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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다가 합창을 시키면서 갱생을 시켜보자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승철 팀, 엄정화 팀으로 나뉘어서 경쟁을 벌인 뒤, 이긴 팀은 폴란드 합창대회에 나간다는 일종의 당근까지 주어졌다. 그러나 쉽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놓았으니 쉽게 진행이 되지 않을것임은 자명한 일. 도중에 한 아이가 연습 시간에 빠져야겠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연습장을 빠져나가 버린다. 코치 엄정화도 도저히 어찌 해 볼 수 없는 벽 앞에서 멘붕. 프로그램의 작가가 뒤 쫒아가 설득을 해 보다가 역시나 벽에 부딪치자 반 하소연조의 한마디를 뱉는다. "넌, 이걸(합창을) 왜 하는데?"


2. 울릉도 전지 훈련(?)을 간 합창팀. 이 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합숙훈련을 하는 동안 술과 담배가 금지되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제껏 들떳던 감정은 어디론가 싹 사라져버리고 동요하는 아이들. 당연한 수순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담배 및 허용되지 않은 소지품을 걷으려 하지만 역시나 쉽게 따라 줄 아이들이 아니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카메라가 켜져있으니 애들이 쉽게 내놓지 못하는것 아니겠냐는 지적을 한다. 카메라를 끄라는 그 아이와, 끌 수 없다는 엄정화 코치를 비롯한 '어른들'. 왜 끄면 안되냐는 질문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것(담배를 걷는 것)도 방송(촬영)이야, (카메라를 끄는 건) 안돼."



물론 3회차 분량의 방송으로 담기에 실제 촬영기간은 몇 달에 걸칠 정도로 길었고, 당연히 방송으로 나온 편집본만을 보고 가늠하기엔 보이지 않은 수 많은 맥락들이 있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방송 제작진의 편집의 과정을 거친 내용만을 보기에도 이 프로젝트는 적지않게 함량이 떨어져 보인다. 


위에서 든 사례만을 일단 놓고 얘기해 보자면, 일단 선 후 관계는 2번이 먼저, 1번이 그 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는 동일인물. 당연히 묘하게 균열이 일어나는 동일한 맥락이 보이는데, 아주 간단하게는 '권위에 대한 타협 시도와 실패' 정도로 정리 할 수 있겠다. 청소년과 담배는 절대 호응할 수 없는 개체이고 따라서 거기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없으므로 새 출발을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그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게 '어른들'의 입장이었다면, 거기에 대한 아이들의 최소한의 타협 지점이 일단 카메라를 끄고 걷자는 거였다. 종종 폭발해버리곤 하는 아이들의 반응에선 그 순간에 카메라를 끄라고 요구하는 공통된 지점이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있었던거다. 그 속이야 아이들 스스로도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스스로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 결과가 어떻게 될 지를 본능적으로라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게 아닐까라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리 무리한 짐작도 아니지 않은가. 전국 방송에 나갈 모습이 찍히고 있는데 그게 흥분해서 소리나지르고 담배나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라면 세상이 그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들은 그 순간을 부끄럽다던가, 그저 쪽팔리다고 느꼈을 수도, 혹 자신을 향해 쏟아질 비난에 무서웠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자신들이 하고픈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와 그럴 수 없다는 제작진의 의지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제시했을 테지만 그건 여지없이 무시당하곤 했다. 


합창을 잘 해서 유럽에도 갈 수 있다는 당근이 아이들의 목적이라면, 그 당근을 제시한 제작진 쪽에선 그런 아이들의 인생을 담아내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서로의 목적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타협해 나가는게 '동업자'로서의 기본 자세일 텐데, 과연 제멋대로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들보다 제작진이 얼마나 더 나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카메라가 켜진 상태에서 담배를 걷는 것이 아이들의 '갱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에 그렇게나 신경전을 벌였는지가 궁금하단 소리다. 그건 갱생이나 아이들을 위한 선도의 의미라기 보다 '그림이 살아야 된다'는 자신들의 목적이 우선이었기에 쉽게 물러서지 못하는 부분이었지 않겠는가. 반복하지만 선도나 호의의 의미이기 보다 서로의 목적과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이었음에도 왜 어른들은 당연히 아이들을 윽박지를 수 있다고 여겼던걸까? 물론 아이들의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카메라를 끄고 걷었다고 마법처럼 아이들이 모두 담배를 순순히 내놓았을거라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담배는 안돼'라는 사회의 규율을 어겼기에 그런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대화도 없다는 식의 일방적인 자세가 아이들이 자의에 의해 담배를 내놓을 기회를 빼앗아버렸다는 부분은 제작진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적어도 이 문제아들을 그저 배제하고 밀어냈던 어른들과는 다르게 접근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선 안되었던 거다. 


