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082013  이전 다음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이 영화는 감독인 닐 블롬캠프의 '디스트릭트9'의 연장선에 있다. 그 영화와 마찬가지로 구역의 분리로 빈민내지는 피지배층과 상류 시민내지는 지배층이 나뉘어 있다. 피지배층의 삶이란 지저분하고 처절하기 이를데 없고, 지배층의 삶이란 밝고 깨끗하며 여유롭다. 자신들의 밝고 깨끗하며 여유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배층은 사람들을 그들만의 구역안에 묶어 놓으려 한다. '디스트릭트9'에선 마치 외세의 침략자들이 원주민을 일정 구역안에 몰아넣고 온갖 나쁜 이미지를 덮어씌우며 핍박했던 모습을 외부에서 온 외계인들을 통해 재현해 보였고, 본작에 있어서는 말그대로 위성도시인 엘리시움에 사는 상류층과 그대로 오염된 지구에서 사는 하류층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보다 단순해진 묘사가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게 문제다. '디스트릭트9'에선 지배세력의 고위층의 사위로서 외계인들에 대한 핍박의 선봉에 섰던 주인공이 우연한 사고로 외계인이 되어가면서, 오히려 핍박을 가하던 시스템에 대해서 도전하게 되는 모습을 그렸다. 엇비슷한 맥락에서 그동안 온갖 나쁜 이미지들을 뒤집어 쓰면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흑인들이 외계인들에 대해서 온갖 편견에 사로잡힌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을 보여주며 일종의 전복의 쾌감같은걸 느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측면에서 전복의 장치가 있었다면, 화면 구성에 있어서는 그렇게 새롭다고만도 할 수는 없는 뉴스화면 처럼 구성한 인터뷰의 활용을 통해 영화가 '쿨'해 보이는데 기여를 했다. 그렇게 '디스트릭트9'은 독특한 영화가 되었던거다. 


그러나 본작은 평범한 액션물이 되고 말았다. 빈민인 주인공 맥스(맷 데이먼)도, 엘리시움의 실력자 델라코트(조디 포스터)도, 살인귀 크루거(살토 코플리)도 시작부터 끝까지 쭉 다 평면적인 인물들 뿐이다. 애초에 엘리시움에만 존재하는 치료기(?)가 없으면 5일안에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절박한 상황이 맥스를 위험한 상황에 대한 도전으로 떠밀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에서 시작해서 끝에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큰 가치를 이루게 되는 과정에서 그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 따위는 없다. 그래서 애초에 맥스가 그걸 다 인지하고 행동에 나서게 되는지, 영화 주인공 맥스를 밑바닥에서 태어나 영웅이 된 인물로 생각해도 되는지 의문이 든다. 어차피 엘리시움에 올라선 상황에서 그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겠다고 뭘 피하고 어쩌고 할 선택지 자체가 주어지지를 않는단 소리다. 그러니 그의 '희생'에 대한 감동이 반감될 수 밖에.


물론 전작과 엇비슷한 노선을 보이는 부분도 있다. 빈민가에 대한 묘사는 디스트릭트9과 엇비슷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로 가지는 묵직한 무게감이 있다. 빈민가 사람들의 생활은 그 흙먼지 하나 하나로 비로소 생명력을 얻게 된다. 영화의 핵심인 엘리시움도 허황되거나 진부할 수 있는 함정에서 벗어나 환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위용을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없다. 일단 그 부분에 있어서 가질 법한 기대는 누구라도 다 만족할 것 같다. 거기다 말로 표현하기엔 부족한 '변태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한 신체의 훼손과 재생의 묘사는 그 자체로 큰 쾌감이었다. 그 한없이 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변태적인 감성만은 아직 죽지않고 그대로 였다.


