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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 SCH-B900 | Aperture priority | Center-weighted average | 1/60sec | F/2.8 | 3.6mm | ISO-100 | Flash did not fire | 2012:12:22 16:07:49

                                                            <화살표 끝이 광주 우체국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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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뒤에서 나타난 주인공을 바라보는 사람들>



한 20분 전에 도착했을 땐 뭔가 fresh한 에너지가 심장에서 막 뿜어져 나오는것만 같았지.


그런데 점점...

날은 추워서 발은 시려오지,

시내 한복판에 사람 제일 많이 왔다갔다하는 사거리를 긴 줄이 가로막으니까 서로 엉키고 짜증나지,

어떤 양xx가 눈 부라리고 시비 걸지,

정작 줄 선 사람만 찍고 주인공이랑은 시간 관계상 사진도 못찍었지,

사진 못찍는다는 사실에 벙쪄서 포옹 할 때 감정 몰입도 못했지,


아, 내가 왜 저길...

난 지구력이 부족해서 로맨티스트는 못되보고 죽을꺼야 아마;;; 












그래도 어쨌던,

교수님. 

고맙습니다.


(신문은 아버지가 보고 계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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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5

쥐콩만한 영감 2012.11.07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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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5일. 전남대학교 실내 체육관.

대선 예비후보 안철수씨가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대선 예비 후보에게 단일화 협상을 위한 만남을 제안 하다.


과연 역사는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후보 사퇴 기자회견 전문








2012년 12월 6일 <문재인, 안철수 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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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양방언(Ryo Kunihi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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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012년. 심지어 5월. 아직까지 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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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1.와, 연기가 무서울 정도야;;;
 
2. 메릴 스트립이 아니었다면 누가 '마가렛 대처'를 연기 할 수 있었을까?

3. 나름 영화팬의 입장에서는 '마가렛 대처'를 주시고 그를 연기 할 '메릴 스트립'을 함께 내려 주심에 감사 할 따름.
    (물론 마가렛 대처의 시대에 살지 않게 해주신 약간의 행운에도 감사.) 

4. 그 반면에 이보희 씨에게 '난폭한 로맨스'의 '이모' 역할을 지금에서야 맡겨드린 점에 있어서는 죄송할 따름.
    
5. 왜 한국의 중년 배우에게는 '마가렛 대처 같은'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걸까?
   시집살이 시키는 시어머니나, 자식에게 목매다는 '생선머리 좋아하는' 엄마 역할이나 그런거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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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예를 들어, '야구'는 같지 않다.

야구선수의 야구와, 관중의 야구는 다르다. (프로)야구선수에게 야구란 생활 내지는 생존의 장이다. 매년 신인으로 입단하는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전체 대상자들중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입단 했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그 신인들에게 자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얼마전까지 땀을 흘렸던 선수들의 자리가 비워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초고교급이라느니 대형 신인이라느니 관심을 받던 선수라도 언제든 내침을 당할 수 있다. 바로 직전, 내 자리의 선배가 그렇게 된것처럼. 반면, 관중에게 야구란 유희 혹은 소비의 장이다.  혹은 청년들의 멋들어진 몸매를, 혹은 실제적인 폭력이 상당부분 필터링 된 '전투'를, 혹은 다이나믹한 운동능력으로 보여주는 열정들을, 관중은 돈을 내고 즐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지불의 양이 많아 질 수록, 유희의 결과물은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진다. 돈을 주고 연결한 케이블 채널의 중간 광고들을 다 봐주며 중계를 볼 때, 예매 경쟁을 뚫고 그라운드에 보다 가까운 자리를 (비싸게 지불하고) 차지해 앉을때, 유니폼이며 모자며 각종 악세사리들을 사 모을때, 그저 기사로 경기 결과만 확인 할 때보다 더 자신의 일이 된것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 생존의 장, 유희(및 소비)의 장이라는 특성을 배제하고서는 (프로)야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반면에 어느 한 측면으로 야구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맞은편의 '장'은 때로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흥겨운 유희의 과정에 야구 선수들의 처연한 사연이 모두 고려 될 수는 없는 일이며, 그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이유로 승부 내지는 성적에만 연연하는 것은 프로야구라는 더 큰 판의 생존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일일수도 있다. 결국은 그저 유희로 소비되는 장에 자신의 생존을 내던진, 남의 생존을 유희로서 소비하는 사람들이 가져야할 업보라면 업보랄 수도 있는 그 '무엇'.