1번 사례에서도 이제 부터 진짜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그날에 성형 시술 예약이 되어있다며 연습에서 미리 빠지겠다는 아이를 본다면 그 아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거다. 나도 그랬다. 아마도 방송을 봤을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차며 아이의 인성을 탓했겠지. 하지만 방송 제작진들 마저도 그 옆에서서 혀나 끌끌차고 있어서야 될말인가? 왜 미리 잡혀있던 연습시간에 시술 날짜를 예약했는지,자신들이 왜 이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마디도 없이 '학생이 필러를? 그것도 이 중요한 합창 연습날에?'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수도 없이 타협을 시도하는 아이 앞에서 안된다는 말밖에는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엇나가는 아이보다 더 답답했다. 학생에게 필러는 전혀 필요없는 시술이라는 생각에만 매여있으니 심지어 그 핑계로 연습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빠지겠다는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라곤 '왜 필러를?'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정해진 연습시간이 30여분 밖에는 남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완벽하게 다 준비가 끝날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들이라도 꾸준히 대는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소통의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과연 왜 (중요하지도 않은) 필러를? 이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 한마디에 어린 나이에 잘난 외모로 밖에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컴플렉스가 물흐르듯이 술술 나오기라도 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꺼냈을까? 결국엔 '너희들을 모아서 합창을 하려고 했던 우리의 의도와 너의 지금 욕구는 동시에 충족되기 어려운 것이다, 너의 욕구가 처음 합창을 하려했던 마음가짐 보다 큰 것이라면 더이상 너와 함께 할 수 없다, 진지하게 둘을 생각해 보고 그래도 결심이 바뀌지 않는다면 너와는 오늘까지다'라고 말했어야 한다. 하지만 빤히 정해진 결론을 입밖으로 내는것 조차 어른들은 아이에게 미루고 말았다. 이로서 어른들은 끝까지 아이의 손을 잡으려 안달 복달했으나, 못된 아이는 그 손을 뿌리치고 떠나버렸다는 그림이 완성 되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슨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쯤 되었다라고 말하려는건 아니다. 단지 솔직하지 못한 어른들 (방송 제작진)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 역시나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의 인생에 끼어든거지만, 세상이 버린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 열린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는 자아 도취에 빠져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물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에 그렇다. 둘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기회를 걷어차는 배은망덕한 어린양으로만 접근하니 애는 쓰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을 수 밖에. 그저 합창이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이니 토달지 말고 무조건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좋은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거라는 폭력이나 다름없어 보이고, '못된 아이들인 너네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우리는 겁내 쿨하고 착하고 멋진 사람 뿌잉뿌잉'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아이들의 실체를 살피는데 소흘하니 그 아이들의 행적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수 많은 아이들에 대해서도 무신경해서 일진 미화논란도 벌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제작진 역시나 아이들 보다 자신이 우선이었고, 그걸 인정하지 못했기에 그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그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까지는 시선이 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이 프로젝트는 최종회 방송만을 남겨 두고 있다. 그 방송에서 이 부조리들이 모두 해소 된다고 하더라도 제작진의 실수가 덮어지는건 아니다. 방송 사이의 며칠 동안 '오해'는 해소되지 않고 지속될 것이며 그 사이에도 합창단과 과거 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아이들 모두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제작진은 어떻게 배상할것인가? 그게 가능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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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난 스무살이 되면서 새삼 놀라웠던 점이 하나 있다. 내가 스무살이 되도록 그 많은 향단이 방자의 존재, 아니 그 후손들의 존재에 대해 어떤 의문도 품고 있지 않았었다는 점 말이다. 분명 어느 순간에는 양반이 있고 '쌍것들'이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누구나 '어디 어디 ㅇ씨에 무슨 무슨 파 몇 대손이요' 하는 말을 하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아니, 누가 쌍것들을 다 잡아 죽인일도 없는데 어떻게 양반들 후손이 이렇게나 많아진 것이며 그렇게 불가사의한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왜 의문을 갖고 살지 않는걸까? 하지만 비슷한 불가사의는 비교적 근래의 일에 있어서도 접할 수 있었다. 이른바 '386세대'의 정체 말이다. 지금나이 30대(에서 40대),80년대 학번의, 60년대 출생자들이 뭔가 엄청난 것을 이루었다는 의미로 묶어서 말하곤 하는데 가만, 80년대엔 대학생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나이 30대에 60년대에 출생했으면서 '80년대 학번은 아니었던' 사람들은 그 당시에 뭘 하고 있었을까? 우리가 마치 그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던양 신경도 안쓰는 그들은 말이다.


