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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당신은 입고 나갈 옷의 상표를 노출시키지 않게 위해 덕지 덕지 테잎으로 가리는가?

(흡연자일 경우에)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람들의 시선이 전혀 닿지 않는 외진 곳을 찾는가?

가까운 친구 사이에 쓰는 가벼운(?) 욕설을 의.도.적.으로 순화시켜 표현하는가?

혹시...카메라를 든 수십명의 사람들이 당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라 다니는가?

아니라고? 음..그럼 당신은 '리얼'세상에 살고 있다.



 옛날에 살았던 어떤 의심 많은 프랑스인은 '내가 지금 X나 머리 굴려가면서 의심하고 있는 것'에 도달하기의 전까지 이르는 '모든 것'을 의심 해 볼 수 있다고 했단다. 그만큼은 아니더라도 걸핏하면 들이미는 ‘방송의 리얼리티’에 대해서 이 정도 의심은 한번쯤 가져 볼 만하지 않을까?

사례1. 자연 다큐멘터리 카메라의 화면이 얼룩말을 쫒아가는 치타를 잡고 있다. 당연히 멀리서 전체적인 전경을 찍은 화면이지만 신기하게 풀숲을 뛰어가는 소리가 바스락거리며 난다. 후에 덧입힌 소리다.


사례2. 드라마에서 전형적인 한국 가족의 단란한 식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밥상에 빙 둘러 앉아 먹는 것이 아니라 세 면에만 사람이 앉고 한 면은 그대로 비워둔다. 그 면에 텔레비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사례3. 버라이어티쇼에서 생선을 다듬는다. 팔딱거리는 생선을 기절시키기 위해 칼등으로 생선의 머리를 내리 친다. 눈알이 튀어 나왔다.


그래, 풀숲을 치타가 뛰어 간다면 ‘바스락’ 소리가 나긴 할 거다. 그런데 뛰어가는 소리를 직접 잡아낸 대신에 비슷한 소리를 덧입힌 거라면, 방송의 리얼리티에 반하는 행동일까? 풀숲을 뛰어가면 풀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치타가 풀숲 위를 뛰어간다. 고로 소리가 나야한다(?) 치타의 바스락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덧입히는 것이 리얼리티 추구에 부합하는 행위이려면, 실제로 치타의 발에 풀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잡아내지 못한 ‘다큐멘터리 제작진의 존재’가 사라져야만 한다. 사력을 다해 도망가는 얼룩말을 쫒아가는 치타(의 발소리)를 놓친 제작진의 한계...가 발소리 없는 풀숲 추격전을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 강호동씨가 ‘예능’의 반대말로 쓰는 듯 하는 ‘다큐’에서도 리얼리티를 따진다는 건 이처럼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관찰 대상이 정해지는 과정은, 편집 과정에서 여러 화면들을 선택하고 버리는 과정은, 또 얼마나 리얼리티를 살리는데 부합하는 행위일까? 다른 편집자가 다룬다고 해도 같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내가 갔어도 얘를 찍었을까?

하물며 예능 프로그램이라니... 생계가 달린 사안에 얼마만큼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야 하나.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람들은 시청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금전적인 손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다른 식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쉽지 않아서 특별하게 웃음을 주는 일에 뜻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러 저러한 ‘쇼’에 얼굴을 디밀어야 한다. 그런데 그 쇼에 나가서 선택받지 못한다면? 고정 출연자가 되어 따박 따박 나오는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기회를 포기해야 함은 물론, 가수나 연기자로서의 자신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데에 있어서는 훨씬 제한되어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는 ‘리얼’이란 무엇 인고 하니, 전쟁 영화 앞에 붙는 ‘스펙타클’, 스릴러 영화의 앞에 붙는‘ 서스펜스’, 에로틱한 영화 앞에 붙는 ‘문제적 사랑’과 비슷한, 그저 수식어일 뿐이다. 스펙타클이 없어도 전쟁영화가 되고, 서스펜스가 없어도 스릴러 영화가 되고, 그 사랑이 문제적 사랑이 아니라도 에로틱한 영화가 나오는 것처럼 ‘리얼’없이도 리얼 버라이어티는 가능하다. 위에서 예를 든 두 번째 사례와 같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위해 적당히(그냥 넘어가기로) 합의 된, 그 불문율을 넘어선 어떤 설정을 보여주는 것이 아른바‘리얼 버라이어티’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밥상에 앉는 모습이야 공히 카메라가 그 들의 정면 얼굴을 잡도록 한 면을 휑하게 비워두는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토크쇼에서 보이는 정제된 대사와도 같은 어투가 일상어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던가, 방송국 세트장이 실제의 집이나 마을로 대체된다던가 하는 식으로 ‘보다’ 현실적으로 보이는데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현실적’에서 현실은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를 벗어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생선 기절시키려고 칼등으로 머리를 내려치는데 눈알이 튀어나오는 세상은 심의에서 경고를 먹는단 말이다.  방송국 복도를 지나가더라도 방송국 노조가 내건 대자보며 현수막이 비추어 지면 ‘좌빨 방송’이 되는 거고.