 그러나 나는 '관용'과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되는 그 '무엇'을 무시하고 자기 기준에서 파악한것만을 맹신한체 상대를 지워버림으로서 '방해'에서 벗어나려는 경향이 생겨나는 것을 느낀다. 현미경으로나 천체 망원경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그런 일들이 경향적으로 많아지고 있다는 걸 볼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 커뮤니티를 좀 돌아다닌다 싶은 사람이라면 이 경향을 쉽게 이해하고 있을거다. 단순히 팀(혹은 어떤 무리)을 응원하는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것이 아니라, 상대편을 깎아 내리면서 자신들이 좀더 우월해 지는 느낌을 즐긴다는 뭐 그런 느낌. 일전에도 비슷한 의미의 글을 쓴적이 있지만 이런 경향은 이제 단순히 꼴마초 스포츠찌질이들 사이에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심심치 않게'가 아니라 이제는 '자주'벌어지고 있는 유명인에 대한 공격들은 한결같이 도덕성이니, 원칙이니 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함으로 포장이 되어 나타나고 있고, 심지어 그런 공격은 유명인에게만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일반인을 표적삼아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이자 촉매가 되는 것이 온라인 네트워크다. 앞서 야구팬과 야구 선수에 대해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이 온라인 네트워크라는 물건은 어떤 마법을 부려 누군가의 생활을 다른 누군가에게 유희거리로 던져주기도 하고 누군가의 지나가는 생각없는 장난을 어떤이의 생활속에 상처가 되도록 펼쳐놓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모두 온라인 네트워크가 없던 시절에는 불가능하던 것들이다. (아주 극소수의 예외 상황을 제외하면) 누군가의 유희는 그저 그만큼의 영향력을 가질 뿐이었다. 그저 재미로 수로를 파고 큰 궁궐을 짓는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노동력과 심지어는 생명까지 소모했던) 어떤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그 사람이 대단한 권력을 거머쥔 극 소수의 사람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그런 대단한 권력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한 쟁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얻은 권력을 그저 재미를 위해 소모하는 사람은 그 권력을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그러니 누군가의 생활이자, 생존의 장을 유희로서 즐긴다는건 불가능에 가까웠고 누군가의 생활이며 생존을 대한다는건 그만큼의 진지함을 필요로 했다. 누군가의 생존을 하찮게 여긴다는건 자신의 생존에도 해로웠기에.



 그런데 오늘날, 어떤 이들은 '악플'로 상처를 받아 목숨을 내 던질 정도가 되었다 하는 반면에, 그 정의 내리기도 애매한 '악플'은 타자만 칠 수 있으면 누구라도 달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누군가의 생명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권력은 대단히 얻기에 어려운 것이기도 했고, 쉬이 실현시키기도 어려운 것이었으나, 지금은 타자만 칠 수 있으면 누구라도  그 권력을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둘다 틀렸다. 악플은 목숨을 끊게 만들 정도로 위험한 것이라거나, 그저 장난으로 한줄 쓸 뿐이라는 말은.

1. 악플로 살인을 할 수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NO. 내가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특정인에 대한 저주를 댓글로 단다고 해서 그 특정인이 목숨을 잃게 될까? 아니면 특정인이 목숨을 잃을 생각이 들때까지 악플을 달려면 도대체 악플을 얼마나 많이 달아야 할까?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악플과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은 상당히 간접적인 연관만이 있다는걸 알게 된다. 흉기로 직접적인 위해를 가한것과 악플을 같은 레벨로 봐서는 곤란하다는 말이다. 

