약자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민족적 정서와 함께, 강자의 틈바구니에서 살아 남아야 하는 약자들의 정서를 호명해 한데 뒤섞는데 성공한것으로 보인다. 












 #1. 민족적인 정서를 호명해 내는데 역시 기여를 한 호랑이의 존재 또한 인상적으로 묘사 되었음. 과함과 부족함 사이       에서 줄타기를 잘 했다고나 할까...

#2.아포칼립토 라는 영화와 비교하는 의견들이 많던데, 중대한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기 보다 이야기로서 매력적으로     풀어먹을만한 구도를 가져와 활용했다고 보는편이 합당하다는 생각이 듬. 많은 로맨틱 코미디나, 액션 영화들이 같     음속에서 다름을 추구 하는것 처럼. 이 영화는 충분히 다르다고 평가해 줄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봄.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 ㈜다세포클럽㈜디씨지플러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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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인기 웹툰을 영화화 한 이끼. 오랜만의 강우석 감독의 작품에 요소마다 배치된 연기파 배우들로 주목을 끌 만한 요소가 많은 영화다. 더구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원작 만화의 내용에 대한 기대까지 더해지니 적지 않은 안팍의 기대도 끌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과연 기대만큼 대박 히트를 칠 수 있을까?

 



                                                               오른쪽이 '하성규'역의 김준배
 
 만약 대박이 난다면 그 첫번째는 배우들의 연기 때문일 것이다. 정재영, 박해일,유해진등등 어느 자리고 갖다만 놓으면 기본 이상은 발휘하는 이들에 더불어 '타짜' 등에서 임팩트 있는 모습을 보여줬던 김상호등의 조연급들의 하모니가 극 전체를 상당히 '있어' 보이게 한다. 특히 '하성규'역의 김준배는 짐승같은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에너지가 그대로 드러나는 과거 회상 장면에서나 그 에너지를 적당히 숨기고 사는 현재의 장면에서나 하성규의 야수성은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배우로서 그다지 다양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는 않는 허준호도 이야기 전개의 중심 축인 '유목형' 역할의 심약한듯 얼핏 광인과도 비슷한 기질을 표현하는데 성공적이었다고 평하고 싶다. 







 대박 가능성의 두번째 이유로는 (딱 들어맞는 표현은 아닌거 같지만) 영상을 들고 싶다. 영상미(美)가 아닌 그대로의 영상. 히트친 영화가 많은 감독 강우석에대한 비판중에 그의 미학적인 측면에서의 아쉬움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분야로는 더더욱 아는게 없어서 뭐라 풀어 쓰기에는 좀 그렇지만 어떤 구도, 색감, 화면 편집 등에서 뭔가 2%정도 후달린달까. 강우석 감독의 영화에서는 그 옛날의 투캅스나 최근의 공공의 적이나 시간의 흐름에 비해서는 뭔가 더 세련되어졌다거나 하는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영화 '이끼'에서도 물론 스릴러 장르의 특성상 다양한 시도들을 한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엇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다른 영화들과 비교해 본다면 영 심심하달까(혹은 촌스러 보인달까). 그런데 오히려 그런 느낌이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진짜로 생짜인(다큐멘터리 영화의 화면 같이도 느껴지는 ) 화면을 갖고 켜켜이 쌓인 음모들을 풀어나가니, 영화 '도망자' 처럼 정말 사고가 날것만 같은 화면에서 튀어나오는 충격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 이말이지. 


그.러.나

만약 이 영화가 대박에 실패 한다면 그 이유는 너무 확실하게 한가지, 지루하다. 무슨 프랑스 예술영화처럼(;;;) 잠이 오게 한다던가 그렇지는 않지만 중요한 순간에 임팩트를 주는데 실패한 느낌이다. 어디에 뼈대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 되는지가 도무지 희미하다. '유목형'의 죽음에 대한 비밀인지, 마을의 탄생에 대한 비밀인지. 물론 두 가지 비밀을 따로 떨어뜨려 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파면 팔수록 얽히고 설켜서 '그림이 커지는' 이야기 진행을 원했다면 그 연결이 조금 더 부드러웠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사실 주인공 '유해국(박해일)'의 시점을 따라가면서 관객이 알아내는 비밀은 비밀 통로 밖에 없다. 예고편에서도 수없이 써먹은 그 장면은 '우와~ 이 동네 겉으로는 멀쩡한데 골때리는 동네네~'하는 정도의 느낌을 관객들에게 안겨주지만 그 이후로 유해국이 알아내는 것은 없다. 뭘 조사하려다 걸려서 죽을 고생을 하기는 하는데  갑갑한건 그러고서도 자기가 알아내는 건 하나도 없다. 중요한 순간에 주요 인물이 주요한 이야기를 일장연설로 풀어서 해줄 뿐. 엄청난 고난을 겪고도 정보는 그와는 무관하게 누군가가 턱 던져주는 것 밖에 없으니 따라가는 입장에서는 영 맥이 빠진다. 그래서 혹여, '지루하다'는 말 대신에 '지치게 한다'는 표현을 해도 좋을 듯 싶다. 도대체가 약만 올리지 뭘 안준단 말이지. 그렇게 결론 부분에 다다르니 뭔가 정보들이 쏟아진다. 기도원의 대 참사가 '유목형'의 짓이 었는지,  '천용덕 이장(정재영)'의 짓이었는지도 상황에 따라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장치가 될 수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천용덕의 거론에 뒤이은 '영지(유선)'의 진술 한번에 너무나 간단하게 끝장나버린다. 더구나 뜬금없는 천용덕 이장의 혈연 관계는 왜 드러나는지, 부장검사의 압력도 쌩까고 현지의 경찰 병력까지 통제를 시킨 상황에서 어떻게 천용덕 이장의 아들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는지도 별다른 설명이 없다. 원작을 접하지 않은 입장에서 보자면 원작의 내용을 영화에 맞게 재구성 하는데 좀 애를 먹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뭔가 힘을 잔뜩 쓰기는 하는거 같은데, 비 상식적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스릴러라는 장르를 통해서 드러내 보고 싶었는지, 아니면 구원과 같은 종교적 문제를 건드려 보고 싶었는지, 짐작만 해볼 뿐 그 시도들이 와 닿지를 않는다. 오히려 곁가지로 거추장 스럽게만 느껴질 뿐. 




#1. 바위틈의 이끼를 뜯어 먹으면 이런맛이 날까? 무색무취의 생명력만 가득한. 으...못먹겠다.


                                                                  베스트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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