이 프로그램속의 ‘리얼’이 정제가 되어야 하는 건 상부기관의 검열이나 사회의 통념 같은 터부들 때문만은 아니다.프로그램이 전개되는 약 2일정도의 시간으로 보거나, 프로그램이 실제로 방영되는 1시간여의 시간으로 고려하더라도 ‘리얼 버라이어티’속의 세상은 신나고, 재밌고, 즐겁다. 여간 재밌는게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재미있어야 하기 때문에 재미에 방해가 되는 요소들은 증발된다. 일례로 ‘유선관’을 다룬 프로그램과 관련한 포스팅이 있었다. 이 글에 따르자면 방송에서 보였던 왁자지껄, 들썩들썩한 분위기는 유선관과는 맞지 않은 분위기였고, 그로 인해 기존에 유선관을 운영해 오던 측에서는 적지 않게 곤혹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화장실도 공동 사용이고, 그 흔한 텔레비전 한대도 (당시에는 고장이 나서 )없는 곳에서 ‘그 들’은 너무나도 재미있게 놀았다. 말 그대로 절간 근처에 있는 오지의 기와집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재미있게 놀았던 거다. 그렇게 그 재미에 공감한 많은 시청자들이 ‘유선관’을 찾을 테지만 방송과 같은 재미를 느끼지는 못할 거다. 방송에서는 생략 되었던 공동 화장실이나, 인터넷은커녕 텔레비전도 공동으로 봐야 하는 환경이 그 재미를 반감 시킬 테니까. 말하자면, ‘그 들’의 흥겨움이 의도적으로 너무나 과했다는 거다. 왜? 웃겨야 하니까. 큰 웃음을 빵빵 터트려야 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의도적으로 과장된 웃음을 통해 전달해 주는 ‘리얼’이 진짜 현실보다 더 현실로 느껴진다는 거다. 이를테면 조미료에 찌든 음식에 익숙해지면 순수한 자연의 음식이 심심하고 맛없게 느껴지는 것처럼. 그래서 남의 고민, 연애담을 공유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력 대신에 점점 더 손쉽게 리모컨을 들고, 강심장과 우결을 튼다. 한눈에 봐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선남, 선녀들이 나와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털어놓아주고, 알콩달콩 연애질을 한다.  오랜 기간 동안 허물없이 관계를 이어온 친구 사이에서나 가능 할 법한 일들이 리모컨을 돌림으로서 화면을 통해 가능해 진다. 그리고 오랜 기간 동안 허물없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조건이 점차 리모컨을 돌리며 접했던 그들에게로 맞추어 진다. 허벅지는 탄력있게, 허리는 잘록하게, 피부는 뽀얗게, 귀여운 얼굴에 식스팩, ‘간지’있는 패션 센스에 ‘기본’은 되어야 할 재력, 등이 말 그대로 기본이 되어가고, 그 기본을 위해 닭 가슴살을 씹고, 헬스장을 끊고, 밥을 굶고, 카드를 긁는다. 당의정이 아니면 약을 못 삼키는 아이처럼, 어딘가 재밌게 포장을 해주지 않으면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도 이렇게 저렇게 포장해 보려 안달들이 나고 온 국민이 엔터테이너화 되어 간다. 점점 더 현실을 접할 수 있는 창구는 줄어들고, 단 껍데기를 덧입혀야 팔린다. 가수가 그랬고, 연기자가 그랬듯이, 복싱선수의 투혼도 당의정의 축복을 통해서만 이슈가 될 수 있다. 

