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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문제아들이 모인 학교의 학생들을 모아다가 합창을 시키면서 갱생을 시켜보자는 프로젝트가 있다. 이승철 팀, 엄정화 팀으로 나뉘어서 경쟁을 벌인 뒤, 이긴 팀은 폴란드 합창대회에 나간다는 일종의 당근까지 주어졌다. 그러나 쉽지 않은 아이들을 모아 놓았으니 쉽게 진행이 되지 않을것임은 자명한 일. 도중에 한 아이가 연습 시간에 빠져야겠다고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연습장을 빠져나가 버린다. 코치 엄정화도 도저히 어찌 해 볼 수 없는 벽 앞에서 멘붕. 프로그램의 작가가 뒤 쫒아가 설득을 해 보다가 역시나 벽에 부딪치자 반 하소연조의 한마디를 뱉는다. "넌, 이걸(합창을) 왜 하는데?"


2. 울릉도 전지 훈련(?)을 간 합창팀. 이 들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합숙훈련을 하는 동안 술과 담배가 금지되었다는 점이 그것이었다. 이제껏 들떳던 감정은 어디론가 싹 사라져버리고 동요하는 아이들. 당연한 수순으로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담배 및 허용되지 않은 소지품을 걷으려 하지만 역시나 쉽게 따라 줄 아이들이 아니다. 그 와중에 한 아이가 카메라가 켜져있으니 애들이 쉽게 내놓지 못하는것 아니겠냐는 지적을 한다. 카메라를 끄라는 그 아이와, 끌 수 없다는 엄정화 코치를 비롯한 '어른들'. 왜 끄면 안되냐는 질문에는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이것(담배를 걷는 것)도 방송(촬영)이야, (카메라를 끄는 건) 안돼."



물론 3회차 분량의 방송으로 담기에 실제 촬영기간은 몇 달에 걸칠 정도로 길었고, 당연히 방송으로 나온 편집본만을 보고 가늠하기엔 보이지 않은 수 많은 맥락들이 있었을 것으로 안다. 그러나 방송 제작진의 편집의 과정을 거친 내용만을 보기에도 이 프로젝트는 적지않게 함량이 떨어져 보인다. 


위에서 든 사례만을 일단 놓고 얘기해 보자면, 일단 선 후 관계는 2번이 먼저, 1번이 그 후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두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는 동일인물. 당연히 묘하게 균열이 일어나는 동일한 맥락이 보이는데, 아주 간단하게는 '권위에 대한 타협 시도와 실패' 정도로 정리 할 수 있겠다. 청소년과 담배는 절대 호응할 수 없는 개체이고 따라서 거기엔 어떠한 타협의 여지도 없으므로 새 출발을 위해 모인 자리인 만큼 그에 대한 제재를 가하는것이 당연한 수순이라는게 '어른들'의 입장이었다면, 거기에 대한 아이들의 최소한의 타협 지점이 일단 카메라를 끄고 걷자는 거였다. 종종 폭발해버리곤 하는 아이들의 반응에선 그 순간에 카메라를 끄라고 요구하는 공통된 지점이 있었는데, 이 경우에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있었던거다. 그 속이야 아이들 스스로도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스스로의 모습이 화면에 담긴 결과가 어떻게 될 지를 본능적으로라도 알고 있었기에 그런게 아닐까라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그리 무리한 짐작도 아니지 않은가. 전국 방송에 나갈 모습이 찍히고 있는데 그게 흥분해서 소리나지르고 담배나 가지고 다니는 모습이라면 세상이 그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 아이들은 그 순간을 부끄럽다던가, 그저 쪽팔리다고 느꼈을 수도, 혹 자신을 향해 쏟아질 비난에 무서웠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자신들이 하고픈대로 하고 싶다는 의지와 그럴 수 없다는 제작진의 의지 사이에서 나름대로의 타협점을 제시했을 테지만 그건 여지없이 무시당하곤 했다. 