여러모로 아쉽다. 훌륭한 배우들을 데려다 놓았음에도 그들이 활약할 장은 '위성도시'만큼의 크기도 되지 않았다.[각주:1]하위층에게 주어지는 의료시스템의 문제, 잘나가는 서방과 그를 떠받치고 있는 제3세계의 구도등을 간G나게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도 영화적인 재미가 있고 난 다음의 문제인 것을. 뻥튀기 된 자기반복이라는 평가 이상을 내리기는 힘들것 같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조디 포스터를 그렇게 쓰고 버리는 사람이 어디있나요;;;;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어린쥐™

참 기이한 현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한국식 b급문화의 또 다른 히트작으로 한창 떠오르는 샛별임과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미운털이 박혀 광고 모델로 나선 회사에 대한 불매,탈퇴 운동까지 벌어지는 크레용 팝이라는 걸그룹 말이다. 대체로 미운털이 박힌 대상이라 할지라도 어떤 성취를 보이면 그 미운털은 사그라 들게 마련이었고, 모델로 나섰다는 이유로 탈퇴운동까지 벌어질 정도의 미운털이라면 그 연예인은 대체로 자숙중이거나 숨어지내거나 해야하는 처지였질 않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너무 이른 컴백이었다' 라며. 그런데 지금 크레용 팝에 대해서는 그 두가지 현상이 모두 고조를 이루며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전무후무한 일대 사건이라 할만 하다.그렇기에 이 현상에 대해 한 두마디를 거드는 사람들 역시 많이 나타나고 있지만, 내가 느끼기엔 함량 미달의 지적질이 태반이다. 그 얘기를 하기 이전에 문제의 실체가 뭔지를 먼저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그에 관해서는 아래의 블로그 게시물에 자료가 모두 취합 되어 있으니 확인해 보는것이 좋을 것 같다.


<크레용팝 일베 사장 사과문...>


그러니까 큰 건더기 들은 대충,

- 팬이 헬멧 컨셉을 차용 하여 일베에 백골단 컨셉의 크레용 팝 합성 사진을 게재. 일부 팬들이 염려하는 의견을 내기도 했으나, 사장은 오히려 '그런거 걱정하면 걸그룹 못해요' 라며 게시지를 두둔.

- '모 멤버'와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았는데, 그게 일베에만 올라온 내용이었다는 글을 사장이 트윗에 올림.

- 크레용 팝 멤버가 역시 트윗에 '노무 노무'라는 표현을 한 것과 어떤 활동 영상에 자기들끼리 '쩔뚝이 아니에요?'라는 표현을 한것이 일베에서 쓰는 표현이었다며 이슈가 됨.

-그 와중에 활동을 위한 정보 취합과 홍보를 위해 사이트에 접속했을 뿐이라는 식의 사장의 해명 글이 올라오지만 그 글에서도 다분히 감정적인 표현이 문제가 되고, 크레용 팝 멤버의 '돼지,부처'드립이 기름을 끼얹게 됨.

이정도로 정리 할 수 있겠다. 



이 논란에서 내가 가장 벙찌는 부분은 저들은 아직 '해명'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해명에도 불구하고 일베와 연관지어 안티짓을 하고 있다'는 식의 생각없는 지적질이 난무하고 있으니 이건 참 꼬여도 많이도 꼬인 상황 인 듯. 이건 지적질에 나서는 '네오 깨시민' 부류[각주:1]와 해명글이라고 올린 사장의 인식에서 어떤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이들은 모두 일베라는 사이트가 가진 일말의 정치색에 대해서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패착을 보이고 있다. '해명글'에서도 보면 뭘 조장하고 어느 세력에 치우치고 그런게 없으니 우릴 일베와 엮지 말아달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네오 깨시민들도 일베의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 보안법이 문제가 있는것처럼 저질들이 저질로 내뱉는 말 조차도 그 자유를 보장해 줘야 한다는 식으로 일베에 대한 낙인찍기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일베가 가진 문제점중에 정치적인 색깔과 일종의 조장 같은건 오히려 후순위의 문제에 가깝다. 더 무서운건 그 기반에 깔린 배제와 어떤 대상에 대한 공격성이라고 보는데,그 정서가 유머 내지는 농담이라는 방법으로 표출되니 그걸 보고 재밌다고들 하고 있는거다. 난 간혹가다 보는 호남 지역에 대한 '7시' 내지는 '외국','여권'드립만 봐도 뺨맞고 삥뜯긴 기분이 든다. 폭도 드립이야 워낙에 역사가 오래되어서 내성이 생길 지경이고. 그런데도 그런 코드의 신조어나 농담을 재밌다면서 점점 퍼트려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나 뺨맞고 삥뜯기는걸 웃으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는 기분이 든다. 그 분노를 놓고서 왜 애먼 걸그룹한테 정치색을 뒤집어 씌워서 두들겨 패느냐고 한다면 그걸 보고 해명이나 분석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저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을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 '쩔뚝이 아니에요?' 드립이라고 보는데, 가장 큰 문제는 제작자 측에선 저 말이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있지도 못했다는 부분이다. 난생 처음들어본 단어이지만 그 의미 유추에는 별 무리가 없는 '쩔뚝이'라는 단어. 아마 다리를 저는 사람에 대한 '지칭'이겠지만, 허물없는 사이에서 내뱉을 법한 욕설이라기엔 지나치게 '독창적'인 조어라는게 문제일수 있다는거다. 물론 그 독창성 역시나 독창적인 인물이 그저 우연하게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표현이라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그 표현이 특정 대상에대한 비하,모욕의 표현이라는 문제는 남는다. 쉽게 말해 저들은 일베에서 쓰는지 몰랐어요라고 일관하고 있지만 일베어던 아니던 아주 저질의 욕설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다. 저 영상의 촬영 주체가 어디인지는 모르겠지만 장애를 가지고 놀리는욕설이 선명하게 영상에 담겼는데 공개 될때까지 거쳐갔을 수많은 사람들 모두 저 표현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던 점은 일베 논란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지 않을까? 거기다 사장의 해명에 의하면 그저 활동을 위한 정보를 얻기위해 일베를 이용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트윗에 남긴 모 멤버와의 일화엔 일베의 코드에 낄낄거리며 '거기 재밌지?'라는 말을 했다고 하질 않나. 그런데도 비난 여론을 '그저 접속 했다는 이유로' 까대는 사람이라고 몰아대며 마녀 사냥 할거라면 달게 받겠다니...ㄷㄷ