 
 이 단계가 어느 정도에 까지 이르렀는고 하니, ‘진짜 현실’이 ‘가짜 현실’에 몰입하는데 방해가 되어 외려 그 진짜 현실을 나무라는 정도에 까지 이르렀다. 당장에 기억나는 사안은 어느 출연자가 요리선생님으로 초빙된 요리사의 조언을 무시하고 감정의 날을 세운 후 있었던 후 폭풍이다. 무려 ‘공익’을 위해 먼 뉴욕 땅까지 갔는데 거기서 유치하게 감정싸움이나 하고 왔다는 거다.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여야 할 텔레비전 속의 뉴욕에서 오로지 정준하만이 자신의 있는 감정 ‘그대로’를 노출 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정말로 ‘현실적인’ 그 의견 충돌이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나라에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몰매를 맞았다.


 


지금도 조금만 검색 해 본다면, 이른바 ‘리얼논란'이 수 도 없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다. 진짜도 아닌 걸 두고 진짜를 따지고 있다니 역설도 이런 역설이 없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건 방송 권력에 정교함을 요구하면 할수록 그 것을 통하지 않고 현실을 접할 여지는 줄어든다는것. 당신이 TV를 통해 본 '리얼'이 리얼하지 않다면 그 책임은 방송 제작진에 있는 것이아니라, 고작 TV앞에 앉아서 '진짜'를 기대한 당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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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첫째, 좀 애매해..그치?

유명인이라 하기엔 그저 유명한 가수의 형이라고 하는 편이 맞는것도 같고, 일반인이라고 하기엔 교육방송에서 고정 방송 출연도 한다데? 더구나 몇번이고 뒤집어 질만한 '설화'가 반복되는 근원인 '미니홈피'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야. 그저 개인 공간일 뿐인지, 공개를 기본 목적으로 한 글인지... 그리고 이건 좀 찌질한 공격인거 같이도 보이지만 당신의 국적은 캐나다, 하지만 민족 비슷한 무언가로 따지면 한국인 '이선민' 이기도 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볼까? 공인이라서, 유명인이라서 뭘 이래야 한다는 둥 저래야 한다는 둥 하는 소리는 동의하지 않으니 당신이  공인이던 유명인이던 아니던 별상관은 없어. 다만 미니홈피의 글을 퍼다 나른것에 대한 분개는 글쎄. '개인'과 '홈피'라는 말을 붙여 쓰는 말이 얼마나 합당한 일일까? 사실 갈라보면 이 단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단어거든. 비공개 글을 해킹당해서 글이 퍼진것이었다면 당신의 볼멘소리에 동의 하겠지만 당신의 미니홈피의 그 글은 누구도 가서 볼 수 있도록 되어있는 상태였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는 않았겠지만, 누구라도 오다가다 그 글을 본 후 이러 저러한 의견 제시를 하면 그 글을 올린데 대한 책임은 져야하는 장소였다구. 왜 당신은 일기장이나 비공개 글로 글을 올린것이 아니라 공개 되어있는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을까? 기본적으로 누가 와서 봐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기에 올렸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개인홈피에 쓴 글을 갖다 읽은데에 대한 불평은 그저 일이 커진데 대한 짜증으로 받아들일께. 홈피의 글을 긁어다 나르면서 '쟤좀 혼내주세요' 하는 일은 나도 찌질한 일중의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찌질하다고 당신의 잘못이 가려지는건 아니야.