2. 리플은 그냥 심심풀이 장난일까?
 이것 역시나 답은 NO다. 어떤 유명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치자. 그저 '저 사람 마음에 안드는데?'라는 생각만 가졌다가 그저 지나칠 수도, 혼잣말로 "저 사람 영 마음에 안드는데?'라는 말을 할 수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나 그 xx 진짜 마음에 안들더라."라고 말을 할 수도, 직접 그 유명인을 찾아가 면전에 대고 "당신 참 마음에 안들어, 이렇게 저렇게 해줄 수 없어?' 라고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반응들은 순서에 비례해서 해당 유명인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준다. 더불어 많은 품이들기도 하고. 고통을 많이 안겨주려면 그만큼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반응들 사이에 아주 묘수 하나가 숨어 있으니 악플을 다는 것이 그것이다. 글을 한줄 달게됨으로 해서 이 세상에 그 '유명인'에 대한 모욕이 내 뱉어지게 됨을 직관적으로 확인 할 수 있다. 거기에 추천을 한다던지 서로 댓글로 의사교환을 한다던지하는 과정은 그 인식(?)을 더 공고하게 해 준다. 그러나 이 과정에 드는 품이란게 별게 없다. 인터넷이 연결된 환경에 타자를 칠줄아는 사람이라면 별 노력없이 댓글 한줄을 달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품이 아예 들지 않는것은 또 아니다. 마찬가지로 악의가 전혀 없다면 그런 노력이 동반되지도 않는다. 그저 장난으로 쓴 댓글일지 몰라도 악의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는건 말이 안된다는 뜻이다.


뭐야 그럼, 지금까지 난 말장난을 하고 있었던 건가? 사람을 죽일만큼 위험한것도 아니고 그저 심심풀이 장난같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면. '말장난'을 이어 가자면, 그러나 둘다가 맞기도 하다.  



 악플 세례를 당하는 유명인 당사자는 어지간한 잘못으로는 쉽게 들어보지도 못할 온갖 욕설이며 저주가 여기에나 저기에나 널리 퍼져있다는 것이 충격적이다. 혹여 그 잘못이라는것이 말못할 오해로 인한 것이거나, 이미 해명을 할 수 있을만큼 다 했는데도 '찍혔다'는 이유로 줄창 욕을 먹는 경우에는 그 억울함이 배가되어 더욱 미칠 지경이 된다. 집착하면 할 수록 온세상이 다 나에게 욕을 하고 있는것만 같은 상황에서, 그러나 마땅히 저항할 실체가 눈앞에 보이는 것도 아니다. 악질적인 댓글러들의 경우에는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으나, 그 과정이 복잡한것은 둘째 치고라도 감히 여론을 통제하려 한다는 식의 역풍을 맞게 된다면 욕먹는 분위기가 더 장기화 될수도 있다. 그야말로 외통수다. 

악플을 다는 악플러는 그러나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댓글을 다는 것이 아니다. 혹 본인은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그러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으나, 실상은 그러고 있다는 착각을 편리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떠한 일들로 인해 일종의 '분노'를 해소하고 싶은 욕망이 쌓여가지만 그 해소의 과정에서 역풍을 맞아 손해를 볼생각은 들지 않는 상황에서 적당한 표적을 향해 악플을 달게 되는 거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자신이 그저 화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좀더 그럴싸한 이유로 인해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 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역시나 편리한 착각일 뿐. 실제로는 '옥주현'이나 '타블로'의 개별 사건이 중요한게 아니라 자신이 '정의'를 위해 대단히 기여하고 있다는 감정자체가 중요하다. 옥주현이나 타블로는 그것을 위한 일종의 소모품일 뿐이고, 실제 그렇게 되는것 보다 그렇게 되는것처럼 보이는 것이 중요한거다. 그래서 엇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크게 거론조차 되지 않지만, 누구는 욕을 먹는다. 애초에 '정의'는 상관없었던 거고 '정의를 수호하는것 같은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중요하니, 부정에 대해서 모두 바로잡으려 목소리를 낼 필요는 없다. 운나쁘게 타겟이 된 '옥주현'이나 '타블로'에 대해서 그 감정을 소비하는것만으로도 얼추 그 목적은 달성된다.