제작사 측의 실수라면 비난 여론이 단지 일베와의 연관성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일베가 갖고있는 안좋은 특성(특정 대상에 대한 악의적인 배제와 괴롭힘)을 고스란히 즐기고 있다는 점에 대해 문제라고 여기고 있는걸 파악하지 못한 부분일 테다. 네오 깨시민류의 실수라면 이 문제가 그저 일베에 대한 두드러기 반응이 아니라 일베식의 정서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김을 드러낸 것에 대한 반응이자 크레용 팝 측이 해명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벌인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아우르지 못한 부분일 테고. 





Canon | Canon EOS 5D Mark III | Manual | Spot | 1/125sec | F/10.0 | 0.00 EV | 60.0mm | ISO-100 | Off Compulsory | 2013:06:05 19:07:12






그리고 이 글을 작성하고 있던 와중에 크레용 팝 제작자측의 '공식 입장'이 기사로 떴는데, 


크레용팝 "일베·표절 루머 사실무근..오해죄송"(전문)


먼저 든 생각은 일베에서 시작한 논란이 참 많이도 갔구나 하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표절에 대한 부분은 미운털 연예인이 흔하게 뒤집어 쓰게 되는 모욕이 가수의 경우엔 표절에 관련된 것이라 그렇게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이 공식 입장이 이 사태에서 빠져나오기엔 적지 않게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침묵조차도 의사 표현이라는 거다. 이슈가 처음 불거지기 시작한지가 얼마나 됐는데, 표절에 음원 사재기에 출생의 비밀에 해명 글에 채워넣을 논란의 내용이 불어나기를 기다렸던 건지 이제서야 정식으로 된 해명을 하고 있으니 뭐가 그렇게 재고 따질 일이 많았던건지가 궁금해 질 수 밖에.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버리면 그 반성의 기미라는 것도 반감되어 전달 될 수 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그렇게 재고 따진 이후에도 그 해명이란게 그렇게 촘촘한것 같지는 않다. 일베에 실린 내용에 대해 낄낄거리며 '거기 재밌지?'란 대화를 주고 받았다는 '모 멤버'가 크레용 팝 멤버가 아니라는 말이 해명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 보니. 그 사이트가 재밌다고 낄낄거리며 농담을 주고 받을 정돈데, 그런 사람을 그저 접속하고 정보만 얻은 사람이라고 볼 수가 있나요? 이건 사람을 믿고 안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말의 앞뒤가 맞고 안맞고의 문제인거지 말입니다;;;


