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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1/23)방영 된 남자의 자격 '남자, 그리고 형'편에서는 고등 학생들의 여러가지 고민을 들어주는 든든한 형이 되어 보는 컨셉의 방송이 진행 되었다. 그런데 그 중 이윤석의 상담 부분에 대한 작다면 작은(?) 문제 제기가 기사화 되었다. 이어지는 글은 그 문제 제기에 대해서 3일 정도를 쉬엄쉬엄 생각해 본 결과물이다. 


1. 이윤석의 상담이 좀 아쉬운 이유는...

 만약 내가 이 학생 앞에 앉은 상황이었다면 일단은 고민의 실체에 대한 질문을 더 했을 것 같다. 

 '그래, 친구들끼리 껴안고 때로 볼에 뽀뽀도 자주하는데 문제가 되는게 뭐니? 넌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 친구들, 혹 그 친구들과 너를 보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나 시선이 걱정이 되는거니? 아니면 너 스스로도 남자들끼리 그런 스킨십이 지나치다고 생각이 드는데 때때로 너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게 걱정이 되는거니?'
 
학생의 고민에 대한 답은 고민의 실체가 더 명확해진 다음에야 좀더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오던 행동들이 고민이 된다는건 그런 행동들에 대한 타인의 시선이나 반응에 대한 염려라거나 스스로의 이성과 감정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것에 대한 걱정일 텐데,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다른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의 시선이 문제라면 어떻게 타협 할 건지 혹 이겨낼건지가 가장 중요한 맥락이겠고, 후자라면 이윤석의 상담 정도라면 썩 괜찮았다고 본다. 물론 대화중에 남자가 좋은것과 그냥 불편하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은 반반이다, 그래도 여자가 더 좋다라는 말을 하긴 했지만 혹 그런 언급이 생전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의 고민을 얘기해야 하는 사춘기 소년의 주저함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생각 해 본다면 학생의 감정이 좀 더 동성애 쪽에 가까울 가능성에 대한 조언도 언급이 되었어야 하지 않은가 싶다. 정말 자신의 동성애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방송 녹화에서 털어놓는다면 그건 곧 공중파에서의 커밍아웃에 다름아니기 때문에 이 학생이 실제로 동성애적 성향을 갖었다 하더라도 방송된 화면 이상으로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는 못했을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윤석은 잠시 흘러지나가는 감정이라는 식의 언급만을 했기 때문에 썩 모나지는 않았지만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만약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고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이는 그에대한 조언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므로 이윤석의 조언이 한계를 띈데는 자신의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한 그 학생에게 책임이 있는것이고, 학생에게 책임을 전가 하기에는 다수에게 공개가 되는 방송의 녹화중이었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문제가 되는 거라고 본다.

그러나 이윤석의 상담이나 제작진의 자막 보다도 이 학생의 고민이 방송을 타는 시작 부분에서의 방청객의 웃음소리와 수근 수근대는 소리가 정작 문제다. '남자가 가끔 예뻐 보여요'라는 고민에 대해서 우습게 생각하는 반응들이 웃음소리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전달이 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자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성애자체가 우습게 취급되는 것에 대한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더구나 별 특별한 목적도 없는 방청객의 현장음을 굳이 쓰지 않았더라도 좋았을 텐데, 그 웃음 소리와 수근 수근 대는 소리로 이미 이 소년의 고민은 웃음거리라는 전제로 시청자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2. 그럼에도 이송희일 감독의 지적이 불편한 이유는...
 