 

                                                            두고 두고 봐도 이 포스터는 대박 ㅋ



주인공 강대오는 60년대 출생자이면서 80년대 학번은 아닌 중국집 배달원이다. 그리고 배달 갔다가 본 여학생에게 반해 고백이라도 해 볼 양으로 접근하다가 무려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이라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마치 포레스트 검프가 우직한 달음박질로 미국의 현대사를 가로지르 듯, 우리의 강대오도 별 생각없이 뚜벅 뚜벅 한국 현대사에서 잊지 못할 한 지점을 향해 걸어 들어 간다. 그러고는 마치 검프가 그저 뛰었을 뿐인데 전쟁 영웅이 되었던 것처럼, 그저 청춘의 한 때를 사랑으로 불살랐을 뿐인데 학생운동의 정점에 선 지도자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영화가 주는 일차적인 재미는 운동권 대학생과 중국집 배달원이라는 두 부류의 세계가 충돌하는 이 지점이다. 어디 출신이냐는 말에 '...'를 얼버무리다 '중앙대' 학생이 되어 버린 강대오는 오해를 벗을 위기(?)마다 미국인 교수와의 인연으로 얻어 들은 몇 마디의 영어 문장으로 영문학과 학생이 되어 상황을 헤쳐 나간다. 대오가 이소룡 영화를 보며 익힌 무공(;;)은 피는 뜨거우나 책상머리에서 공부만한 백면서생들의 전투력을 향상 시키는데 일조를 하고, 도무지 알아듣지 못할 것 같은 신 식민지니 파쇼니 하는 말들과 함께 운동권 대학생의 세계를 접한 대오를 비롯한 배달원 세계의 사람들은 세상의 불건전함에 눈을 뜨게 된다. 


먼 훗날 어느 뚱뚱한 가수가 나와 전경과 학생이 서로 열광하고 싶은 마음 같다며 부르 짖게 되는 것처럼, 이전에 사귀던 누군가가 전경 방패를 들고 서 있고 그 상대가 반대편에 서서 각목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 가능 한 것 처럼, 80년대의 어느날 미국 문화원을 점령한 것은 단지 대학생들 뿐만이 아니었다. 물론 실제 미국 문화원 점거 사태에 중국집 배달원들이 참여했다는 차원의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라, 그들이 거기에 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대학생이라는 사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그들이 청춘이었던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는 말이다. 대학생 뿐 아니라, 청춘도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비록 가상의 설정일 뿐이지만 그렇기에 중국집 배달원도 그 자리에 함께 서서 혁명을 (사랑에 대한 혁명이던 월차에 대한 혁명이던, 혹은 민.주.주.의. 에 대한 혁명이던...) 외칠 수 있었다. 그 들도 청춘이었기에. 


그러나 지금에 와서 '꼰대'가 된 그 들 386 (내지는 486) 세대는 학번 구분으로 그 시절 젊고도 뜨거웠던 열의를 한정지어 (본의던 아니던) 가로채 독식함으로서 물리적으로 대학생이 아니며 물리적으로 어리지 않았던 수 많은 청춘의 존재를 순식간에 증발시켜 버렸다. 거기에 자신들의 존재를 증발시킨 후 온갖 부조리에 침묵하는 지금의 20대에게 책임을 물어 개새끼라는 낙인을 찍고 있기도 하다.[각주:1] 그렇기에 80년대의 어느 지점에 미국 문화원에 모였던 젊은이들을 살펴봐야할 필요가 생기는 거다. 젊었고, 사랑에 괴로워 했고, 한 때 가졌던 높은 꿈이 무너지는것만 같아 한 없이 흔들렸던 그 청춘들을 말이다. 단지 과거의 어느 한때를 추억 할 '꼰대'들 뿐만이 아니라, 불가능한 꿈을 꾸는 리얼리스트를 박물관 화석처럼 여기는 젊은이들 뿐 아니라, 먹고사니즘에 충실할 뿐이라며 그 시절을 쌩쌩 지나쳐 갔던 '배달의 기수'들 역시나. 