사실 난 이전의 '전효성 민주화' 사건 때도 글을 남긴적이 있다. 그 때엔 지금과는 다르게 전효성 측에 호의적이었던 이유는, 논란이 생기고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서 그것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얘기를 했기 때문이다.[각주:2] 그 해명이 진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는 각자의 판단에 달린 것이고, 적어도 소속사와 해당 연예인이 할 수 있는 차원에 있어서는 (심지어는 좀 오버한거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할 도리를 다 했기에 그 부분에 있어서는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는 일베의 '정서'에 대한 판단 문제에서 시작해서, 소속사 측의 비난여론에 대한 감정 싸움의 문제로 크기를 키우더니, 판세를 읽는 시야의 부족이라는 능력의 한계로 그 지구력을 확보한 모양새가 되었다. 크레용 팝의 소속사 쪽에선 연예인이라고 문제만 생기면 납작 엎드려서 빌어야 하는건가, 더 납작 엎드리지 않았다고 이러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 정작 중요한건 어느 지점에 대해서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야 하는지를 그들이 아직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 있어서 이 사태가 적지않은 시일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네오 깨시민 부류는 자신들 만큼 쿨하게 일베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리돌림'하면서 꼭 크레용 팝에 대해서 한다리 씩 걸쳐 놓겠지. 아니, 소속사가 엉뚱한데서 더듬거린게 이 일이 이렇게까지 커진 핵심이라구요 이사람들아. 















  1. 깨시민=니들과는 다르다, 니들과는. 네오 깨시민=깨시민과는 다르다, 깨시민과는. [본문으로]
  2. '전효성 민주화'와 비교하기엔 벌려놓은게 좀 많긴 많긴 하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어린쥐™




아마 '아마겟돈'의 브루스 윌리스 특공대 같은 팀이 꾸려졌던 모양이다. 영화는 지구로 향하는 혜성에 대응하기 위해 나섰던 그 팀이 '실패' 했다는 라디오 뉴스로 부터 시작한다. 인류는 더이상의 생존에 실패하게 된거다. 남은 시간은 21일, 그 뒤로는 모든게 다 끝이다. 그렇게 되자 이제 전인류는 공통의 관심사 하나에 몰두하게 된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


생각보다 모든 룰이나 법규가 모두 무시되는 아비규환의 난장판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나, 일단 영화의 시선에 들어온 부류는 '될대로 되라' 족. 솔로로 죽을 순 없으니 되는대로 짝을 지어주려던 친구에다, 술김에 주인공 도지(스티브 카렐)에게 딥 키스를 날리는 그 친구의 부인. 난생 처음 술을 홀짝거리는 꼬맹이에다, 미워하던 사람에게 찾아가 속시원하게 욕을 해주겠다는 사람까지. 심지어는 날마다 파트너를 바꿔서 즐기고 있다는 한 너드는 이제 여자들이 피임이며 자신의 외모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행복해 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으로도 마음이 끌리지 않는 도지는 그저 집에서 조용히 최후를 맞을 생각이었다. 어느 우연한 사고를 겪기 전에는.


우연히 만난 옆집 여자 페니 (키이라 나이틀리)와 길을 떠나게 된, 아니 어쩌다 보니 폭동의 무리를 피해 같이 길을 떠나게 된 도지다. 일단 떠나고 난 후, 자신의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함께하기로 한 둘. 사실은 페니에게 비행기를 타고 가족에게 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게 먼저였으나 비행기까지 가기 전에 차의 기름이 바닥났으니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 이어지는 진행은 기대에 크게 벗어남이 없는 밝고 유쾌한 죽음 맞이하기이다. 온갖 오해와 갈등으로 괴로웠던 관계들이 회복되고 두려움 없이 서로에게 다가서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이차이도, 외모도, 돈도 아무 상관이 없다. 그저 사람과 사람이라는 순수한 이유 하나만으로도 서로를 사랑할 이유가 된다. 


공원에 사는 개이름, 'SORRY'라지요~♬

                      


 이 영화와 조셉 고든-래빗 주연의 '50/50'을 같이 놓고 보는건 그리 무리한 시도는 아닐테다. 그 영화에선 주인공이 50% 생존률의 난치병에 걸린 후, 남은 생을 어떻게 보내게 되는가를 다루게 되는데 이건 마치 전 세계인을 시한부 난치병 환자로 만든 스케일이 아닌가 말이다. [각주:1]  두 이야기 모두 비로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루 하루를 소중하게 사용하는 이야기들이지만, 거꾸로 그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여성들이 너드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건 그저 작당해서 너드를 괴롭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구 종말이 다가오자 기회가 늘어난건 그 계산이 필요없어져 버렸기 때문이었고. 만약 거짓말 같이 종말에서 비껴난다고 해서 그 기회가 종말을 앞둔 때와 같이 주어지게 될까? 다시 기회가 없던 시절의 너드로 돌아가게 될 뿐이다. 마찬가지로 특수한 상황에서 감정의 고조를 겪는 사람들의 화해와 사랑은 아름답고도 슬프지만 그건 특수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삶을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별로 도움될게 없는 이야기다. 영화 '스피드'에서 산드라 블럭이 그러지 않던가, 극적인 상황에서 만난 인연과는 사랑에 빠지는게 아니라고.