그러니 악플 세례를 당하고 있는 유명인의 입장에서 댓글들의 악의를 모두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자신에 대해 쏟아지는 비난이라고 받아들인다면 그건 명백한 오해인거다. 별 노력없이 저지르는 화풀이를 정의수호로 오해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물론 그런 당사자가 된다면 냉정하게 그 저주들을 분석해 낼 여지가 적다는것을 짐작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저주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단서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간극이 생기는 이유는 뭘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유명인 본인에게 직접적으로 의사 표현을 한것이 아니고, 온갖 저주에 충격을 받은 유명인은 사람들에게 직접 그 의사 표현을 전달받은 것이 아니라 인터넷 게시판의 글을 통해서 접했기 때문이다. 단지 교묘한 혼란이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지 자신의 존재를 모두 드러내고 말을 거는것과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과는 같지 않다. 악플을 다는 사람도 게시판에 글을 썼고, 악플로 상처를 받는 사람도 게시판을 보고 상처를 받으니 사실 이 게시판의 글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그 피해를 줄일 수도 있다. 외국어를 해석해 이해하는 것처럼, 복어의 독성분을 제거하고 먹게 되는것처럼, 인터넷 게시판의 리플도 영리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성의를 갖지 않고 덤벼드는 모든 의견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진심을 다해 그 의미를 받아들이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 역시나 홍보나 교육이 필요하다. 악플을 다는것이 인격을 살해하는것과 같다는 식으로 공론화를 시켜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뒤따르는 책임없이 무분별하게 표현되고 있는 글들에 대해 필터링을 해서 받아들일줄 알아야한다는 것 역시나 공론화 시키고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개인 적으로 느끼기에 '악플'이라는 소통 부재 상황의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보다 그저 반항없이 책임을 지울 수 있는 대상을 활용하는데 더 집중하는 듯한 이른바 '제도권'의 모습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름없는 아이디 나부랭이를 걸어놓고 '인용'하는 기사들. 그 책임은 당연히 그 아이디 나부랭이를 걸고 인터넷에 글을 쓴 사람에게 있는 거고 언론사나 기자는 단지 '인용'했을 뿐이라는 뻔뻔함. 학교에 과제를 제출할 때도 기본은 그 내용이 자신의 생각인지, 인용했다면 어디서 인용한건지를 제대로 밝히는 일이다. 심지어 공직 청문회 과정에서 자신의 경력중에 그런 문제를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소홀이 다룬 사실이 드러난 사람은 아주 중대한 결격사유를 갖추게 되는거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 돈을 벌어가는 사람들이 책임을 묻기 어려운 댓글, 그 중에서도 유독 자극적이어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글들만 추려내 써재끼는 걸 보면 참 가관이다, 가관. 그나마 아이디 나부랭이라도 써주는 쪽은 나은 쪽이긴 하나 '무슨 무슨 사이트'의 '무슨 무슨 아이디'가 어느 한 인격체의 책임을 지울 수 있을 만큼의 '실체'일까? 오히려 이런 일은 또 다른 '창작'이라고 봐야 한다. 이 세상에 이미 나와있던 색깔을 혼합해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이미 거의 모든 의견이 난무하고 있는 인터넷의 글중에 몇 가지가 추려졌다는 건 추리는 사람의 의도가 원래 댓글 단이의 의도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다는 걸 의미한다. 이 과정을 통해 인터넷이라는 비 제도권 영역의 말들이 제도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거다. 