 이 부분 역시도 학생의 고민의 실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학생이 커밍아웃에 가까운 입장을 보인 상태에서도 이윤석의 상담이 '시간이 약이다'라는 식으로 나왔다면 그건 분명하게 폭력일테다. 그러나 내가 방송만을 보고 느끼기에는 혼란스러움 자체가  학생의 고민거리였고, 이윤석은 그 혼란스러움에 대한 조언을 해 준것이다. ('동성애'라는 단어의 정의에 따라 달라 질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이윤석의 상담을 받은 학생을 '동성애를 고민하는 한 학생'으로 보고 이에 대한 이윤석의 상담을 '폭력적'이라고 보는것에는 무리가 따른다고 본다. 혹 어떤 한계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방송에서 드러난 학생의 행동들만을 가지고 그 행동의 이유를 '동성애'때문이라고, 동성애를 고민하는 거라고 하는건 상당부분 자의적인 해석이 아닐까? 그렇다면 전제부터가 잘못된 중언부언이 될 수도 있는거다. 더불어 '순수한(?)'고민을 가지고 상담을 했던 학생에 대한 폭력일 수도 있는 것이고.

  많은 딸 들은 아버지를 첫 남편감으로 여기기도 하고, 나 역시도 초딩 때 일년에 한 두번 보기도 어려운 사촌 누나에게 이성에 가까운 감정을 느낀 기억이 난다. 잘 생각해보면 누구나 어렸을 적의 이런 기억들 한두가지 정도는 가지고 있을 테다. 그렇다고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 전부가 '근친혼에 대한 고민'을 경험 한것은 아니지 않은가. '나 아빠랑 결혼 할 꺼야' 하는 꼬맹이를 두고 근친혼의 유전적,법적 문제에 대한 강론을 펼쳐놓아야 하나? 물론 이 사례의 학생과 고민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말하고 다니는 꼬맹이 딸내미들과 비교선상에 놓이는게 부자연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맥락은 과히 다르지 않다고 본다. 지금 이 학생에게 필요한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자기 자신의 성향이 어떤지에 대한 확신이며, 혹여 정말 도움이 될 조언은 그 이후에라야 가능하다. 지금은 그 확신을 가질 방법이 필요하고 그 방법은(고민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가 동반 된) 시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들 중에도 그런애들이 있었으며 지금은 애낳고 잘 살고 있다는 이윤석의 덧붙임도 이 과정에서 불쑥 튀어나온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문제도 큰 고난없이 해결 될 수 있어' 라는 식의 하나의 지름길을 가르쳐 준것. 마치 바로 전의 학생에게 정 풀리지 않는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를 하고 다른 부분에서 점수를 더 올릴생각을 하란 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생각해 보라, 정규 교육과정에 들어간 단락이라는 것은 어떤 이유에 의해서건 학생들이 습득해야만 하는 지식이라는 의미인데 최대한 노력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아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 지언정 해보다가 안되면 깨끗이 포기해 버리라니, 이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이 조언을 옳고 그름을 나누어 옳음의 범주에 넣기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발등의 불 때문에 쩔쩔 매는 사람에 대한 조언이라면 도움이 될법도 한 조언인 거다. 과연 이런 조언을 한 이윤석을, 그렇게 공부 하겠다는 학생을 욕할수 있을까? 옳음을 실천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들의 잘못을 꾸짖기란 쉽지 않다. 그 정도의 정도를 벗어난 흠결없이 산다는게 지극히도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더 좋다는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살 것에 대한 걱정,염려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고민에 접근 했다는 전제아래) 이윤석이 과거에 경험했던 '그런애들'에 대한 언급도 이에 가깝다. 혼란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누구나 혼란을 겪을 수 있고, 혼란을 겪는다고 다 동성애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그런 혼란을 겪고도 정상적인 삶을 사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니 혼란 자체를 너무 두려워 하지 마라 라는 식의. 물론 두려움 없이 맞이한 혼란의 결과로 자신이 동성애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더라도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해줬더라면 아주 '옳은' 행동을 한것이겠지. 그러나 그 결과로 동성애자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키는 것이 혼란 자체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일일까? 친밀감을 가지고 접근한 이 소년이 좀더 편안한 길을 갔으면 하는 마음에서 '~조심하는 방향으로 가자'라고 했다고 볼 여지는 별로 없는걸까?