합창을 잘 해서 유럽에도 갈 수 있다는 당근이 아이들의 목적이라면, 그 당근을 제시한 제작진 쪽에선 그런 아이들의 인생을 담아내 감동 드라마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서로의 목적이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면 타협해 나가는게 '동업자'로서의 기본 자세일 텐데, 과연 제멋대로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들보다 제작진이 얼마나 더 나은가 싶은 생각이 든다. 과연 카메라가 켜진 상태에서 담배를 걷는 것이 아이들의 '갱생'에 어떤 영향을 끼치기에 그렇게나 신경전을 벌였는지가 궁금하단 소리다. 그건 갱생이나 아이들을 위한 선도의 의미라기 보다 '그림이 살아야 된다'는 자신들의 목적이 우선이었기에 쉽게 물러서지 못하는 부분이었지 않겠는가. 반복하지만 선도나 호의의 의미이기 보다 서로의 목적과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이었음에도 왜 어른들은 당연히 아이들을 윽박지를 수 있다고 여겼던걸까? 물론 아이들의 입장을 무조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다. 카메라를 끄고 걷었다고 마법처럼 아이들이 모두 담배를 순순히 내놓았을거라는 말도 아니다. 그러나 '청소년에게 담배는 안돼'라는 사회의 규율을 어겼기에 그런 아이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타협도 대화도 없다는 식의 일방적인 자세가 아이들이 자의에 의해 담배를 내놓을 기회를 빼앗아버렸다는 부분은 제작진의 반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적어도 이 문제아들을 그저 배제하고 밀어냈던 어른들과는 다르게 접근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그래선 안되었던 거다. 


