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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 탓일 수도 있으나 나에겐 아직도 3D영화 기술이 별 쓸모없는 기술이다. 스크린의 영상을 현실의 환경으로 하자는 암묵적인 동의하에서는 약간의 상상력만으로 스크린의 영상에서 현실감을 느낄 수 있는데, 오히려 3D화면이 구현되는 속에서는 입체적인 영상들이 스크린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잘려나가는 모습이 더 두드러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지럽게 왔다갔다하는 효과들 때문에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을 하지 못할 정도라 3D로 본 영화들은 하나같이 별로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더구나 굳이 이 신기술이 필요한 이야기들인가 하는 대목에서라면 거의 대부분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가 내 평가이고, 그 효과가 적절히 사용되었는가 그렇지 못했는가의 평가를 유보하고서라면 그나마 '라이프 오브 파이' 정도가 그런 기술이 사용될 법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각주:1] 나머지는 '와, 이런 것도 가능해~ 대단하지?' 라며 별 효용도 없는 재주를 갖고 허세를 부리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심지어 티켓값도 더 비싸게 받아가면서.


 내가 '왜?'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유추하기 어려운건 3D기술 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왜 지금에 와서 이 고전이지? 왜 이렇게 화려한 장면들이 쓰였지? (나도 2D로 봤고 대부분 상영관도 그런것 같지만) 왜 이 이야기를 가지고 3D 영화를 만들었지?라는 질문에 대해선 누구도 속 시원하게 대답을 해주지 못할것 같다. 마치 고전 소설을 영화로 옮겨놓는것 만으로도 대단히 칭찬받을만한 일을 한것으로 생각하는양, 영화적인 측면에서의 이야기 흐름은 영 밍숭맹숭하다. 이 지점에선 내가 원작 소설을 읽어본 일이 없다는걸 먼저 얘기하는게 좋을것 같은데, 사전 지식없이 이 영화를 접하게 되면 누구라도 개츠비의 과거나 그를 둘러싼 냉혹하고도 미스테리한 환경을 그저 회상이나 전화통화[각주:2]로 다루고 있는 선택이 어떤 이유에 의해서인지 굉장히 궁금해질 것 같다. 사실 제일 재미있는 부분은 이 부분일 텐데 말이다. 몸값 비싼 배우들을 데려다 어마어마한 미술,세트등을 가지고 정작 가장 흥미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어물쩡 넘어가 버리다니. 뭘 어쨌다는 설명을 제대로 받지 못하니 개츠비가 한 여자를 위해 '여기'까지 왔다는 부분에 대해서 감흥을 느낄 수가 없잖아. 


정작 눈에 띈 것은 인물들의 대사를 종종 스크린에 글자로 표현해내는 독특한 시도. 이것도 긍정적인 의미로 눈에 띄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강 강사가 꼭 외우라고 밑줄 쳐주는 효과같이 느껴졌다. '이 주옥같은 글귀를 보고도 감동을 느끼지 않는다는건 있을 수 없는일이야', '감동을 느껴,이 글귀 하나로 감동을 느끼라고' 라며 강요라도 하는 듯한 느낌. 정작 영화적으로 이야기에 감동을 줄 수 있는 효과를 마련하는데는 소홀하면서, 이미 '권위'를 가진 원작에 기대 감동받을 것을 강요하는 상황이라니;;; 자본,탐욕,배신 같은 주제들을 마치 책읽어 주듯이 그저 나열할 뿐이니 도대체가 왜 이 뻑적지근한 기획이 이루어진 것인지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앞서 들었던 3D영화의 예처럼 오히려 제한된 상황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활자 매체의 경우라면 그 제한된 정보 만으로 머릿속에서 훨씬 방대한 양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지만, 많은 것이 풍부한 영상 매체의 경우라면 비슷 수준의 제한적인 정보가 훨씬더 허술하게 느껴지는 부작용을 낳을 수 도 있는것인데 말이다.