더구나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도 없는 학생에게 동성애자로의 선택에 대한 조언을 방송에서 대놓고 해야 한다는건 이윤석이 아주 뜨거운 주제에 있어서 '투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제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윤석은 혹 비겁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성애자 진영'과 '동성애자 진영' 사이를 잘 피해가며 방관자적 위치를 고수 했을 뿐이다. 어떤 주제에 있어서도 극과 극은 소수일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은 어중간하게 그 충돌을 피하려 한다. 그런데 왜 이윤석은 어느 한쪽의 편에 서서 그에 따르는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나? 결국 대세가 어떻게 이루어 지느냐는 어느 진영이 중간층을 자신의 세력으로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 '동성애자 진영'에서는 이윤석이 이번 기회에 적극적으로 동성애자 진영에 유리한 활약을 해줬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윤석이 그 진영으로 부터 비난을 들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조금 냉정하게 봤을 때 그건 자신들의 몫이므로.






#1. 동영상을 첨부하고 싶지만 여러 여건상;;  대신 kbs의 다시보기는 무료. 회원 가입만 되어있다면 아무 문제 없이 다시 보기로 이 부분의 영상을 살펴 볼 수 있다. '남자 그리고 형'편의 약 49분40초 정도부터 이 부분의 시작이다. 
 
#2. 이송희일 감독의 트위터. 이에 대한 몇개의 글이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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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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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라는 번듯한 직장에다 딸아이를 가진 가정의 가장이었다가 극의 마지막에는 '게이 무기수' 가 되는 '스티븐 러셀(짐 캐리)'. 하지만 엄밀히 말해 경찰이자 '올바른' 사람이었던 순간 이전부터 편법 이용에 도통하고 남자를 좋아했으니 그 성품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를 모두 드러내 보이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었을 뿐. 그랬던 스티븐의 인생의 물줄기는 뒤통수를 내리 치는 듯한 충격(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뒤통수 정도가 아니라 목숨을 잃을 뻔한)과 함께 찾아온 '진짜' 삶을 살아야 겠다는 깨달음으로 인해 전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죽을 뻔한 사고를 겪게 되면 인생이 달라보인다고 하던가.  스티븐은 실화가 아니었다면 정말 맥락이 없는 장치라고 혹평받을만한 뜬금없는 교통 사고로 죽을 뻔한 위험을 겪고 나서, 더 이상은 자신과 주변 사람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부인에게 커밍아웃을 하기에 이른다. 가정을 꾸려 오면서도 그의 '파트너'는 끊이지 않고 있었고, 이제 더 이상은 한번뿐인 인생을 속고 속이지 않고 싶다는 거다. 뭐 다른 의미로 '사기'는 쭉 치게 되지만 적어도 그 자신은 속이지 않게 되는 스티븐. 그러나 그에 따른 '댓가'도 적지 않은 것이어서 멋진 게이로 살려다가 사기꾼 신세가 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는 그는 감옥에서 운명의 상대 '필립 모리스'를 만나게 된다. 

영화 홍보 과정에서는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의 게이 버젼 정도로 소개가 되면서 탈옥 장면들이 많이 활용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사실 영화 전체를 보면 스티븐의 재기 넘치는(;;) 탈옥 수법은 예고편에서 활용되는 장면들 이상의 재미를 주지는 않는다. 색다른 감상을 불러 일으키는 대목이라면 그 탈옥의 이유가 사랑하는 이 '필립 모리스'와 함께 하기 위해서라는 정도의 장치가 될테다. 거기에 원작 소설에서는 그것도 13일의 금요일에만 탈옥을 했다고 하니 가히 탈옥의 마에스트로 라고 할 만하다 (참고로 필립 모리스는 13일의 금요일에 태어났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스티븐의 가장 '큰 건'은 그러나 여러 번에 걸친 '탈출'이 아니라 '들어가기'였다. 학벌 딸려, 경력 딸려, 가진 거라곤 비상한 잔머리 밖에 없는데 덜컥 보험회사의 중역으로 취직을 한다. 어떻게? 신분 보장인의 신분을 위장하여 서포팅을 해주니 대단한 인재로 알고 모셔 간 것. 그런데 엄청난 인재들이 득실득실한 회사안에서 그의 정체는 탄로 나지 않는다. 스티븐이 회사안의 눈먼 돈을 과도하게 빼돌리며 티를 내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르고 지나 갔을 수도 있을 터. 더구나 그의 '입성'에는 법원도 그다지 높은 장벽은 아니어서 회사 입사 이전에 자신을 변호사로 알고있는 필립의 지인의 변호를 맡아 이리 저리 둘러대다 보니 덜컥 승소를 하기에 이르른다. 