굳이 모두가 다 죽고 말거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해서 이 사람도 소중하고 저 존재도 소중하니 모두를 사랑하라는 이야기는 일종의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이런 협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기도 하고.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난 후에는 늦으니 잃기 전에 행동하세요' 같은. 그건 삶의 수많은 평범한 상황들을 볼모로 잡아버리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다. 만약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겠다는 일념으로만 삶의 순간들을 겪어 낸다면 그 삶은 어떻게 될까? 심지어는 그러고도 놓친 소중한 사람이 존재 할 수 밖에 없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을 그저 내탓으로만 돌리고 그저 견뎌내라는 말은 성취될 수도 없는 목표거니와 건강한 관계를 맺는데 있어서도 장애물일 뿐이다.  갈등이 있다면 욕하고 싸울수도, 안보고 살수도 있어야 한다. 죽고 죽이는것보다는, 이 관계에서 쌓인 울분을 다른 관계에다 푸는것 보다는 나으니까. 안보고 사는것에 대한 괴로움이 편안함 보다 크다면 그 사람이 한발짝더 다가서면 그뿐, 왜 다른이의 협박에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염려하며 지금의 내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걸까? 


사람의 성격과 마찬가지로 관계도 기승전결과 엇비슷한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의 가장 행복한 순간만을 대표 이미지로 떠올리지만 어떤 관계라도 그 관계가 이유가 되는 최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건 상대와 나의 노력의 여부와는 별도로 일어나기도 한다. 이를테면 평생을 아름답게 사랑하고 짝을 먼저 떠나보내게 된다면 그 아름다웠던 사랑도 절망의 이유가 되는거다. 이 사례라면 아름답게 사랑했던 시절도, 짝을 떠나보내 절망하게 되는 시절도 모두 그 관계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아름다웠던 그 시절만을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봐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절망과 괴로움과 후회도 모두 나름대로의 지분이 있는 감정들이며 어느정도는 모두 필요한 것들이다. 어떻게 발악을 해도 결국은 따라 붙고 말 감정들이고. 


물론 지구가 작살날 시간이 21일 쯤 남았다면 또 모르겠다. 그 때라면 나도 내안의 간디를 이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러기 전에는 보기 싫은 사람 안보고 하기 싫은 말은 안하고 맘에 안드는 사람과는 싸우면서 살고 싶다, 되도록이면. 그리고 배 곯고 난 후 음식이 당기듯이, 관계가 주는 괴로움보다 행복감이 더 당기게 되는 때가 오면 뒤도 안돌아 보고 그 관계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이 영화의 감독이 50/50의 감독이 아니었나 싶었지만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어린쥐™

앵커 윤영화(하정우)에게 테러란 일상과도 같았을 것이다. 먼 곳에서 부터 전해지는 텍스트와 화면으로 접하는. 그런식으로 윤영화의 입을 통해 전해진 테러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그러나 어느새 사고를 치고 아침 라디오 방송이라는 '한직'으로 밀려난 그에게 다가온 테러는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줄 동아줄에 다름 아니었다. 심지어 별다른 노력도 없이 맞이 하게된 테러범의 전화라니, 이건 일생 일대의 행운이질 않은가. 그러다 그 테러의 위협이 바로 자신의 귀에도 꼽혀서 삑삑거리고 있음을 알게 된 이후에는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테러의 위협에 몸서리를 치게 되는 그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르게 된다면, 윤영화에게 테러란 어떤 의미로 다가가게 될지...