1번 사례에서도 이제 부터 진짜 진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 그날에 성형 시술 예약이 되어있다며 연습에서 미리 빠지겠다는 아이를 본다면 그 아이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거다. 나도 그랬다. 아마도 방송을 봤을 많은 사람들이 혀를 끌끌차며 아이의 인성을 탓했겠지. 하지만 방송 제작진들 마저도 그 옆에서서 혀나 끌끌차고 있어서야 될말인가? 왜 미리 잡혀있던 연습시간에 시술 날짜를 예약했는지,자신들이 왜 이 무리한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마디도 없이 '학생이 필러를? 그것도 이 중요한 합창 연습날에?'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하고 수도 없이 타협을 시도하는 아이 앞에서 안된다는 말밖에는 못하고 있는 어른들이 엇나가는 아이보다 더 답답했다. 학생에게 필러는 전혀 필요없는 시술이라는 생각에만 매여있으니 심지어 그 핑계로 연습에 매진해야 할 시기에 빠지겠다는 아이에게 궁금한 것이라곤 '왜 필러를?' 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오히려 정해진 연습시간이 30여분 밖에는 남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완벽하게 다 준비가 끝날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들이라도 꾸준히 대는 아이가 더 적극적으로 소통의 의지를 보였다고 생각한다. 과연 왜 (중요하지도 않은) 필러를? 이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 한마디에 어린 나이에 잘난 외모로 밖에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컴플렉스가 물흐르듯이 술술 나오기라도 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말을 꺼냈을까? 결국엔 '너희들을 모아서 합창을 하려고 했던 우리의 의도와 너의 지금 욕구는 동시에 충족되기 어려운 것이다, 너의 욕구가 처음 합창을 하려했던 마음가짐 보다 큰 것이라면 더이상 너와 함께 할 수 없다, 진지하게 둘을 생각해 보고 그래도 결심이 바뀌지 않는다면 너와는 오늘까지다'라고 말했어야 한다. 하지만 빤히 정해진 결론을 입밖으로 내는것 조차 어른들은 아이에게 미루고 말았다. 이로서 어른들은 끝까지 아이의 손을 잡으려 안달 복달했으나, 못된 아이는 그 손을 뿌리치고 떠나버렸다는 그림이 완성 되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무슨 악마의 편집의 희생양쯤 되었다라고 말하려는건 아니다. 단지 솔직하지 못한 어른들 (방송 제작진)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그들 역시나 일정한 의도를 가지고 아이들의 인생에 끼어든거지만, 세상이 버린 아이들을 거두기 위해 열린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본다는 자아 도취에 빠져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물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기에 그렇다. 둘 사이에 의사소통이 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대신,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기회를 걷어차는 배은망덕한 어린양으로만 접근하니 애는 쓰지만 결과물이 신통치 않을 수 밖에. 그저 합창이면 새사람이 될 수 있다는 식이니 토달지 말고 무조건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좋은거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거라는 폭력이나 다름없어 보이고, '못된 아이들인 너네들에게 관심을 주고 있는 우리는 겁내 쿨하고 착하고 멋진 사람 뿌잉뿌잉'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해 아이들의 실체를 살피는데 소흘하니 그 아이들의 행적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수 많은 아이들에 대해서도 무신경해서 일진 미화논란도 벌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제작진 역시나 아이들 보다 자신이 우선이었고, 그걸 인정하지 못했기에 그 아이들에게 더 다가가지 못했으며, 그 결과로 그 아이들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까지는 시선이 가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이 프로젝트는 최종회 방송만을 남겨 두고 있다. 그 방송에서 이 부조리들이 모두 해소 된다고 하더라도 제작진의 실수가 덮어지는건 아니다. 방송 사이의 며칠 동안 '오해'는 해소되지 않고 지속될 것이며 그 사이에도 합창단과 과거 그 아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아이들 모두가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제작진은 어떻게 배상할것인가? 그게 가능하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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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소송사건(Bananas!*)'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다국적 과일회사 '돌(Dole)'이 독성 농약을 사용하여 농장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일단, 난 이 작품은 보지 못했다. 내가 봤던것은 ebs였는지 kbs였는지에서 다큐멘터리 축제를 하면서 편성했던 '바나나 소송사건 그 이후(Big Boys Gone Bananas!*)'였는데 이게 참 걸작이었다. 걸작이라는 표현은 작품 자체로서도 흡인력있게 잘 만들었다고 평가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반어적인 표현으로 '참 하는 짓들이 걸~작이다~'의 의미이기도 하다. 별생각없이 만만하게 마트에서 고르던 바나나의 그 귀여운 스티커를 이다지도 무시무시한 사람들이 붙이고 있었다니... 이 거대 기업은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 '바나나 소송사건'이라는 다큐영화를 이세상에서 '박멸'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해외 영화제에 이 작품을 내리도록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각국의 정계에 영향력을 발휘해 영화가 상영되는것을 막기도 한다. 물론 그 와중에 각종 소송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것은 기본이고. 그리고 그 결과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거실 소파에 누워있던 나에게 까지 전해지질 않았는가. 거대 회사는 참패하였고, '힘없는' 소규모 다큐제작자는 이겼다. 이 '작은'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여드름을 짜내려다 자신의 손이 그 상처를 덧내는걸 인식하지 못한 결과가 아닐지. 사람들은 그저 먼나라의 농장 노동자들이 핍박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 그 거대기업이 정치인과 언론을 동원하여 자신들을 핍박하고 억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되자 그저 공분의 의미를 넘어서 공포로 무장하게 되었던거다. 마트에서 만만하게 바나나를 골랐던 사람들에게 두 다큐의 의미는 같지 않았다. 기업의 행태는 같았을 지언정.