 이 블로그 에서는  기독교 가정의 가장->게이, 법을 수호하는 경찰-> 범죄자 로의 흐름에 집중했는데 이를 테면 주인공 스티븐의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비주류로의 이행이 눈에 띈다는 거다. 미국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기독교적 가치, 법원, 기업 논리등이 얼마나 우스운 처지가 될 수 있는지를 스티븐이라는 '광대'는 너무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극이 실화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강조는 그의 황당 무계한 범죄행각의 대담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의 근간이 병들어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장치로서 유효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실제로 미국의 기업논리 (특히나 스티븐이 몸담았던 금융권)는 민영 의료보험과 부동산 거품등의 문제로 불거져 미국 본토는 물론 전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도 하고. 

 영화에 대한 이런 짐작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만들어 주는 극 후반부의 법정 장면은 그래서 비극이지만 묘한 쾌감을 안겨준다. 마치 희극의 주인공이 비극 속에서 웃음을 선사하듯이.  






#1.  환자로의 변신(?)을 위한 짐 캐리의 노력이 마케팅에 활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채로웠다. 그만큼 다른 알맹이에 자신이 있었을 수도, 혹 코미디와 어울리지 않을 감동코드라서 제외가 되었을 수도.

#2.이완 맥그리거. 진짜 게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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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는 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말이다. 다만 그 '사람'에 누구를 끼워 줄것인가가 문제가 되는거지. 걸핏하면 타국의 인권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채색되어 왔는가를 담담하지만 힘있게 보여주는 영화가, '밀크(Milk)'다.




 (특히나) 정치인의 전기 영화는 재미가 없다. 아니, 재미가 없다는 표현보다는 태생적으로 허점을 많이 갖고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몇 백 몇 천 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 아우라가 쉽게 침범할 수 없을 정도가 된 '위인'의 경지에 다다르지 않은 다음에야 의견대립이 그 주가 되는 정치인의 인생사는 그 반대 측의 입장에 서서 봤을 때는 '미화'로 느껴 질 테고,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왜곡'하고 있다 느낄 수도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당대의, 그리고 그 후의 지지자들이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 서의 캐릭터를 묘사하느냐, 최대한 그 인물 자체로서 묘사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 흐름이 딱딱해지거나 생략이 많아지는 경우, 너무 평범해서 특별하게 봐줄 거리가 없어지는 경우로 새버릴 여지가 많다.


‘밀크’는 그런 면에서 보자면 줄타기를 나쁘지 않게 해 냈다고 본다. 물론 ‘하비 밀크’라는 인물 자체가 가진 이야기 거리로서의 매력이 크기는 했지만. 거기에 사실 하비 밀크라는 인물보다는 감독인 구스 반 산트와 하비 밀크 역을 맡은 배우 숀 펜의 유명세가 (적어도 나에게는)먼저 다가오는 지라 ‘실화’라는 점은 이야기의 몰입에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 말 그대로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그래서 그 시작은 우리도, 나도 살고 싶다는 그것부터였다. 어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라 당시의 미국은 게이라는 이유로 직업을 갖지 못하고, 폭력을 당하며, 게이를 죽인 범인은 경찰도 두 팔 걷고 찾아 나서지 않았다. 그런 세상에서 40년을 살아온 하비 밀크는 어느날 문득 찾아온 '자괴감+ 허탈함+α'로 인해 지난 삶을 통해 이루어낸 적응을 뒤로 하고 동부와 서부의 거리만큼이나 다른 삶을 새롭게 시작하게 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정처인의 전기 영화에서 다룰 법한 ‘정치인의 이야기’들. 수많은 낙선과, 지쳐 나가떨어지는 동료와, 그러나 계속되는 도전과, 드디어 무대로 올라섰을 때의 감동과, 본격 정치무대에서의 관철을 위한 노력과, 그리고 드라마틱한 최후.