그리고, 사실 애매한건 당신이 화가난 이유도 그래. 당신은 처음에는 그저 질떨어진 개그 쯤으로 여기던 무한도전의 예능에 엠비씨라서, 무도라서 뭔가 특별해야 한다고 보는 권위를 부여해 주기도 해(다분히 개인적인 해석에 의하자면 당신의 글을 그렇게 읽었단 소리야). 도대체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뭐라고 생각한거야? 진짜 질떨어진 개그 프로그램일 뿐이라고 느끼고 있다면 그 프로그램 하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있는 것이며, 무한도전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저 다른 웃고 까부는 프로그램과 다른 '포~스'를 보여줘야 한다고 느낀다면 뭣땜에 무도를 그렇게 대단하게 여기는 거지? '공익성'은 무한도전이 갖고 있는 하나의 코드일 뿐이야. '실제로 그런 것' 보다 '그렇게 보이는게 우선'인 목적을 갖고 만들어 지는 프로그램이라구. 실제로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이루는게 목적이라면 엠비씨 연중 켐페인으로 갈 일이지 '대한 민국 평균 이하들'이 가서 우왕 좌왕 할 일이 아니지. 프로그램 한두시간 편성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다만 한국 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 같은 그림을 보여주면서 거기에 감동코드를 곁들인 웃음을 주는건 가능하지. 그정도라면 프로그램 한 두시간 편성으로 도전해 볼 만한 일이거든(그런 일이 쉽다고 말하는건 절대 아니야). 그렇다면 과연 주말 황금시간대에 무한 도전을 보고 웃어줘야 하는 사람들은 누구? 이정도는 답나오지? 되도록 주말 저녁에 집에서 티비를 볼 확률이 많은 사람들에게 최대한으로 먹히는 개그를 해줘야 계속 살아남을 수 있는게 무한 도전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이야. 아마도 무한 도전의 공익성에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나 하는 짐작이 드는데, 단적으로 말해서 공익성을 쪽 뺀다, 웃음기를 쪽 뺀다 둘중 어느쪽이 더 빨리 무한도전을 막내리게 하는 길일까? 한참 불었던 공익성 예능 프로그램들, 결국 '못웃겨서' 문닫았지 아마. 화를 내고 있는 대상의 실체에 대해서 좀더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할거 같아. 이것도 내가 보기엔 면피용으로 보여. 당신이 흥분한 이유를 대단한 무한도전이 대단하지 못해서 였다고 돌리고 싶은... 뭐 그런.
 
당신의 그렇게 흥분한 이유. 당신이 일련의 목적을 위해 외국에서 생활하면서 겪은 차별을 떠올리게 만드니 그게 화가 났던건지, 아니면 정말 '우리'의 최고가 '남'한테 업신여김을 받으니 그게 자존심이 상한건지가 애매하거든.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라 영어에 (뭐 당신 만큼은 )익숙하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이 어려서 부터 소수민족으로 업신여겨지며 살았던 당신의 감정들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거같아? 당신의 욕설을 동반한 감정을 공유하려면 당신의 그 감정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저렇게 다 끌어모아도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안그런 사람들에 비해 다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거라고 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그 '욕설을 동반한 감정을 동의 받을 수 있을까의 여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거든.  당신 스스로 그 잘난 영어를 잘하고, 영어권에서 살아봤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훨씬 많이 생활해 봤다는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거든 (게다가 학벌도 좋다지 ㅎㄷ). '더 많이 알고 있는 내가 하는 말이니 영어 못하는 찌질이들은 내 감정에 귀를 기울여야해' 정도의 감정. '실제로 나만큼 살아보면 내가 하는 말을 다 이해 할 수 있을꺼야, 못알아 듣는다면 나만큼 경험을 못해봐서 그래' 식의 감정. 그래서 욕설을 섞어가며 비난을 날리는 당신의 입장이 그렇게 당당한거지. '영어 못해서 쩔쩔매는, 차고 넘치는 한국 우물안 개구리 찌질이'들은 당신 보다 못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까. 더군다나 그렇게 적응 못하고 버벅대는 동족들 덕분에 당신이 '진짜 미쿡인' 들로 부터 차별받고 무시받는다고 생각하니까. 난 잘하는데 나랑 닮은 쟤들 땜에 나까지 한덩어리로 욕먹는게 짜증나니까. 그래서 난 진짜 미쿡인, (미안) 진짜 캐내디언으로 취급받지 못하니까.

당신의 감정을 한국, 한국인에 대한 애정의 발로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악조건들이 많아. 일단 당신은 캐내디언이잖아. 당신은 한국 사람들을 향해 '우리'라고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이 '우리'라고 말하는 한국 사람들은 당신을 '우리'라고 불러 주기에는 일단 국적이 턱 하고 걸리거든. 나는 대단하다고 느끼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 안해주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것처럼 당신이 한국 사람으로서 한국에 대한 자기 비하적인 논평을 하더라도 듣는 많은 수의 한국 사람들이 당신을 한국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논평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한국을 비꼬는 캐내디언 버내나의 비아냥이 되는거지. 당신, 슈퍼볼 mvp먹어 봤어? 아님, 골프 신동이라도 되나? 아니면 대략 순위권에 드는 격투기 선수던가(유니폼에 태극기 넣는건 알지?), 어디 큰 상이라도 받은거 그런거 없어?
미안하지만....그럼 당신 '자랑스러운 한국인' 아니야. 