아주 '쫄깃쫄깃한' 영화다. 근래에 보기 드물정도로 밸런스가 잘 맞아 돌아가는 한국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전화로 테러범과의 심리 싸움을 벌인다는 설정 자체가 그렇게 쇼킹할 정도로 새로운 것은 아니나, 좁은 방송 중계석에서 윤영화가 접하게 되는 테러에 대한 압박이 다양한 차원에서 숨막힐 듯이 전해진다. 방송 모니터를 통해 사건 현장을 바라보게 했다가, 카메라를 밖으로 돌려 무너지기 직전의 건물을 멀리서 잡았다가, 핸드폰으로는 정부에서 나온 대 테러 관계자와 문자를 주고 받으며 방송으로는 테러범과 밀당을 했다가... 이런 전환들이 미처 하정우가 헛개수 먹방을 하고 있었다는 것조차도 인식하지 못할정도로 숨막히게 이루어 진다. 거기다 긴박한 상황에 휘말리지 않겠다는듯이 한번도 평정심을 흐트리지 않는 정부의 대 테러 요원역의 전혜진은 관객과의 밀당에 있어서 중요한 무게추가 되어 준다. 


그러나 이런 장르적 성취에도 어딘가 모르게 아쉬운 부분은 있다. 테러가 이루어지는 메카니즘이 더 자세하게 묘사 되었다면 장르적 쾌감이 훨씬 배가 되었을 텐데 애초에 그런 시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보다 '어찌 어찌해서' 각종 사회 시스템을 뚫어내고 엄청난 화약까지 손에 넣은 절대적인 능력의 테러범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뿐이다. 겉으로는 테러범과의 밀당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그 테러범은 실제의 자기 모습을 드러내고 '정보'를 넘어선 오감으로 관객들을 자극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정체가 드러나는 대목도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영화는 테러범과 테러에 집중하기 보다 그 테러를 접하는 인물들을 더 중점적으로 다루는 듯 하다. 이를테면 애초에 신고조차 미루고 같이 대박한번 내보자는 부추김에 그를 따르려 했던 윤영화의 라디오 프로그램 피디는 티비 생중계라는 큰물을 선택한 윤영화에게 물을 먹게 되고, 테러범과의 전화연결을 카드로 한 윤영화와 자리복귀를 거래했던 보도국장 역시나 어디까지나 윤영화를 거래의 도구로 볼 뿐이다. 애초에 테러가 동아줄에 불과했었던 윤영화와 같이,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3자의 사정은 그저 부차적일 뿐 자기앞에 놓인 이권에만 매달린다. 사람들이 다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저지른 일이니 잘못한게 아니라는 테러범에 대해서 누구 하나 나서서 당당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영화가 장르적 완성도를 살짝 비껴가면서도 이른바 '사회 고발 영화'의 전형에서도 비껴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찰, 행정, 언론등의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시스템 속의 난맥상이 이 테러 속에 녹아 있지만 그 난맥상이란건 장벽 바깥의 뿔달린 도깨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소시민이라고 자기 스스로를 포장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것이었던 거다. 그리고 그 난맥상이 모이고 모여 뿔달린 도깨비가 만들어 지는거고. 앞서 말했던 '사회 고발 영화'들을 보면서 내가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그래서 저런 영화를 만들어서 뭘 어쩌자는거지? 저 영화 보고 사람들이 나서서 대신 시위라도 해 주길 바라는 건가?' 였다. 그런 영화에는 다른 이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희생시키는데 주저함이 없는 도깨비들이 나오지만, 정작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기는 그 소재로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 및 제작자와 8000원에 부당함에 대한 부채감을 갚으려는 관객들 역시나 마찬가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남의 상갓집에서 한판 잔치라도 벌이는 듯한 모양새로 말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까지 어느 쪽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사회의 부조리와 난맥상을 전달하기에 소흘하지 않기로 한것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최고 블루칩 하정우와 쫄깃쫄깃한 영화적 쾌감이 아니면 이 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았을 것임을 잊은것 같지도 않다. '나 이렇게 고생해서 이런 말도 했어요, 뿌잉뿌잉'하기 보다 자신들이 하려는 일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고있는 사람들의 이정도 프로페셔널한 결과물이라면 드러 내놓고 뿌잉뿌잉하는 결과물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면에서 지지와 응원을, 그에 앞서서 훌륭한 생산물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더불어 이제는 식상해진 배우 하정우에 대한 찬사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과연 하정우가 아니었다면 누가 윤영화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을까? 연배를 좀 올려서 선배격인 배우들까지 포함 시킨다고 해도 꼽을 만한 후보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다. 좁은 라디오 부스에 갇혀서 한시간여 이상을 테러범과 보도국장과 대 테러 요원한테 시달려야 하는 이 엄청난 미션 앞에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와 냉정한 계산은 어김없이 효과적이었다. 단언컨데, 배우 하정우는 지금 한국 영화계에 있어서 최고의 선물이다.[각주:1]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feat. 병헌 리.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어린쥐™