본작의 이야기를 해보자. 사람들은 이 다큐의 내용을 접하기 보다 이 다큐가 세상에 나오자 이 세상이 어떻게 반응을 하는지를 먼저 보고 있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이 제기되고, 기각되고, 멀티플렉스 체인점에서 조그맣게 상영이 되었다가, 돌연 취소되었다. 긍정적 현상인지 부정적 현상인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는 영화 이상의 의미를 벌써부터 갖게 되었다. 내용에 대한 분석이나 평가는 외려 뒷전으로 밀려난 채로. 이제껏 보아왔던 많은 한국사회의 논쟁거리가 그래왔듯이 먼저 이루어져야 할 알맹이에 대한 판단은 사라진채로 유치하지만 살벌한 힘겨루기와 소득없는 감정싸움이 지루하게 이어진다. 이래선 죽을 힘을 다해서 싸우지만 어느 한쪽도 뭘 얻지는 못하는 소모전이 되고 말 뿐인것을. 정작 중요한 알맹이를 놓고 본다면 이게 그렇게나 흥분해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를 대하듯 할 내용은 아니란걸 알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래, 이 글에서도 이제서야 이 영화에 대해서 좀 설명할 수 있을것 같다. 가장 먼저 든 기분은 어렵지 않다는거였다. 사실 개인적으론 천안함 사건 당시엔 온갖 정보의 홍수속에서 어떤 정보를 취합해서 판단에 활용할 것인지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거기다 그 정보들은 하나같이 물리학등의 각종 과학적인 사전 지식을 갖고 있어야만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들이었고, 그래서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에 기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사람 말이 다르고 저 사람말이 다르니 애초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는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내가 판단하기로는 천안함의 조사 결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어떤 확신을 갖고 있기보다는 종교적인 믿음에 가깝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다루는, 정말로 폭발이 있었다면 그 엄청난 열이 왜 사고 직후의 열 화상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는가와 같은 그저 간단한 논리적인 차원에서의 의문에는 어떤 과학적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심지어 이해를 돕기 위해 비슷한 열로 쇠를 달구고 대형 수조의 물에 담근 후 얼마동안 그 주변의 물이 달궈진 쇠와 비슷한 정도의 온도를 띄는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이건 뭐 빨간펜 첨삭지도 수준이다. 거기다 처참하게 두동강난 배가 곧바로 폭발의 증거가 되는것은 아니라는, 다른 과정에 의해서 그렇게 되었을 개연성을 풀어내는 부분에서는 일찌감치 수학포기 문과생이었던 나로서는 새로운 세상을 접하는 듯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그 복잡한 내용이 이해가 다 되게하는 기적을 행해 보였으니.


물론 쉽다는 말은 그만큼 첨예한 부분을 많이 비켜갔다는 말일 수도 있을 테다. 실제로 천안함에 대해서 많이 들고 팠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다루지 못한 많은 쟁점들에 대해서 아쉬움을 표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어찌보면 그들도 이 영화를 우선 영화로 본것이 아니라 천안함이라는 쟁점에 대해 유리한 입장에 서게 해줄 동료 정도로 판단한 측면이 크지 않을까? 영화가 한정된 시간안에 다루기엔 너무나 많은 부분에서의 논란이 있다. 아마 그걸 다 다루면서, 이 영화 한편으로 모든 논란을 끝내리라 생각했다면 아마도 영화는 실패한 졸작이 되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이렇게 '밍숭맹숭'하게 만든 영화가 온갖 영화외적인 풍파를 겪으면서 절절히 보여주는 생생한 현실이 있질 않는가. '아니... 이 정도도 안된다고?'


아마 내가 한국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외국인이었다고 친다면, 이 작품을 마음놓고 흥미로워 했을 것 같다. 촌스럽게 감독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도 않았으면서, 복잡한 사안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 어렵지 않게 펼쳐져 보였다. 거기다 영화 내에서 부터 이미 감지 되고 있었던 '자기 검열에 대한 요구'가 스크린 밖의 세상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가 생생하게 느껴지질 않는가. 마치 제 3세계의 농장 노동자들에 대한 억압 및 착취가 선진국 영화제작제에게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는 지를 내가 흥미롭게 지켜봤던 것처럼, 천안함 이라는 단어로 취합되는 일련의 사건이 벌어진 곳이 나의 터전이 아니었다면 난 또 그랬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을. 이 흥미로운 작품을 앞에 두고 일단 비분강개하고 분노의 게이지를 한껏 올려놓아야하니 이런 비극이 또 어디 있나. 이건 천안함이 폭침이냐 좌초냐의 진실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다. 천안함 사건이 중요하지 않다는것이 아니라, 이정도의 가벼운 의심에도 전방위적인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는 사실이 천안함 사건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와중에 나의 가장 큰 염려는 이거다. 이긴다는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스웨덴의 '프레데릭 예르텐'이 이겼던 것처럼 한국의 '백승우'도 이길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천안함 프로젝트, 그 이후'가 나올 수 있을까? 이 암울한 상황을 '흥미롭게' 지켜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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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어린쥐™