그럼에도 인터넷의 댓글들이 사람을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징징댄다. 분명 책임을 질 만한 사람들의 잘못으로 일이 그르쳐진 부분이 있는데도, 온통 책임을 지우기 어려울 만한 대상으로만 그 원망의 포커스를 맞춘다. 왜? 책임을 지울 만한 사람들은 그 책임을 지는데 대한 저항도 할 만하기 때문에. 저항하는 쪽의 잘못을 밝혀낸다는건 골치아프고도 복잡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기에 유별나게 저항하지 못할 '악플러' 혹은 '네티즌'이라는 실체조차 불분명한 대상을 호명해 죽도록 패주는 거다. 그런데 이 온라인 네트워크의 마법은 애초의 개인의 장난 비슷한 감정속에 숨은 별것 없는 악의를 한대 뭉쳐서 거대한 분노로 만든것과 같이, 세상의 지엄한 꾸짖음도 갈기갈기 찢어 그저 예비군 훈련장의 현역 조교의 발언 쯤으로 만들어 개인에게 전달해 버린다. 한마디로 개 무시해도 별 손해 볼게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어떤 문제해결의 판에 '승부조작'이 일어나게 되는 상황. 서로 손해보는 이도 없고,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쓴다는 액션은 있고, 결국 죽은 사람만 불쌍하고, 다음날엔 또 악플달고, 악플 보고 기사쓰고, 또 죽어나가고...



악플 문제에 대해 접근하려 할 때는 조심스러워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 자신의 입장이 문제 해결을 통해 더이상 희생되는 이가 없기를 바라는 입장인지, 그저 주어진 책임을 다했다는 감정을 위한 남의 다리 긁기인지를 항상 생각해야한다는것이 그것이다. 악플 다는 사람은 다 백수에요, 사회 부적응자에요, 인격 파탄자에요... 라고 신나게 저주를 퍼붓고 나면 그 사람들이 뜨악해서 악플을 안달게 될까? 이건 마치 범죄자의 현장 검증 자리에 나와 '신나게' 욕설을 퍼붓는 감정과도 같은 거다. 자기 이웃이 당하기 전에 치안 상황에 대한 건의며 요구를 했을 수도 있는거고, 한번 더 들여다 보고 관심을 가졌을 수도 있는거고,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을 했을 수도 있는거다. 혹여 그런 노력이 있었더라도 그 노력이 범죄가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할 만큼 부족했기에 범죄가 발생하는거고... 그러나 그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온전히 그 책임을 범죄자 한사람에게 뒤집어 씌우고 목소리를 높여 욕설을 퍼붓음으로해서 부채감을 해소하는 것. 악플에 대한 저항을 악플러에게 악플을 달면서 하는게 이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반응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1. 이 글은 최근 한 방송인의 사망과 뉴스 몇 가지를 보고 든 생각을 바탕으로 적어본 글임. 그런데 글의 시의성이 몇 달이고 몇 년이 지나서도 훼손되지 않을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2.이전에 댓글과 관련한 글을 써봤음. 뭘 좀 만지다가 결론 부분은 날아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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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응룡 감독도 김봉연도, 김성한도, 선동렬도 자신들이 광주 망월동에 잠든 이들을 위해 야구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실은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들은 오로지 운동만 했을 뿐, 민주주의를 위해 야구를 한 적은 없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연고팀 팬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최고의 선물을 거의 매해 안겨주었을 뿐이다. 『야구의 추억』을 쓴 김은식 작가는 해태가 당대 다른 팀들보다 더 많이 우승을 했던 이유는 이기고 싶다는 열망이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는데, 아마도 그들과 함께 호흡하던 팬들의 열망이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8,90년대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해태 타이거즈 

뉴스의 항간에 담긴 의미를 읽을 때, 비로소 사회가 보인다고 한다. 이를테면, 1980년 5월 22일자 신문을 읽으면,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전모를 읽어내기란 어렵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84년에 한국을 찾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왜 하필이면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천주교 103위 성인 시성식 이후에 광주를 찾았는지, 항간을 읽어내는 눈이 어두우면 그 의미를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우리는 그 때 그 방문이 4년 전에 있었던 참혹했던 일에 대한 위로의 차원이었음을 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누구도 그것이 그 의미였음을 발설하지 못했고, 오로지 기사의 항간으로만 짐작할 따름이다. 혹은 눈 먼자들은 그냥 우연히 광주로 간 줄 알았을 것이다. 