간혹 그렇게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는 헐리우드에서 어떻게 이런 영화가 나왔나 싶은 영화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 리스트에 한 작품이 더 늘었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그나마 이 영화는 2D로만 봤다는건 아이러니. [본문으로]
  2. 그 마저도 통화내용은 관객이 전해 들을 수도 없는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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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이 버전 포스터가 젤 맘에 듬)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는 참 독특한 부분이 있다. 그를 거장이라거나 독보적인 아티스트등으로 부르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이지만, 누구 보다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어떤 그 무엇. 과거에 자신이 좋아했던 영화나 장르들을 숨기지 않고 자신의 작품속에 드러내 보이는 그는 과거에 존재했던 어떤 대상을 비트는데서 자기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 보이는 듯 하다. 음악으로 치자면 작곡가라기 보다 믹싱 디제이의 유형이랄까. 소스가 되는 원곡이 없다면 디제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누구라도 나서서 그런식의 음악 믹싱이 쉽거나 하찮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거다. 더구나 타란티노 정도로 맛깔나게 소스를 믹싱해 내는 고수 앞에서는. 


그런 타란티노의 시선이 이번에 미친 곳은 서부극이다. 그 와중에 등장하는 정의의 사도는 한창 팔려가는 중이었던 흑인 노예 '장고(제이미 폭스)', 그를 사슬에서 풀어내어 남부 최고의 총잡이가 될 기회를 주는 사람은 독일인 '닥터 슐츠(크리스토프 왈츠)'다. 그 다운 참 절묘한 조합. 타란티노의 영화와 어울리지 않게 줄곧 착한 인물인 슐츠지만 애초에 대단한 휴머니스트여서 장고를 풀어주는 건 아니다. 현상금 사냥꾼인 슐츠가 쫒고있던 범죄자의 얼굴을 알아내기 위해 장고를 사들이는게 인연의 시작이 되어, 동반자로서 장고를 받아들이고 장고의 아내를 구하는 일에까지 동참하게 된거다. 사실 여기까지 설명을 하고 보면 이야기의 진행에서 더 할 말은 없어진다. 다들 기대 하듯이 영화는 화끈한 피칠갑이 이어지며 2D 화면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쾌락의 최대치를 향해 내달린다. 그 결전의 장이 될 '캘빈 캔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캔디 랜드로.


 아쉬운 것은 타란티노의 근작들에 비해 인물들의 면면이 평면적이라는 점과 이야기의 흐름이 장고 한사람 위주로만 흘러간다는 점이다. 오렌의 성장 과정을 보면서 그녀의 악독함을 생생히 간직한채로 블랙 맘바와의 결전을 생동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쇼샤나가 탈출하는 장면을 보며 독일군 장교 한스의 소름끼치는 잔인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각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 하나가 되는 타란티노 특유의 화법이 주는 재미는 생략되고 말았다. 거기다 시간의 흐름을 뒤섞어 묘한 호흡을 만들어 냈던 편집도 시도하지 않아서인지 타란티노의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러닝타임이 좀 길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피칠갑 액션은 이 영화에서도 명불 허전이지만  그 '재기 넘치는 살상극'을 상당히 아끼고 아끼는 터라 재미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다. 주인공의 죽을 고생과 나쁜놈들에 대한 복수의 강도를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관객의 감정선을 주물렀던 이전과 다르게 나쁜놈들이 너무 멍청하게 쓰러진다는 점도 하나의 악재.


다만 여전히 볼만한 구석은 곳곳에 포진한 명 배우들의 연기. 앞서 말했듯 적지 않게 평면적인 인물들이라 큰 임팩트가 있지는 않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리없이 다 소화해 낸 결과물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캔디의 집사인 '스티븐' 역할의 사무엘 잭슨. 마치 일제 시대의 앞잡이 처럼 자신도 흑인이면서 백인인 캔디의 수족이 되어 동족들을 핍박하는데 압장서는 교활한 늙은 집사의 역할에 사무엘 잭슨이 이토록 어울리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불과 몇달 전만해도 수퍼 히어로들을 떡주무르듯이 주물렀던 '쉴드'의 수장이 쇠약해진 몸에 손까지 떨어가며 비굴한 아부의 웃음을 흘리게 되리라고는 차마. 그 와중에도 'Mothxx Fucxxx' 만큼은 찰지게 내 뱉는게 반전이라면 반전.