<지구 온난화에 대항하려던 국제사회의 시도는 빙하기라는 결과물로 되돌아오게 되고, 그 빙하기 와중에 '공전주기'가 1년인 열차만이 얼마간의 사람을 싣고 마치 위성과 같이 지구를 달려나가게 된다. 또 다른 생태계나 마찬가지인 그곳에서는 또다른 계급이나 마찬가지인 구분들로 사람들이 나뉘어 있고, 가장 하층민으로 핍박받고 살고 있는 꼬리칸 사람들은 다시한번 판도를 뒤집을 혁명 혹은 반란을 준비 중이다...> 



이 정도가 설국열차의 간략한 줄거리 되겠다. '국인이라면 이 화 응원해 줍시다' 3연작 시리즈의 대망의 마침표를 찍는 작품이자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어마어마한 캐스팅이 봉준호라는 상품성에 더해져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기대를 불러 모았던 작품. 그러나 거꾸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최우선의 강점은 돈들인 티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그건 테러에 가까운 평점을 난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먼저 다가오는 약점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유명 배우들의 캐스팅, 한국 영화사상 최고액의 제작비라는 이미지들로 기대를 부풀려왔던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일반적인 기대가 일종의 배신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물량으로 수식되는 영화들에 대한 기대라면, 적절한 수준의 스펙타클, 적절한 수준의 쾌감등의 스토리 외적인 '자극'을 들 수가 있겠는데 사실 이영화는 그런 쪽은 아니다. 나도 영화를 보기 이전에는 열차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극복할 지가 주요 관전포인트 중의 하나였지만 애초에 이 영화는 그런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듯 하다. 오히려 공간의 한정성을 이야기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이용하고 있으며, 그러니 몇 번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들이 빛을 발하기는 하지만 '한국형 블록버스터'류의 영화들에서 기대할 수 있었던 특징들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물론 나에게는 그런 점들이 오히려 좋아 보였다. 마치 왕년의 성룡 영화에서 같은 액션 장면을 몇 번이고 똑같이 재생시켰던 것처럼, 이 장면에 돈을 많이 들인 만큼 기어이 뽕을 뽑겠다는 듯 덤비곤 했던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자세가 좀 후져보였기 때문이다.[각주:1] 대신에 캡틴 아메리카에게 수염을 덕지덕지 붙여 이리 툭, 틸다 스윈튼에게 두꺼운 안경을 끼워서 저리 툭 던져놓고 그들을 열차의 부품으로 활용하는 이 영화는 굳이 자기가 가진걸 자랑하려 오바해서 시선을 흐트리는 일이 없다. 엄청난 힘을 레일위에만 집중하는 열차처럼, 묵묵하지만 무서운 집중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갈 뿐이다.






영화의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본다면, 이 영화는 인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냄과 동시에 어둡기 이를데 없는 비관을 모두 담고 있다. 시작은 시스템의 가장 바닥에 위치해 있는 사람들이 시스템에 의해 어떻게 핍박을 받게 되는가를 말하고 있지만, 그 핍박을 이겨내고 올라선 시스템의 정상에 어떤 고독과 괴로움이 있는가를 역시나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따지고 보면 엔진실의 윌포드나 꼬리칸의 사람들이나 열차안에 갇혀 지내는 신세이기는 마찬가지다. 열차가 없었다면 윌포드는 물론이고 꼬리칸의 사람들도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며, 결론적으로 이들의 생존에 있어 가장 큰 변수는 열차가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 이다. 심지어 '무임승차'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꼬리칸의 사람들은 이 생존기계에 어떤 긍정적인 기여도 하지 못한채 그 혜택만을 보고 있는것과 다를바가 없으며, 윌포드가 내려주는 단백질 블럭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지금 만큼의 인간성도 유지하지 못한채로 서로 물고 뜯다가 사라져 갔을것임에 분명하다. 엔진실의 '독재자' 윌포드는 이 모든 밸런스를 혼자서 맞추어가며 열차를 움직이게 했던거다. 과연 윌포드는 이 영화의 끝판 마왕인걸까? 