가장 한이 많았던 지역이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한이 경기와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차단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도 모른다. 1980년에 집권한 전두환부터 1988년에 집권한 노태우 정권까지를 군사 정부로 한정하고, 이들의 시기에 광주를 대표하는 해태는 어떤 성적을 거뒀는지 추적하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우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기고자 하는 열망은 그런 우연을 창조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우연을 최대한 막으려는 어떤 시도에 대한 의문은 기록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5월 18일에 광주에서는 프로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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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517n05261?mid=s1000






광주항쟁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광주항쟁은 남한에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우연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 그들이 죽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미팅을 하고 섹스를 할 수 있었던 까닭은 지극히 단순했다. 1980년 5월 광주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서울이나 부산, 평택이나 강릉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주에 있었더라면 그들도 죽을 수 있었다. 그가 어떤 사람이던 - 김연수,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 - 

그 우연한 존재에 야구는 포함되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었다.야구는 그 비극적인 사건에서 예외일까, 아니면 야구만의 방식으로 그 비극적인 사건을 담아두었을까. 


미디어이닝 | 해태의 우승은 음모론보다는 우연이었다


KIA의 우승으로 해태팬들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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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슨, 원더버드 1집. 정품. 씨디.
2011년에 와서 원더버드 1집의 빳빳한 비닐 포장을 뜯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될줄이야.
이번기회를 통해 알게된 dawamusic.net
앞으로도 쭉 지켜보겠음 --* 

아직 물량이 남아 있을 수도. 원하는 사람들은 선착순 ㄱㄱㄱ.

(아래는 기분좋아서 긁어온... 사랑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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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CH-B850 | Average | +0.56 EV | 2010:10:21 14:28:58
                                                                (헐... 디카 가져 갈껄...)
                                 







"예전엔 기관의 검열이 영화를 감시했지만, 지금은 자본의 검열이 영화판을 좌지 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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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틀안의 대화나 연기가 아니라 전혀 꾸밈이 없는 
진짜 일상의 날 것의 대화를 보여주는 홍상수식의 영화에 매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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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은 인간의 모든 동기는 ''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
나는 공동체에 대한 기여(?), 희생도 중요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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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10월 21일 광주극장.
 영화 '옥희의 영화' 관객과의 대화 중
배우 문성근씨의 몇 마디. 











SAMSUNG | SHW-M110S | Normal program | Average | 1/85sec | F/2.6 | 0.00 EV | 3.8mm | ISO-50 | No flash function | 2010:10:21 15:13:26

이 사진은 문성근씨의 트위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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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CH-B850 | Average | +0.56 EV | 2010:09:17 14:17:33




쉬지 않고 막 굴러다니던 녀석들. 너무 바쁜거 같아서 왜 굴러다니는 지는 못 물어 봤음.











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CH-B850 | Average | +0.56 EV | 2010:09:17 14:34:17

 




SAMSUNG Electronics | Anycall SCH-B850 | Average | +0.56 EV | 2010:09:17 14:34:30

가상의 국가의 여권과 화폐. 위 아더 월드 뭐 그런 비슷한 의미(라고 생각함).




























죽은 어떤 아저씨의 이미지. 이미지만 있는게 아니라 실제로 화장 후의 약간의 유해가 작은 상자에 담겨 있음. 재밌는건 화면 마지막 쯤의 네모는 아직 안죽은 아저씨가 미리 찜해놓은 자리라는 거. '묘자리를 미리 써놓은 거네요?'하는 썰렁한 농담에 안내해주는 언니(;;)가 빵긋 호응해 줘서 뿌듯. 







#1. 옛 전남 도청 자리에 시커먼 컨테이너 박스가 한 무더기 있는 곳으로 가면 됌. 길을 건너서 가기에는 애매한 위치라 지하 상가를 통해 가는 것이 적절. 표지판이 친절하게 알려 줄 것임.

#2. 이토이의 전시는  11월 7일 까지. 사진 이외에 재미있는 작품들이 더 있음. 'pain station(?)' 강추.

#3. 자세한 정보는 여기로.

#4. 가장 중요한 정보. 관람료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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