분명 타란티노 최고의 작품은 아니다. 저번 '바스터즈'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나쁜놈들 X먹이는데 지나치게 심취했던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다만 장르를 갖고 노는 그 특유의 수완은 녹슬지 않았다고 느꼈다. 따지고 보면 서부극의 총잡이 들에게는 충분히 생각할 만한 여유 같은건 없지 않았던가. 나쁜놈이 있고, 쏘아 죽일 뿐. 그 장단에 충분히 즐거웠고 넘치게 짜릿했다.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 보리라.  








#1.어느 인터뷰에선가 이 영화는 서부극이 아니라 '남부극'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남. 

    흰 목화꽃에 붉은 피가 흩뿌려지는 장면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목이 아닐까 싶음.


#2. 믿고 보는 배우 리스트에 '크리스토퍼 왈츠'님이 등재 되었습니다.

     

#3. 이 영화의 원조격인 1966년도 작 장고의 주인공,  프랑코 네로가 출연한다고 함. 

     몰랐는데 여기저기 뒤저보다 알게 된 정보. 

     근데 영화에서 누구였는지 통 기억이 안나니 이거 죄송해서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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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이런 영화 질색이다. 펼쳐 놓은것이 너무나 방대해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 두뇌 용량을 다 할애하는 바람에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영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매트릭스도 1편까지만 있었어야 딱 좋았다고 생각하며 아직까지도 이따금씩 케이블에서 해주는 2편,3편의 내용을 볼 때마다 새롭게 곱씹는다 (케이블의 영화를 볼때마다 새롭게 느낀다는건 생각보다 경제적인 습성이다;;). 그런데 이놈의 것, 그 질색인 영화를 꼭 두번이상은 보게 만들어 놨으니 참 고약한 일이다.




영화깨나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풀어먹을 떡밥을 제공하고 있는 이 영화. 라깡에 프로이트가 난무하는 판에 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과감히 다이,,,ㅎ 아래는 옆에서 슬쩍 슬쩍 훈수 질을 하려는 시도 되겠다.


1. 아키텍처의 힘.
 사실 이 영화의 힘은 설정 자체에 있다. 그래서 상당한 시간을 설정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어떻게 꿈을 공유하는지, 그 꿈속의 물리적인 성격은 어떤지, 어떻게 꿈속에서 생각을 훔치고 혹은 주입하는지 등등. 그리고 나같은 사람은 이 대목에서 부터 과부하가 걸리니 그걸 (대충) 이해하는데만 두번의 관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 만큼 그 설정 자체가 가진 독특함, 신선함이 있다. 예를 들어 꿈속에서는 실제 보다 시간이  빨리 간다던지, 꿈꾸고 있는 사람이 현실에서 느끼는 감각에 따라 꿈속의 물리적 환경이 변화한다던지 하는 디테일은 단순히 영화의 완성도를 위한 디테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맞물려 돌아간다. 특히 (라깡에 프로이트가 난무하는 영화평들이 집중하는 부분인)  의식과 무의식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은 적당히 입맛이 당길만한 지적 호기심을 선사한다. 
 
 이렇게 잘 짜여진 설정안에서의 이야기는 사실 그렇게 위력적이지는 않다. 방대한 사고를 바탕으로 세워졌을 영화적 설정과 적절한 편집을 제외하면 결국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의 구원이 주된 뼈대가 될 터인데 뭐 그리 새로울건 없잖은가. 이야기 자체가 묵직한 위력을 가졌던 '다크 나이트'와 비교하자면 뭔가 아쉬움이 남을 만도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면 감독이 진짜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그 뼈대 (곧, 이야기)를 둘러싼 설정에 있는 것도 같다. '범죄자를 싹 쓸이 한 배트맨의 존재가 조커의 등장을 가능하게 한' 구도와 '의식에 대한 임의의 조작을 공격하는 무의식'의 구도가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고.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특성을 너무나 유효 적절하게 잘 이용하여 영화가 아니었다면 전달될 수 없었을 내용의 장을 설계한 놀란에게 경의를.