역시나 전기영화에서는 그 주인공을 맡은 배우의 연기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수의 객관적인 호평을 이끌어 냈던 숀 펜의 하비 밀크는 역시나 대단 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이전에 실제의 하비 밀크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황이니 그가 얼마나 하비 밀크를 효과적으로 표현해 냈는지를 평가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인상적이었던 것은 실제의 ‘하비 밀크’가 그랬을 것이라 짐작 되듯이 영화 속의 하비 밀크도 ‘게이’ 같았다는 것. 하비 밀크는 게이처럼 말하고, 웃고, 걷고, 행동했다. 수많은 낙선의 과정에서도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저버리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신뢰감을 주는 정치인’ 이미지를 위해 거짓으로 연기를 하지 않았으며, 정치무대에 등장하고서도 엘리베이터로 쥐죽은 듯 이 조용하게 다니지 말고, 쫄바지를 입고 당당하게 게이처럼 계단을 걸어 오르내리라며 ‘동료’를 격려했다. 그 시작이 ‘나도 여기 있소’였기에 끝까지 ‘나’임을 포기하지 말자는 당당한 표현이었다. 그렇게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내디뎠다. 이는 영화 속에서도 다르지 않은 것이 영화 속의 ‘게이 같은’ 몸짓은 코믹적인 요소로서 활용될 뿐, 실제의 등장인물이 게이이지만 코믹한 캐릭터가 아니라면 그 인물의 ‘게이 같은’몸짓은 이내 생략되고는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게이 같은 몸짓 속에 단순한 웃음이 아닌 진심이 담겨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메시지 전달에 있을 수 있는 혼선의 위험성을 기꺼이 감수하고 조금은 더 게이가 익숙해지도록 도왔다. 하비 밀크가 목숨을 걸어가면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게이 대변자 이미지를 위해 시위대를 적절하게 활용한 정치인, 시 의회에서의 자신의 기득권을 향상에 도움을 줄 동료 의원과의 연대를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는 포기할 수 도 있었던 정치인이 모두 하비 밀크의 모습이었다.




뜬금없이 한참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배철수 아저씨의 한마디로 글을 맺을까 한다.
‘나이 40이 넘어서도 이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면 안 되는 거 에요. 왜냐하면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자기가 이 세상이 이렇게 되는데 기여한 측면도 적지 않거든요.’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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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기사  를 보고 궁금한것 세가지.

1. T 수영복을 입으면 변태인가?
2. 게이가 변태인가?
3. 홍석천은 게이일 뿐인가?

기사에서 본 김구라의 발언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비하라면 세가지 항목 모두에 yes라는 답이 나와야 한다. 즉 T 형 수영복을 입는 남자를 홍석천에게 비유했으니 T자 수영복이나 입는 변태(딱히 맞아 떨어지는 표현이 없어 변태라고 표현 하겠습니다.)를 게이에 빗대었다는 논리다. 발언을 보면 이영은은 'T자 수영복을 입는 남자를 봤는데 신기하고 놀랐다'고 했고 김구라는 '석천이 아니야?' '가끔 그럴지도 몰라'라고 했다. 여기까지가 발언의 전부다.

그러나 T 수영복을 입을 지도 모른다는 발언 자체가 비하라고 한다면 이미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은 T 형 수영복에 취향을 가진 사람에 대한 심각한 비하를 하고 있는 것이다. 크게 상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본인은 한번도 T형 수영복을 입은 사람을 본적이 없고, 그래서 처음 직접 그러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면 이영은씨처럼 신기하고 놀라울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눈살을 찌뿌리게 될 수도. 그러나 최소한 드러내놓고 T 형 수영복을 입는것이 변태라고, 누가 T형 수영복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발언자체가 비하가 될 정도로 T형 수영복을 입는것이 비상식적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저 패션일 뿐이지 않는가. 양복바지에 흰양말이나 때 꼬질꼬질 낀 어그 부츠나 기타 등등 받아들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서 꼴불견인 패션은 얼마던지 존재한다.그리고 조금 낯설은 모양의 민망한 수영복이 이 범주에 들어갈 뿐이고.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고 놀림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열변을 토하시면서 정작 패션의 차이일 뿐인 수영복에 대한 취향에 대해서는 나의 취향에 적합하지 않으니 틀린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신지가 궁금해진다. 나는 그저 내 취향에 따라 수영복을 선택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는 이런 수영복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거론 자체가 비하가 된다면 나는, 내 취향은 뭐가 되는거지?