거기다 참고 봐줘야 할 정도로 영화가 교조적이거나 전개가 툭툭 끊어지는것도 아니다. 특히 오프닝 크레딧에 대한 정성은 한국 영화에서 쉽게 보기 힘든 완성도를 보여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해 준다. 코미디가 그렇게 대박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곳곳에 위치한 아기자기한 장치들은 멜로적 감성의 대 폭발을 위해 착실하게 잘 배치되어 있다. 특히 눈썰미가 뛰어난 사람이라면 문화원 외벽에 붙여놓은 글자들이 두어 차례의 소동 후에 어떤 메세지로 남는지 꼭 확인해 보길 추천.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물론 '열의'의 독식이 부적절 한 것 만큼이나, 낙인을 찍는것에 대한 책임을 전체의 386에게만 묻는것도 부적절 하다고는 생각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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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이 사건(?)은 여러 층위로 접근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119상황실 근무자가 전화를 받을 때 '관등성명'을 대야한다, 임의로 장난전화로 판단하면 안된다가 지금 논란의 핵심으로 보인다. 특히 이전에 경기도 소방서에서 임의로 장난전화로 판단한 결과 한 노인이 도움을 받지 못하고 동사한 사건까지 있었다고 하니 임의로 판단해 버리는 경우의 위험성이 생각보다 크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관등성명의 경우에는 그런 규정 자체가 없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으니 어느쪽이 맞는 말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관등성명과 임의 판단만이 이 사건의 전부는 아니다. 긴급한 상황에만 걸도록 되어있는 119에 전화를 해서 긴급하지도 않는 내용의 대화를 수 분동안 이어간 도지사의 '개념'이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다.

1.관등성명.
 일단 관등성명을 대도록 규정이 되어있다고 합의해 보자. 그런데 도지사가 전화를 딱 걸어보니 관등성명을 대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나? 차후에 확인해서 직원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그런 규정이 있는데 왜 지키지 않느냐며 그 자리에서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일단 긴급한 용무로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왜? 그 회선은 아주 긴급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하도록 만들어진 회선이기 때문에. 하룻밤 자고 일어나서 징계를 내린다고 해도 그 직원 어디 안간다. 도지사가 아랫사람 교육시키는게 그렇게도 위급한 일이었나?

2.장난 전화.
 여기서 우스운 점은 그럼 장난전화가 아닌것을 소방서 직원이 알았다고 하더라도 뭐가 어떻게 달라지느냐 하는점. '특수한 엠뷸란스'를 이용할 수 있느냐는 '문의'를 위해 전화를 했다고 하던데, 어떤 시설물을 이 사안에 투입할 것인가 말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신고한 사람의 '신분'이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오히려 그 집단의 수장이 쪽팔려해야할 일이 아닐까? '이러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 내가 알기로 이러 이러한 시설이 있다고 하던데 그걸 이용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이 문의에 자기가 도지사 인게 왜 중요하냐고. 전화를 받은 두 직원은 이 '도지사'가 무엇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도 모르고 전화를 끊게 되었다. 긴급한 상황에 걸게 되어있는 회선으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긴급한 용무가 자기가 도지사라는 말뿐인데 이걸 장난전화로 받아들일 수 밖에.




가만히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두 직원의 징계를 철회한 것이 무슨 대단한 시혜라는 투의 발언들이 속속 튀어나오고 있다. 자신의 잘못도 있느니 어쩌느니 하는걸 보면...
 

 잘못도 있는게 아니라 당신 잘못이에요. 징계할 건덕지가 있는데 좌천까지는 과한거 같아서 봐주는게 아니라 징계할 건덕지가 되느냐 안되느냐와는 별도로 위급하지 않은 상황 때문에 위급한 상황에만 쓰도록 되어있는 회선을 수 분 동안 이용한것에 대한 사과를 소방서 직원과 경기도민, 나아가서 국민들한테 무릎꿇고 빌어야 할 일이라구요.


경기도청에는 인물이 이렇게 없나요? 누가 이런말은 안해주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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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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