2. 바로 이장면, 회전하는 호텔 복도.

Canon | Canon EOS 50D | Manual | Partial | 1/200sec | F/3.2 | 0.00 EV | 70.0mm | ISO-1600 | Off Compulsory | 2009:07:23 15:09:44


매트릭스에서 총알 피하기 신공이 나온 이후로 많은 작품들이 이 방법을 차용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갑자기 슬로우모션이 걸리며 등장인물의 살아 꿈틀대는 근육이나, 찢겨져 나가는 피와 살을 강조하는 방법.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이런 연출 또한 홍콩 무술영화의 과도한 액션이 지겨워 지듯이 식상해 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새로운 시각적 자극이 점차로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이 이내 자극을 주기 위한 자극일 뿐임을 알아채게 된것이다. 물보라가 멋지게 튀는 장면을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이유가 아니라면, 헐벗은 근육남의 몸매를 '강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갑자기 슬로우가 걸려야 하는 이유를 관객들은( 혹 '관객들'이 아니라면 '나'는) 찾지 못하고 있다 .

 이 영화에서는 개인적으로 매트릭스의 총알 피하기 신공 만큼이나 독특한 위치를 차지할 만 하다고 느낀 액션 장면이 나온다. 우주 공간이나 떨어지는 비행기 안이 아닌 '호텔 복도'가 빙글 빙글 도는 장면. 그 호텔 복도는 이내 무중력 상태가 되어 인물들이 허공에서 팔 다리를 휘저으며 서로를 죽고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복도가 빙글 빙글 돌고, 또 무중력 상태가 된 상황을 가정한 액션은 군더더기 없이 실제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데, 더구나 '총알 피하기'와는 다르게 화면상에서 갑자기 비 상식적인 물리적 상황이 연출되는 이유가 너무나 분명하다. 일부러 멋진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설정한 상황이 아니라 꿈 바깥의 물리적인 상황이 꿈 속 세계의 물리적인 환경에 영향을 끼친다는 설정안에서 이루어지는 장면이라 비현실적인 물리적 환경(빙글 빙글 도는 복도, 무중력 상태)이 구현되는 너무나 현실적인 배경(호텔 복도)이 별 무리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 일합 일합을 구성해낸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

 회전하는 복도를 마치 원숭이 처럼, 그러나 길쭉한 팔다리로 수트간지를 뽐내며 '우아하게' 활보한 조셉 고든-래빗에게 갈채를.



여기 부턴 스포일러




4.난 누구? 또 여긴 어디? 아 c발 진짜 꿈?
 
 우리가 조각으로 떼어진 꿈속의 상황을 너무나 리얼하게 느끼는것은 그 꿈속의 공식에 공조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는 영화에 대해서 느끼는 현실감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라면 카페안에 있는 나는  카페까지 오기 이전의 상황들이 역순으로 머리속에 맴돌고 있을 것이나  영화를 볼 때는 카페에 있는 주인공이 집에서 카페까지 오는 세세한 정보들이 생략되어 있더라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보다 중요한 메세지인 영화의 줄거리를 전달 받기 위해 따로 떨어진 상황과 상황 사이가 생략되는 것 쯤은 크게 신경쓰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유추하여 이해하도록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진 채로 영화를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관객은 건물 옥상에서 1분안에 미로 그리기를 하고 있던 장면 이후에 엇비슷한 유럽풍의 카페에 두 인물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지만  어떻게 옥상에서 내려와 길을 건너 카페를 발견한 후 주문을 하고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지는 않는다. 다만 미로 그리기를 하던 옥상의 배경과 과히 튀지 않는 유럽풍의 건물이라는 증거를 통해 멀리 이동한 것은 아니라는 유추를, 여전히 밝은 배경을 통해 시간도 그렇게 많이 흐르지 않았다는 추측을 할 뿐이다. 너무나 자연 스럽게. 그러나 그런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는 한마디. 

'너 카페까지 어떻게 왔지?' 