그리고 한가지 덧붙일 말. '홍석천' 하면 게이밖에 안떠오르나? 한때는 (뭐 지금은 예전 시트콤 시절만큼은 아니니까;;) 잘나갔던 연예인에, 성공한 요식 사업가에, 얼마전에 100분 토론에 나와서 말하는 거 보니까 참 논리정연하고 말도 잘하는 홍석천이라는 인물의 한가지 특성일 뿐이다. 그의 성적 취향은. 그런데 사람들은 그의 성적 취향을 홍석천이라는 인물과 등가로 놓고 생각한다. 그러니 홍석천이라는 인물에 대한 거론이 나왔을때 반사적으로 게이를 떠올린거지. 왜 이제 한물(석천씨에게는 죄송;;)간 연예인에 대한 비하나 요식 사업가에 대한 비하가 아니라 게이에 대한 비하로 들린단 말인가. 여기에는 한가지 양념이 더 작용하게 되는데 T형 수영복 = 변태 = 게이 의 등식이 그것이다. T형 수영복을 입는 사람은 변태이고 남자끼리 좋아하는 게이도 변태인데 드러 내놓고 변태라고 하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니니까 말로 하지 않는것이 암묵적인 금기인데 김구라는 이걸 깼다. 게이에게 대놓고 변태라고 한거지. 사실 T형 수영복을 입는 사람에 대해서 변태라고 생각한건 자신들이었는데 말이다. 지금 흥분하고 있는 사람들은 홍석천을 구성하고 있는 특성중에 가장 변태와 비슷한 항목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의 판단에서 변태와 가장 유사한 특징, 홍석천의 성적 취향을.

성적 소수자가 사회의 소수자가 된다는건 반대로 그들이 사회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하나의 특징에 불과한 성적 취향으로 인해 그 사람의 전체가 특징지어져 다수로 부터 분리되었다는 말. 홍석천이 소수자인가? 사업 대박나서 돈잘버는 사업가다. 대한민국 상위 몇%의 소수 집단에 들어서 소수자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판단하기에 우리 사회는 그런 사람들 보고 소수자라고 하지 않는다. 딱히 돈잘벌고 잘사니 소수자로 부르면 안된다기 보다 그도 똑같은 사람이라는것, 사람들과 관계맺고, 노력하고, 지지고 볶는 똑같은 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너네는 약해, 작아, 너네를 건드리는건 나쁜짓이야 하는건 배려가 아니라 구분 짓기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구분짓기로 인해 떨궈져 나간다는 것 이상가는 폭력이 있을까 싶다. 왜 신정환에게 하듯 마음놓고 농담도 못한단 말인가. 나는 차라리 얼마 전까지도 김국진의 이혼경력에 대해 무슨 유행어 밀듯이 떠들어 댔던게 아직도 이해 불가다. 이미 새 출발해서 애낳고 잘 살고 있는 김국진씨의 전처도 같이 관여된 문제에 대해서 입만 열면 떠들어 댔던게 어떻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 질 수 있었는지. 김국진씨야 그러면서 적응도 하고 웃길수 있는 소재가 되었다고 쳐도 김국진씨의 전처는 무슨 콩고물이 떨어지기에 자신의 과거 사생활이 전국 방송에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팔리는걸 봐줘야 한단 말인가. 그런데 홍석천에 대한 저정도 조크가 '비하'라니. 파도 너무 파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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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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