이쯤 되면 추석 선물세트들이 돌아다닐 때가 되었다. 참치나 햄 통조림, 치약 및 샴푸나 식용유등이 명절 선물세트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어 매 명절이 되면 어김없이 팔려나간다. 이전처럼 먹을것이나 물품이 귀하던 시절과는 다르게 선물세트의 구성품들은 선물이라고 하기엔 이제 그 지위를 많이 잃었지만, 신기하게 많은 사람들이 저러한 물품을 '선물'로 준비하고 주고 받는다. 물론 선물로서의 지위는 잃었을 지언정 나름의 경쟁력을 갖고 있기에 여지껏 세트로 구성되어 팔려나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어린 왕과 권력욕에 불타는 숙부, 천한 신분에서 최고의 권세가로 올라선 입지전적인 지략가, 반역의 무리를 막아선 당대의 실력자등등 수양대군의 이야기는 언제봐도 참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매력이 때가되면 꺼내어져 소진되니 마치 명절마다 돌아오는 선물세트를 보는 듯 하다. 그래도 예전엔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기억에서 잊혀질 때 쯤 다시 꺼내어지곤 했으나 요즘엔 미처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수양대군, 단종, 한명회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더구나 팩션사극이라는 외피까지 두르고 있으니 그 평범함이란게 거의 특별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근 몇년동안 사극이라는 이름을 걸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새로운 창작의 나래를 펼쳤던가. 개별 작품들의 완성도를 떠나서 이제는 팩션 사극이라는 시도자체가 애초의 새로움의 이미지를 벗어나 성의 없음에 가까운 고정관념을 주게 될 정도가 되었다. 이전처럼 먹을것 없고 물품 귀하던 시절이라면 피가되고 살이될 선물이었겠지만, 모든것이 풍족해진 지금은 유별나게 감동이 담긴 선물이 되기엔 부족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올해 나온 '수양대군 선물세트'에는 좀 색다른 구성이 포함되어 있다. 1차적으로 보면 그 유명한 단종과 수양대군의 이야기에 관상이라는 요소를 집어넣은 것일 테다. 이 고고한 역사의 큰 흐름앞에 역적 가문의 후손으로 숨어지내던 관상쟁이가 휘말리게 되는 구성이 이 영화의 히든카드 인듯 하다. 그리고 이 유명한 사건은 관상쟁이 '내경(송강호)'에 의해 관상에 따른 인과관계로 재해석되어 오묘한 분위기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양대군 선물세트의 존재에 대해 잘 모르는, 더구나 관상에 대한 사전 정보가 부족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이 작품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전 정보에 의한 진부함을 떨쳐버린 후라면 언제라도 매력적인 이야기에, 얼굴 생김새로 사건의 앞뒤를 예상하고 풀어가는 인물의 등장이라. 끌리지 않는가?