여기도 스포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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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누구나 한번쯤은 본 경험이 있을 그림(을 구하지 못해 설명으로 대체 한다;;). 컬러감이 없이 흰 바탕에 검은 곡선들이 어지럽게 놓여져 묘한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어찌 보면 뒤쪽을 돌아보고 있는 미녀의 상반신 형상이지만, 어찌 보면 흉측한 마귀할멈 얼굴로 보이기도 하는 그 그림. 그래서 혹자는 미녀가 보이면 긍정적인사람, 마귀가 보이면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조크를 그 그림에 섞기도 했으며, 그와 비슷한 선택을 통해 이른바 심리를 파악한다는 '심리테스트'가 소개팅 장소에서 데면데면 뻘쭘 상황의 치료제로 애용되어 오기도 했다. (심지어 하수상한 사고들이 연달아 터지니 각종 물음에 대한 선택으로 싸이코 패스를 가려낸다는 질문도 있었으나 후에 뻥으로 밝혀지기도..)

아마 이 영화를 보고 난 사람들 중에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반대편 그림’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 혹은 부족한지 곰곰이 따져 보게 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스포따윈 없답니다.-


 연방 보안관 ‘테디 다니엘스’는 오늘 처음 맞이한 동료(라기 보다는 후배) ‘척’과 함께 ‘셔터 아일랜드’라는 곳으로 향한다. 그곳은 정신 병원이자 교도소로 중범죄를 저지른 정신 이상자들이 수감된 곳이다. 그런데 그 곳에서 실종 사건이 발생했다는 거다. 그 섬 자체가 선착장을 빼면 모두 높은 절벽으로 이루어 졌을 뿐 아니라, 실종자가 도망쳤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간에는 이미 그 방문은 굳게 잠겨져 있었고, 건물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쳐야 할 장소에는 비록 카드놀음에 집중하고 있기는 하지만 예닐곱 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다. 거센 파도로 인해 헤엄을 쳐 빠져 나갔더라도 이내 주검이 되어 되돌아 와야만 하는 상황에서 환자 이자 범죄자인 그녀의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너무나 완벽한 방어망을 너무나 완벽하게 뚫어낸 이 사건은...말 그대로 모순이었다. 이제 방법은 하나, 어느 쪽이 가짜였는지를 밝히면 된다. 애초에 완벽한 방어망을 뚫어낼 ‘환자’ 자체가 없었거나, 그 방어망 자체가 사실은 겉으로 드러난 만큼 ‘완벽’하지는 않았다는 식으로...


 

 

 

 

 

 

근대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학교랄까, 교도소, 병원(중에서도 특히 정신 병원)이 현대와 비슷한 그 외양을 갖추며 위치하게 된 맥락을 조금만 더 발전시켜 나간다면, 이내 이 사건은 거대 권력의 개인에 대한 폭력 혹은 억압에 유력한 혐의를 둘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극도 그러한 흐름에 충실하게 따라가기도 하고. 하지만 그 때,누구나 어느 정도는 가질 수밖에 없는 ‘상처’는 거대 권력의 호명에 의해 ‘울타리 바깥의 늑대’가 가지는 특징이 되고 그 순간, 누군가에 의해 ‘늑대로 호명된 자’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괴물(늑대)로 죽을 것인가, 착한 사람(양)으로 살 것인가.’ 바로 ‘테디 다니엘스’가 극에서 요구 받는 것처럼.



Canon | Canon EOS-1D Mark II | Manual | Pattern | 1/80sec | F/2.8 | 0.00 EV | 28.0mm | ISO-800 | Off Compulsory | 2008:03:19 12:26:11






그렇다면,


괴물을 호명하는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 거지?

그 괴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거지?

울타리 안의 저 양들은 모두 착한사람?

혹 그저 탈을 쓴 늑대?

그럼 진짜 양은 몇 마리고 탈 쓴 늑대는 몇 마리?

여기 튕겨져 나온 나는 정말 ‘다른’ 괴물?

아니면 음모에 의해 튕겨져 나온 착한 양?

 






#1.위의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는 분에게.....................................................

더보기


#2. 아무래도 원장보다는 '테디'의 편에서 사건이 이해 되는 나는....;;;;
#3. 원작 책과는 결말 부분이 다르다는 떡밥 발견. 고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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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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