이상은 두번째(?) 사과문이 나돌아 다니기 전에 작성된 글...



밑에껀...

사과문

 

 

이건 좀 긴 버전이네... 아마도 이걸 작성하고 난후에 수정된 글이 위의 짧은 버전인거 같음.

비꼬는 말이 아니라 역시 캐내디언은 캐내디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나고 자란 누군가 였다면 첫번째 글에서 최종 사과문으로 넘어가는 기간이 보다 짧았을거라는 거죠. 일부 '찌질'한 네티즌들의 펌질로 인해 당신의 사과입장은 다양한 퇴고 과정이 생략된 버전까지 무차별하게 나돌아 다니게 되었지만 그로 인해 당신의 입장이 그저 폭발적인 반응으로 인한 그저'반응'일 뿐이라는 생각도 갖게 합니다. 내용이 쏙 빠진 그저 '내가 죽일놈' 버전의 사과문은 오히려 생명력이 없어 보이구요. 물론 받아들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최종본을 당신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문의 사과문을 본 입장에서는) 당신이 흥분한 이유를 밖에서만 찾고 있다는 점에는 변화가 없어 보이네요. 글을 가져온 블로그의 퍼온 댓글의 내용을 보자면  당신 스스로가 언어로 혹은 인종으로 차별하고 있는 틀에 너무나도 잘 적응하고 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무한 도전의 '영어 못하는 동양인'이 되었던거고 쌍욕이 튀어 나왔던 겁니다. 시청자의 입장이었다고 포장하고 싶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가진 정도의 감정의 농도를 공감한 시청자는 그렇게 많지 않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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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기사 1.

신인(무명이라 해야 하나?) 가수에게 주말 황금시간대의 예능프로그램 고정이란 어떤 의미 일까? 흔히 말하는 '뜨기 위한 동아줄?' 몰카에서 나온 한 청년의 눈물은 동료로서, 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의 인간적인 정이 끊어지게 될 상황으로 인한 아쉬움이 아니라, '이 짓'으로 밥을 벌어먹고 살기 위한 한 방편을 잃어 버릴 수 도 있다는 절박함의 그것이었다. 더구나 전문 예능인으로서가 아니라 가수로서.  그 상실의 감정이 어떤 의미인지 알거 같다는 (전문 예능인)선배들의 눈물은 역설적으로 노래를 하는 사람이건 배우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이건 결국 돈을 벌려면 똑같은 예능을 해야 한다는 현실의 절절한 대변이었다.

기사2.

 '돈벌레'가 결국 GG를 쳤다. (어쩔꺼야... 피해 가야지.) 돈벌레 보다는 경솔한 놈 쪽이 그래도 좀 낫다니 참고해 주기로 하자.
 
 이번 소동(?)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무도를 등에업고~ 어쩌고 저쩌고'식의 주장이었다. 그냥 발매했으면 눈길도 못끌었을 따위의 노래를 가지고 인기 예능의 유명세를 탄 후 냉큼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 했다는 말이다. 애초에 곡비도 안받고 무료봉사를 한 측면의 기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남은것은 땡볕아래 몸개그를 펼친 구성원들과 '대인배'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무한도전'타이틀 뿐이었다. '프로 작곡가들의 재능+ 다양한 장르의 프로 가수들의 유명세(및 무대 매너)+ <무한도전>이라는 최고 예능의 타이틀 및 기부의미의 부여'라는 조화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무한도전'만이 온전히 독식하는 분위기다.  