그럼에도 1인자의 괴로움을 감내해 내야했던 윌포드에게 무조건 적인 애정만을 보낼 수 없는건, 애초의 완벽했던 열차가 점점 그 수명을 다 해 가는것 처럼 마지막 인류에게 생존 열차를 제공했던 윌포드 역시나 점점 혁파되어야 할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윌포드가 변해서 그렇다기 보다 상황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것 같다. 혹독하기 이를데 없는 환경에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던 유일한 탈출구를 제공 받았을 당시라면 누구라도 윌포드에가 감사하고 찬양을 보냈을 것이나, 자신들에 대한 핍박과 희생을 전제로 해서 자신들의 삶을 영위시켜 나가는 윌포드와 앞칸 사람들의 맥락을 눈치챈 뒤라면 언제까지나 그저 고마워 할 수는 없는것 아니겠는가. 엄밀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성자와도 같이 인류를 돌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담보해 줄 보호막으로써 인류가 필요했던 존재가 윌포드였기에 윌포드의 노력으로 인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윌포드를 신으로 떠 받들 필요는 없는거다. 인류의 생존은 윌포드의 노력에 있어서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효과였고, 그렇기에 윌포드를 포함해 앞 칸의 인류들에 비해 꼬리칸의 인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윌포드 이후의 열차는 (곧,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다. 빙하기에서 도망쳐 나와 서로에게 생존을 위한 빚을 져가며 달려나갔던 시대가 윌포드의 시대였다면, 이후엔 어떤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인가. 윌포드의 방식이 아니라면 어떻게 밸런스를 맞출 것이며 인류를 절멸의 위기에서 구해낼 것인가. 윌포드라는 머리를 한칼에 쳐 내고 자신이 열차의 머리가 될까? '윌포드 와는 다를꺼야, 윌포드 와는' 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 그게 아니면, 불안하기 이를데 없는 희망과도 같은 정보를 가지고 이 모순되기 이를데 없는 지옥에서 벗어나게 될까?  부당한 희생이 강요 되는 시스템을, 그러나 익숙하고 미지의 세계에 비하면 안락하기 까지 한 열차에서의 삶에서 냉혹한 바깥 세상으로.  꼬리칸에서 부터 엔진실까지 거슬러 올라간 청년은 엔진실의 마스터키를 쥐고 선택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자신의 선임자가 그랬을 것처럼. 이 영화가 무한한 애정과 지극한 비관을 모두 담고 있다고 한 이유를 반복하자면, 바로 이 선택의 순간에 악인 윌포드의 고민에 대한 연민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 후임자 역시나 부당한 희생을 강요하게 될 아주 농후한 확률이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곰'이라는게 중요하다고 본다. 곰은 열차에서 벗어나는 순간 모두 죽게 될거라는 윌포드의 끊임없는 암시와 'x발 조x 그냥 문일 뿐'이라는 남궁 민수의 희망에 대한 공통의 증거가 되어주는 것이기에. 누구도 틀리지 않았으며 누구도 완벽하지 못했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이 미숙한 인류는 또 어떤 생존 기계를 만들어 나가게 될것인가. 그 기계는 과연 윌포드의 열차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효과적일까? 아니면 심지어 더 못하게 될까.




                                                                 

                                                    <난 했으니까, 자 이제 니가 해봐>






















#1. '메이슨 총리'의 억양은 틸다 스윈튼이 스스로 준비한 요소라고 하던데, 

    신기하게 영화를 보기 전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다가 영화에서 접하자 마자 

    '어, 저 여자는 대처?'라는 느낌을 받았다.

     

#2. '유치원 칸' 장면은 어딘가 박찬욱스러운데가 있었다.

      뭐, 좋았다는 얘기다.

     

#3. '그레이', 댁은 뉘시오?   -.- b


#4. 양갱의 재발견. 

     해외에서 이 영화와 관련된 행사가 개최된다면 간식으로 양갱을 내놓는것도 좋을 듯.ㅋ




<위의 사진, 동영상은 모두 단순 인용의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모든 권리는원작자에게 있습니다.>











  1. 난 아직까지도 왜 정우성이 그토록 오랫동안 긴 팔다리를 휘적거리며 말타고 총질을 해야 했던지 그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길어도 너무 길었단 말이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어린쥐™

티스토리 툴바