그러나 애초에 우리가 기대하게 되었던 수양대군 선물세트와 관상의 비중과 비교해 봤을 때 생각보다 무게 중심을 더 많이 두고 있는 부분은 내경과 그 아들 '진형(이종석)'의 부자간의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의 인과관계상 내경과 그 아들의 이야기가 주요하게 다루어져야만 하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저 수양대군 선물세트의 연결고리로만 생각하기엔 적지 않은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봤다. 그에대해서 말하기 위해선 일단 이 영화가 관상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게 필요한데, 이 영화에서 관상이란 일종의 노하우와 같다. 한 인물의 성격이나 주위 환경은 얼굴 생김새와 행동 및 습관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으며, 그러니 예민하게 이를 집어 낼 수 있는 사람은 한 인물의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상당히 높은 확률로 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극속에서 관상쟁이가 내경만 있는건 아니었지만, 학습치와 경험치면에서 그 예민한 짐작을 거의 쪽집게처럼 해 낼 수 있었던것은 내경 뿐이었다. 그리고 관상을 보는 것에 대해 극도로 거부감을 느끼며, 역적 가문의 후손이라는 굴레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은채 세상에 나가고자 했던 내경의 아들 진형이 내경만큼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읽어 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진형은 관직에 나가면 험하게 죽을상이라며 진형이 세상에 나가는 것을 극도로 말렸던 내경이지만, 관상이나 운명을 믿지 않았던 진형에겐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내고픈 욕구가 들끓을 뿐이다. 


급격히 기운 가문에 낙심하여 죽을 결심을 했던 내경을 살게 했던 아들 진형, 아비가 어렸을적에 건사를 잘 못해서 아들 다리를 절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한숨짓게 만드는 아들 진형. 이 절절한 부성은 또다른 노하우를 떠올리게 한다. 온 인생을 통해서 겪어낸 노하우와 이를 바탕으로 자식에게 좋은 길을 만들어주고 픈 아비와 그 바람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들의 이야기 같은...뭐 그런거 말이다. 아비의 온갖 좌절과 아픔, 고난과 성취 같은 것들이 빚어낸 이 세상에 대한 통찰은 그러나 아직 어린 아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버겁기만 하다. 그 아비조차도 온 인생을 통해 알게 된것을 어찌 말 몇 마디로 다 이해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통찰이라는 것도 아들 세상에 와선 쓸모없게 되어버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라, 많은 것을 알고 있으나 불속으로 뛰어드는 아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아비의 그 초조함이란 언제나 되풀이 되는 비극인 것이다. 그저 서서 '잘 해보거라'라며 기대섞인 응원을 보낼 수 밖에.


그러나 관상에서 시작해 절절한 부성애를 거쳐 도착하게 되는 이 영화의 '운명론'에 대한 입장은 어떻게 취하고 있는것인지가 확실하지는 않다. 한결같이 운명을 이겨 낼것이다, 그의 장담은 결국 틀렸다라던 극중의 사람들은 결국엔 관상쟁이가 예견한 운명에 맞게 그 최후를 맞게 되었다. 심지어 그 자신도 바람을 보지 못하고 그저 바람이 일으킨 파도만을 봤을 뿐이라며 자신의 '재주'를 낮추지만, 결국엔 그 바람이라는 것이 미래를 내다본 사람이라도 어쩔수 없는 정해진 운명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면 가장 강력한, 운명론에 대한 귀의가 아니겠는가. 물론 운명을 내다 본다고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반면에 정작 그 운명은 실행되지 않았으나 그 운명론에 대한 걱정으로 가장 고통스러웠다고도 토로 하고 있지만 말이다. 


소재의 특성에 완전히 녹아들고자 했음인가;;; 마치 사주,관상을 보고 나온 양 잔뜩늘어놓은 변죽을 보고 난 뒤의 헛헛함이 쉬이 가시질 않는다.  












#1. 김종서에 대한 분배(?)가 아쉽다. 

    수양에게 맞서는 실력자 김종서의 행동을 그저 선왕에 대한 충심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한 권력 싸움으로 봐야 할까?

    최소한의 설명이 있었다면 더 흥미롭지 않았을까?


#2. 이로서 송강호 위기론은 지층아래 화석으로 묻히게 되었음.

     개인적으론 '냄쿵민수' 보다 '내경'이 송강호의 매력을 더 잘 살린걸로 봄.


#3. 납득이의 꽈배기는 잊어라.

     송강호,조정석 콤비의 춤에는 어떤 이름이 붙게 될지...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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