 어쩌면 이런 반응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미 '돈이 벌리는' 재능은 '웃기는'재능밖에는 남지 않다시피 한 실정이고,  노래를 하거나 연기를 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좋은 노래를 선보여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줘서 이름을 날리기 보다 일단 웃기는 재능을 선보여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이 가능해진 상황이니 말이다. 심지어는 가수니 연기자니 하는 타이틀은 말그대로 타이틀일 뿐이고 생존을 위해서는 웃기지 않고는 못배길 상황이 지금이 아닌가 싶다. 가수라고 하면 조용필이나 서태지 급, 연기자라고 하면 설경구나 송강호 급이 아닌 다음에야 웃겨야 먹고 살 수 있게 된것이다. 오히려 '안웃기고도'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뉴스거리가 될 정도로 그 자체로 '음악성'이니 '연기자의 혼'따위가 있다는 말과 등가로 쓰이기도 한다.  

'웃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은 하나의 성향으로서가 아니라 상품의 수준이나 완성도로서 받아들여지다 시피 하는 현실에서는 웃기는 재능의 창구인 예능 프로그램은 말그대로 먹고 살 구멍이요, 웃기는 재능이란 것은 어쩌면 노래나 연기의 재능보다도 더 우위의 재능이다. 돈으로 가치를 교환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잘 팔리고 있는게 웃기는 재능이니까. 당연하게도 그런 예능의 장에서는 그 출연자가 가수로서, 연기자로서 어떤 성과를 냈는지, 재능을 보였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지가 조용필이나 송강호 급이 아닌 다음에야 웃기지 않으면 그걸로 끝. 오직 웃기는 것으로 그 사람의 가치가 매겨진다. 여성이라면 자고 일어난 팅팅 불은 '민 낯'공개는 기본에 남성이라면 한 겨울 계곡입수에 유행어던 캐릭터건 예능 선수들 사이에서 겉절이로 구색정도는 맞출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성실하고 호감가는 '가수', '연기자'가 된다.


8,90년대 김태원을 일으켜 세워준  한 방은 '사랑할 수록'이었으나, 그로부터 이십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 아직 신인티를 못벗은 무명(에 가까운...ㅈㅅ;) 음악인 김정모에게 한방은 '오빠 밴드'인 상황. 대략 이정도. 





그래서 '니들과는 다르다'는 포지셔닝으로 1인자의 '위엄'을 보이는 무한도전의 이번 '돈벌레'사건의 대처가 아쉽다. 쉽게 말해 '갑'으로서의 스스로의 위치를 너무나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 '을'의 곤경에 무신경하게까지 보이는 반응이 너무나 '다르지 않아'보인다는 것이다. 핵심은 수익금이라는 것이 한정판인 앨범의 수익으로 한정 지은것인지, 음원 수익까지 다 포함한다면 그 기간을 얼마동안으로 잡은것인지, 그 합의는 어느 수준까지 진행된 사항인지등등의 단순 사실 확인 작업만으로 확실해질 사항에 대해서 조차 제작진에게서 직접적인 답변이 없었다는 데에 있다. '저작권'까지 다 기부하기로 했다는 한 참가자의 글은 전 참여자가 합의했다는 건지, 그렇다면 리믹스 앨범의 발매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인데 어떻게 윤종신은 임의로 발매를 할 수 있었는지등등 의문점만 더 생긴다.  마진없는 프로그램이라는 윤종신의 농이 농이 아니었단 말인가? 정말 무한도전은 윤종신이 마진이 없는 뜨내기 출연자라 공식 입장 한번 보이지 않은걸까? 비난의 화살이 정확한 계약관계조차도 설명하고 있지 않은 자신들에게는 오지 않으니 이전의 '정준하 소란 사건'등에서 보였던 빛의 속도와 같은 대응을 보이지 않고 신혼여행간 메인 피디 핑계나 대고 있단 말인가? 좋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님은 좋은일 하자고 참여했던 윤종신이 곤욕을 치루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공익을 목적으로 별도의 수익사업을 벌이고 있는 주체가 그 계약 관계를 똑 떨어지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애초에 좋은 일을 아니한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실은 같은데 누구는 무려 저작권까지 내 놓고, 누구는 임의로 리믹스 앨범을 내 놓고;; 이런식의 주먹구구가 어디있나. 좋은 목적으로 시작했다고는 하나 적지 않은 돈이 오가는 프로젝트다. 계산 관계가 이래서야 원;;;;;





대체가능한 깍두기 정도로 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음악인의 재능에 대한 인식과 함께, 제작진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 의지가 안보였다는 데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선의를 갖고 진행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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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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